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현실의 거리
1
서 있거나,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고통을 받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특별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이 절실해질 때가 있다.
수십 년 전, 대학을 입학한 뒤 우드 라켓으로 공을 치던 시기가 있었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게임을 하기 위해 인근 도시로 원정을 가기도 한 시절이었다. 몇 년 뒤, 김포공항에서의 군 생활에서 기인한 허리 통증에도 불구하고 스틸 라켓을 들고 대학 테니스장을 일주일에 몇 번씩 다니곤 했다. 대학원 시절에는 아파트의 동호회 회원들과 게임을 즐기곤 했다.
며칠 전 오랜만에 테니스를 했다. 라켓을 놓아버린 지 7, 8년 만이고 새로 동호회에 가입한 지 4개월 만이다. 라켓에 새 줄을 매고, 한동안 신지 않았던 테니스화도 신고 코트에서 신입회원으로서 인사를 나눈 뒤 게임을 했다. 타점도 타구의 질도 엉망이고 스트로크는 물론 서비스, 발리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운동 이후에는 발목부터 허리, 목에 이르기까지 모든 근육에서 신호가 왔다.
2
“교수님 이제는 하체 운동을 해주셔야 합니다.” 지난가을, 평소 막역한 한의원 김 원장이 진료하면서 한 말이다. 김 원장이 “교수님 테니스 좋아하시잖아요. 테니스 다시 시작해보세요.”라고 권유한 것이 테니스에 대한 욕구가 폭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 다시 한번 시작해보자.’라고 결정한 뒤에 동호회에 가입을 신청했다.
몇 개월이 지나 입회가 되었다고 통보가 왔다. 동호회에는 평소 교분이 있는 정 사장, 유 사장 박 이사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과거에 안면이 있는 여러 회원도 있다. 그런데 테니스 거트(줄)를 매고 준비를 하는 사이에 코로나 2.5단계가 발령되고 4인 이상 집회 금지가 떨어졌다. 코트도 폐쇄되고, 동호회 활동도 잠정 중단되었다. 그리고 서너 달이 흘러갔다.
3
내가 테니스를 시작하게 된 것은 건강 때문이었다. 글 쓰고 연구하는 것을 업(業)으로 하는 처지여서 취미만은 활동적인 것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주변의 지인들이 즐기는 바둑, 당구 등과는 거리를 두고 테니스, 낚시 등을 즐겨했다.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시작된 테니스는 지역의 아파트 동호회로 이어지고 현재의 대학에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95년부터는 제대로 배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개인 교습도 시작하였다. 동호회 활동과 함께 한 교습으로 기량은 나날이 늘어서 5, 6년 뒤에는 지역의 대회에서도 성적을 내기 시작했고, 한 단계만 상승하면 동호회의 에이스 대열에도 합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40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욕심에 따른 결과는 가혹했다. 2002년 허리의 추간판 탈출증(디스크)은 일상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라켓을 놓게 했다. 그래서 테니스 대신 시작한 운동이 수영이었다. 2005년 몸살림운동과의 인연으로 근골격계의 문제를 잠시 내려놓은 뒤 나는 다시 라켓을 잡았다. 2006년부터 몇 년간은 그래도 즐겁게 동호회 활동을 할 수 있었고 대회도 매번 출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보직과 업무가 문제였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또 다른 질곡으로 몰고 갔다. 10만 명에 2명 정도 발생한다는 희귀성 종양… 곧바로 이어진 수술 그리고 내과-외과-종양내과로 이어진 치료과정… 다시 되새기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이어졌다. 늘 붐비는 종양내과, 그곳에서 고통과 절망으로 시든 얼굴들과 마주하면서 나 역시 삶의 가장 낮은 바닥을 확인할 수 있었다.
4
고통받지 않고, 아프지 않은 상태를 우리는 ‘정상’이라고 부른다. 촘촘한 그물망 혹은 거미줄 같은 그 많은 진단과 검사를 용하게도 벗어나 문제가 없다고 여겨지면 ‘건강하다’는 판정을 받는다. 신체 질량,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등으로 시작되는 그 많은 수치의 기준을 벗어나지 않아야 독(毒)을 품고 있는 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늘 시름시름하는 처지였지만 투약의 그물망을 운이 좋게도 벗어나 살아왔다. 그런데 얼마 전의 나 역시 촘촘한 그물에 걸리고 말았다. 신경과의 여의사 왈 “두부(頭部)의 MRI는 별 이상이 없는데 혈압이 높으니 심장내과에서 치료받으세요.” 심장내과에서의 동맥경화 검사 결과, “동맥경화 초기입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니 약 드셔야 합니다.” 결국 고혈압 약에 콜레스테롤을 낮춘다는 스타딘 계열의 약까지 매일 먹어야 하고 매달 정기적으로 진료실을 드나들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평소 친한 지인이 그런 내게 일갈(一喝)한다. “그까짓 것 가지고 뭘 그래, 나는 거기에다가 당뇨약, 심장약까지 먹고 있는데…” 며칠 동안은 우울해하는 내게, 주위 인물들이 한 마디씩 참견한다. “나이 들면 할 수 없어 다 그래…”
5
태어날 때부터 부실했던 것일까? 나는 어릴 적부터 형제 중에도 유난히 잔병치레가 많았다. 유아기 때의 경기(驚氣)부터 초등학교 때의 신장염, 홍콩 독감… 중년 이후 허리와 목 추간판 탈출증, 종양, 이석증으로 이어지더니 이제는 고혈압에 가족들에게는 없는 탈모증까지…
형제 중에 운동신경이 제일 떨어지는 내가 아직도 운동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부실하지만 그래도 치명적인 탈 없이 지내온 것도 역시 운동한 덕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문 닫은 수영장과 헬스장을 대신하여 1년 동안 아파트 뒤의 비봉산을 주말마다 올랐었지만, 체중은 늘고 근육은 줄어드는 것을 실감한 날들이었다. 무언가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고 판단이 되어 다시 테니스를 시작한 것이다.
새 출발을 위해 준비할 것도 여럿 있었다. 우선 반발력이 감소한 라켓 교체, 테니스화, 가방, 모자, 운동복 등의 구매도 뒤따랐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새 장비를 사느라 지출도 뒤따랐다.
6
주말에 첫 운동을 하고 나서, 그다음 주에는 새로운 라켓으로 시타를 했다. 역시 타구감이 좋다. '무리하지 말자.'라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충분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게임에 임했다. 조금씩 예전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그런데 두 번째 게임 중에 탈이 났다. 오른쪽 종아리에서 통증 신호를 보낸다. 순간적으로 근육 파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십 년 동안 근 경련은 경험해보았지만 파열은 처음이다.
소염제를 바르고, 파스를 붙이고 며칠 지나니 걷는 것은 가능하다. 그리고 2주 후 통증을 느낄 수 없어서 비봉산 산행을 감행했다. 그날은 석가탄신일이라서 연등 구경을 겸해 산에 올랐다. 그런데 아뿔싸 경사진 고갯길에서 다시 통증이 재발한다. 부랴부랴 보호대를 착용하여 안정을 취한 뒤, 다시 2주를… 그리고 다시 테니스에 도전. 두 게임을 B조들과 무사히 치르고 나서 욕심이 난다. 이제는 실력이 조금 더 나은 회원들과 게임을 진행하고자 3번째 게임을 치르는 순간 다시 종아리가 발목을 붙잡는다. 선수 교체를 요청하고서 퇴장할 수밖에…
김 원장은 침을 놓으면서 일갈한다. “교수님 근육 파열은 최소 3주가 필요합니다. 심하면 깁스하고 목발 짚고 다니셔야 해요!” “나이 드니까 별것이 다 고장 나네!” 김 원장이 웃으며 한 마디 던진다. “연세도 있으니까 조심하세요!” 그래 맞다. 정년은 앞둔 몸이 어찌 예전과 같으랴.
세 번째로 다친 뒤 일주일이 지났다. 보호대를 한 채 절룩이며 걷고 있다. 부항을 뜬 종아리가 멍에 시퍼렇다. 그러나 3주 뒤쯤에 다시 3전 4기 하는 마음으로 나는 다시 테니스 코트에 갈 것이다. 그리고 방학이 되면 헬스도 시작할 것이다. 그저 나이 탓으로 돌리고 주저앉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