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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실연필 Feb 05. 2022

한라산에 눈이 내렸다.

새침한 봄꽃이 활짝 핀 이곳 제주에 눈이 내렸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마다 눈 쌓은 한라산을 넋 놓고 바라보게 된다.


내가 있는 서귀포는 그나마 눈발이 날리다 만 정도인데, 한라산으로 가는 길목은 꽤 많은 양의 눈이 왔나 보다.


봄이 온다는 입춘이라더니.

역시 봄은 그냥 오는 게 아니다.


서귀포에는 폭포가 많다. 서복이 불로초를 찾으러 왔다는 정방폭포가 그중 유명하다.

폭포 앞에 서서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와 포말을 맞으면 없던 신선이 절로 될 것 만 같은 신비함이 느껴진다.

폭포로 내려가는 길이 130개의 계단이니 내려갈 땐 모르겠는데, 올라갈 땐 헉헉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요즘 나이 얘기하면 촌스러운 거지만, 갈수록 체력이 우스울 정도로 빨리 방전되는 게 걱정스럽기도 하다.


여유는 돈이 아니라 넉넉한 체력에서 나온다는 말이 정방폭포 계단에서야 반짝 생각났다.

그래 운동, 운동을 해야겠다.


서귀포 앞바다는 푸르면서도 따뜻한 느낌이다.

파도는 잔잔한데 귤나무 가득 달린 서귀포를 포근히 감싸주는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 서귀포였던가. 온통 감귤밭으로 둘러싸인 이곳엔 제주민속촌도  가까이 있다.


대장금과 김만덕 촬영장으로 사용됐던 장소답게 제주의 예스러움을 잘 살려낸 장소다. 꽃샘추위가 아쉬웠지만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볕을 맞으니 따뜻한 봄이 다시 느껴졌다.

숙소에서 5분 거리인 표선 앞바다를 걸었다. 저 앞 하얀 등대로 걸어가는 짧은 거리에도 바닷바람에 몸이 휘청일 정도다.


바람 많고 돌 많고 여자도 많다는 이곳 제주의 '삼다도'라는 명칭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바람도 보통이 아니고 발길 닿는 곳마다 온통 시커먼 현무암들이 흔하디 흔하다.


이렇게 척박한 땅을 어떻게 일구고 살았나.

옛사람들을 생각하니 한 편으론 기가 막힌다. 만약 내가 옛날에 태어났다면 오래 못살고 곧 죽지 않았을까.


얇은 감옷을 입고 이 바람과 바다를 모두 맞았을 제주 사람들을 잠시 생각했다.


여행을 떠나와서도 늘 그렇듯 밥을 하고 찌개를 끓인다.

묵고 있은 숙소가 깨끗하고 잘 정돈된 곳이라 이곳에서의 살림도 금방 손에 익고 있다.


점심은 나가서 먹더라도 아침, 저녁은 숙소에서 해결하는 가족이 여행 방식이 귀찮기도 하고 힘들 때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집밥이 제일 맛있는 걸.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오늘의 여행을 다시 떠나야겠다.


한라산의 꽃샘추위가 아무리 불어도 봄이 오는 걸 막을 수는 없을 게다.

봄은 이렇게 겨울을 밀고 들어오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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