쿠킹클래스

쿠킹클래스는 왜 늘 내 인생에서 ‘언젠가’가 되는가

by 온빛

쿠킹클래스는 이상하게도 늘 내 인생에서 현재형이 되지 못하고 미래형으로만 남는다.
해보고 싶다. 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이미 한 번쯤 해본 적도 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지막 문장만 늘 같다.


언젠가는.


나는 원래 문화센터나 공방에서 하는 원데이 쿠킹클래스를 좋아했다. 음식이든 디저트든, 집에서는 굳이 시도하지 않을 메뉴를 만들어보는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재료가 이미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요리를 좋아한다기보다, 정확히는 장보기와 손질과 설거지가 제거된 상태의 요리를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앞에서 강사가 “이제 넣으세요” 하면 넣고, “섞으세요” 하면 섞고, “오븐에 넣겠습니다” 하면 넣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놀랍게도 얼마 뒤 제법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왔다. 내가 한 것 같으면서도 내가 다 한 건 아닌, 묘하게 문명화된 성취감. 쿠킹클래스는 늘 그런 식으로 나를 속였다. 너도 충분히 요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그러다 친구들과 태국 방콕에 갔다.
나는 동남아 향신료를 아주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여러 명이 함께 가는 여행에서 혼자 입맛 타령을 하며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다행히 우리 일행 중에는 태국 음식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친구가 있었고, 더 다행인 건 그 친구가 내가 그나마 잘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기막히게 골라내는 재주까지 있었다는 점이다. 덕분에 나는 ‘동남아 음식은 조금 어렵다’는 사실을 크게 티 내지 않은 채 무사히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쿠킹클래스에 갔다.

원래 코스는 아침에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재료를 들고 이동해 함께 요리하는 일정이었다. 말만 들으면 여행 프로그램 같고, 다 끝난 뒤에는 현지 시장 사진 몇 장쯤 남아 있어야 맞는 코스였다. 하지만 우리의 여행은 의욕보다 수면에 더 충실했다. 우리는 늦잠을 잤고, 결국 시장 구경은 깔끔하게 포기한 채 바로 요리 장소로 향했다. 여행에서 계획은 늘 그럴싸하게 시작해서 수면에 의해 조정된다.


그날 만든 여러 음식 중 가장 또렷하게 기억나는 건 똠얌꿍이다. 허브와 채소를 절구에 넣고 찧고, 향을 내고, 끓이고, 코코넛밀크를 넣는 과정이 꽤 본격적이었다. 나는 평소 잘 먹지도 않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생각보다 훨씬 진지하게 절구질을 하고 있었다. 손은 열심히 움직였지만 머릿속에서는 자꾸 이런 생각이 맴돌았다.


내가 지금 이걸 왜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들고 있지.
어차피 한 입 먹고 말 수도 있는데.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완성된 똠얌꿍을 한 입 먹은 나는 조용히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반면 태국 음식을 사랑하는 친구는 눈빛부터 달라지더니 “진짜 맛있다”며 그릇을 싹싹 비웠다. 정성은 내가 들였는데 감동은 친구가 가져갔다. 그 장면이 좀 웃겼다. 동시에 조금 정확했다. 요리는 늘 그런 식이다.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의 마음이 꼭 같은 방향으로 가지는 않는다.


그 뒤로 나는 캐나다 토론토에 살게 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요리는 취미가 아니라 생존이 됐다.


토론토에서 외식을 하면 메뉴판에 적힌 가격은 어디까지나 예고편이었다. 세금이 따로 붙고, 팁은 거의 필수였다. 체감상 메뉴판 가격에 30퍼센트를 더해야 비로소 진짜 한 끼 가격이 됐다. 계산서를 받아 들 때마다 잠깐씩 생각했다. 이건 식사인가, 북미 자본주의 체험인가.


게다가 그렇게 비싸게 사 먹어도 “와, 진짜 맛있다” 싶은 식당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물론 좋은 식당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내 생활 반경과 예산 안에서는 흔치 않았다. 한국 식당은 더했다. 한국에서는 별생각 없이 먹던 음식들이 그곳에서는 갑자기 꽤 비싼 외식 메뉴가 됐다. 된장찌개 한 그릇, 불고기 한 접시, 김치볶음밥 하나가 이상하게도 모두 기념일 식단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마트 물가는 생각보다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요리를 시작했다. 처음엔 정말 어쩔 수 없어서였다. 사 먹기엔 비쌌고, 아쉬운 음식을 비싼 값 주고 먹는 건 더 싫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식을 자주 하게 됐다. 한국 식재료는 물론 한국보다 비쌌지만, 그래도 식당에서 사 먹는 것보다는 나았다. 무엇보다 한식은 허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멀리 있을수록 더 자주 그리워지는 종류의 음식이었다. 어떤 날은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기보다, 김치찌개를 먹는 내가 잠깐 한국과 연결되는 기분이 필요했다.


그렇게 토론토에서 주구장창 요리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만든 음식을 팔기까지 했다.
거창한 창업은 아니었다. 반찬가게와 도시락 사이 어딘가쯤 되는 아주 소박한 형태였다. 한국식 카레나 불고기처럼 비교적 만들기 쉽고, 외국인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메뉴를 만들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팔았다. 공고는 아마 크레이그리스트에 올렸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꽤 우습다.
원데이 쿠킹클래스에서 재료 손질이 끝난 상태를 사랑하던 사람이, 타국에서는 직접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하고, 포장하고, 판매까지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제법 진지했다. 누군가에게는 낯선 한국 음식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집에서 해 먹기 어려운 한 끼였다. 내게는 생활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 시절을 지나며 알게 됐다.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니다. 어떤 때는 생활력이고, 어떤 때는 향수고, 어떤 때는 서비스고, 어떤 때는 작은 생계가 된다. 요리는 손맛 이전에 맥락을 탄다. 누가, 어디서, 왜 먹는지에 따라 같은 불고기도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러다 이탈리아 식당에서 오래 일한 친구를 사귀게 됐다.
나는 당시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었고, 그 친구는 나름 넓은 부엌이 있는 집에 혼자 살고 있었다. 그 집 부엌을 본 순간, 내 안에 오래 잠들어 있던 생각 하나가 다시 또렷해졌다.


아, 여기서 쿠킹클래스를 해볼 수 있겠다!


나는 조심스럽게 친구에게 물었다.
같이 쿠킹클래스를 열어보지 않겠냐고.


친구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한국 음식이 익숙하지 않던 친구는 우선 이탈리아 요리로 시작하자고 했고, 나도 배우는 셈 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역할 분담도 명확했다. 모집과 안내는 내가, 요리 수업은 친구가. 수익은 반반. 아직 사업자등록증만 없을 뿐, 마음만은 거의 작은 미식 프로젝트 팀 같았다.


모집 글을 올리자 곧 다섯 명 정도가 모였다.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커플이나 부부 단위의 참가자들이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내가 알고 있던 쿠킹클래스와, 그들이 기대하던 쿠킹클래스가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는 점이다.


내가 경험해 온 쿠킹클래스는 배움의 자리였다. 설명을 듣고, 따라 만들고, 적어도 집에 돌아가 한 번쯤 다시 해볼 마음으로 참여하는 곳. 그런데 그날 온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은 요리 과정을 흥미롭게 보기는 했지만 필기를 하지 않았다. 레시피를 꼭 익혀 가겠다는 긴장도 없어 보였다. 대신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시간이 분명했다. 먹는 시간. 이야기하는 시간. 분위기를 즐기는 시간.


처음엔 조금 당황했다.
돈을 내고 왔는데, 안 배워가도 괜찮은 건가 싶었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이해가 됐다. 그들에게 쿠킹클래스는 기술을 익히는 수업이라기보다, 낯선 사람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매개로 시간을 보내는 경험에 가까웠다. 내가 준비한 건 수업이었는데, 그들이 원한 건 거의 작은 저녁 모임이었다.


우리는 웰컴 와인도 준비해 두었는데, 그게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나는 음식과 함께 한 잔 정도 곁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한 잔 더를 원했다. 그러자 수업은 점점 친목 모임이 됐고, 요리는 대화의 배경이 되어갔다.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생각보다 빨리 친해졌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파스타 클래스 맞지?
왜 분위기는 거의 홈파티가 되어가고 있지?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 풍경이 꽤 좋아 보이기도 했다.
다들 편안해 보였고, 즐거워 보였다. 내가 상상한 방향과는 달랐지만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는 무척 성공적인 저녁이었다. 그날 나는 비로소 알았다. 같은 ‘쿠킹클래스’라는 말 안에도 전혀 다른 기대가 들어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요리는 레시피를 배우는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외롭지 않은 저녁을 사는 일이다.


어쩌면 내가 열고 싶었던 것도 단순한 수업은 아니었는지 모른다.
돌이켜보면 나는 레시피를 가르치고 싶었다기보다, 음식으로 사람과 사람이 조금 덜 어색해지는 장면을 좋아했던 것 같다. 태국에서는 잘 먹지도 못할 음식을 정성껏 만들었고, 토론토에서는 버티기 위해 한식을 만들었고, 그러다 그 음식을 팔기도 했고, 또 어느 날엔 사람들을 모아 함께 먹고 마시게 했다. 요리는 늘 같은 행위처럼 보이지만, 그때마다 전혀 다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쿠킹클래스를 다시 열지 않았다.
적어도 서양권에서는 다시 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한 쿠킹클래스와 그들이 기대한 쿠킹클래스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간극이 있었다. 둘 중 누구도 틀린 건 아니었다. 다만 장르가 달랐다. 나는 수업을 준비했고, 그들은 경험을 예약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또 다른 이유로 멈췄다.
모르는 사람을 집으로 초대하기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공간을 빌리자니 규모가 애매했다. 쿠킹클래스는 음식만 만들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공간, 동선, 분위기, 안전, 적당한 거리감, 너무 어색하지도 너무 가까워지지도 않는 묘한 균형까지 필요했다. 생각보다 훨씬 종합적인 일이었다. 음식보다 사람을 다루는 능력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이야말로 다시 해보기 가장 좋은 때 같기도 하다.
K컬처 덕분에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은 커졌고, 외국인도 많아졌다. 예전 같으면 설명부터 길어졌을 음식들이 이제는 훨씬 익숙한 이름이 됐다. 불고기, 잡채, 김치 같은 단어는 더 이상 낯선 발음이 아니다. 어쩌면 지금이라면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한국식 쿠킹클래스를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은 늘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이는 순간에 더 망설인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오히려 바로 시작하지 못할 때가 있다. 기대가 커질수록 실패도 더 선명하게 상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쿠킹클래스는 지금도 내게 끝난 일이 아니다. 포기한 항목도 아니다. 아직 다 해보지 못한 일, 정확히는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한 일에 가깝다.


언젠가 다시 열게 된다면,
그때는 예전보다 덜 가르치고 더 초대하는 마음으로 하고 싶다.
누가 뭘 배워 갔는지를 확인하는 자리보다, 함께 만들고 함께 먹고 함께 조금 덜 어색해지는 시간을 만들고 싶다. 레시피 하나를 익히는 수업이 아니라, 한 끼를 핑계로 각자 다른 삶이 잠깐 한 테이블에 모이는 자리.


생각해 보면 쿠킹클래스는 내게 요리를 가르치는 일이 아니었다.
취미였고, 생존이었고, 부업이었고, 실험이었고, 문화 차이를 배운 장면이었다. 나는 그 안에서 배우는 사람, 버티는 사람, 파는 사람, 초대하는 사람으로 여러 번 바뀌었다. 그래서 쿠킹클래스는 내게 단순한 수업명이 아니라, 내 인생의 여러 버전이 한 냄비 안에서 한 번씩 끓었던 시간의 이름 같다.


그러니 아마도 나는 언젠가 다시 쿠킹클래스를 열게 될 것이다.
이번에도 완벽하게 준비된 모습은 아닐지 모른다.
그래도 이제는 내가 정말 만들고 싶은 건 음식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어쩌면 나는 오래전부터
한 끼를 핑계로 사람을 초대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