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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시인 Dec 19. 2023

타이난의 안평고가(安平古街), 어광도에서

타이완 여행. 2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중앙 기차역)에서 타이난 가는 고속철 당일표를 끊었다. 젊은 친구가 영어를 곧잘 알아듣는다. 그는 여권을 보고 검색하더니 “23일 예매한 표도 드릴까요?”라고 묻는다. 23일 가오슝에서 타오위완 공항까지의 고속철은 이미 한국에서 예매해 놓았었다. 그는 당일표와 예매표를 발권해 준다. 

  14시 20분 타이베이 역을 출발한 고속열차는 타이난에 16시 06분에 정확하게 도착했다. 비싼 가격이어서 고생은 안 했지만 뭔가 싱겁다. 지난여름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서 에어컨이 안 되는 소형택시로 네다섯 시간을 달리던 기억과 비교되어서다. 사막과 다름없는 40도가 넘는 열사의 대지에서 고생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타이난 역에서 시내까지는 버스로 4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관광안내소에 문의했더니 차표는 별도로 없고 현금 내고 타라고 한다. 내가 목적지로 잡은 시청 청사 홀까지는 26위안(한화 1,118원)이라고 한다. 55위안을 손에 쥐고 20분을 기다리다가 가방은 짐칸에 별도로 싣고 버스에 오른다. 인사를 하며 돈을 내밀자 흰머리가 눈에 띄는 기사분이 손을 내저으며 그냥 타란다. 

  타이완에서 버스를 이용할 때는 주로 교통카드를 이용한다고 한다. 대다수의 현지인은 승차할 때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대고 이용한다든가 티켓을 내고 탔다. 돈을 들고 버스에 오른 것은 우리뿐이었다. 시청 홀에 닿아서 내릴 때가 되어 나는 버스기사에게 돈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는 마다하고 그냥 내리라고 한다. 여행하면서 공짜로 시내버스를 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행안내 서적을 보면 타이완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할 때, 잔돈은 거슬러주지 않으니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 기사분도 거스름돈 없이 그저 55위안을 받으면 되는데 돈을 받지 않은, 그가 베푼 친절의 의미를 처음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당황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베푼 선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고맙습니다”라고 되뇌었다.

택시로 찾아간 호텔은 화려한 겉모양과는 달리 이상한(?) 곳이었다. ‘汽車旅館’이란 현지의 표기에서 기차는 우리말의 기차가 아니라 자동차를 뜻하는 말이었고 결국 자동차 여관이란 뜻이다. 1층은 자동차를 주차하는 공간이고 2층은 숙소다. 그런데 숙소 안에 화장실과 샤워실 욕조는 별도의 공간으로 나누지 않고 그냥 커튼으로 가리게만 되어있었다. 가격, 위치, 사진 몇 장만 보고 바쁘게 예약하다 보니 이런 일이? “3일 동안 사용해야 하는데… 이런 난감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랴, 그럭저럭 지내야지! 

  숙소 주변에는 음식점과 가게가 없다. 저녁을 먹기 위해 구글로 검색하자 걸어 10여 분 정도의 위치에 식당들이 보인다. 무작정 대로를 따라 걷자 잠시 후 번화한 거리가 펼쳐진다. 아마 시청청사 근처의 신시가지인 것 같다. 조금 더 다가가자 넓은 공터에 차려진 야시장이 보인다. 야시장은 여러 음식과 생필품 등을 팔고 있었다. 다양한 길거리 음식들과 면, 튀김, 구이 등에서 우리가 저녁 대신 산 것은 초밥, 꼬치 셋, 콩물과 튀긴 빵 그리고 과일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마트에서 맥주와 스자로 불리는 슈가 애플과 검은 땅콩 한 봉지를 샀다. 당도가 20 브릭스를 넘는다는 석가모니 머리 모양을 닮은 스자와 꼬치구이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고 잠이 들었다 깨어난다. 밤의 기온이 영상 8도쯤으로 내려가자 춥다.   

   

   안평고가(안핑라오찌에)와 질란디아 요새를 걸어서 가다.     

  

  호텔에서 걸어 안평고가(安平古街)와 질린디아 요새(안핑구바오安平古堡)를 가기로 했다. 

  안핑(安平) 지역에는 이외에도 몇몇 유적지와 항구 등 볼거리가 제일 많은 동네다. 호텔에서 곧장 나와 대로 주변을 따라 20여 분 걷자 바다와 접해있는 강변이 나온다. 강변 주위는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지만 관광객은 우리 말고는 없다. 잠시 벤치에 앉아 쉬고 난 뒤에 구글에 의존해 안핑의 옛 거리로 접어들었다.

  관광지라는 것을 입증하듯 특산물 판매가게와 빙수가게가 늘어서 있는 거리를 들어서자 어디에서 모여들었는지 거리는 관광객으로 제법 붐빈다. 기념품 가게, 길거리 음식 코너가 이어진 옛 거리는 그리 길지 않다. 우리는 옛 거리를 거닐며 망고 빙수를 먹었다. 망고가 제철이 아니라 가격은 다른 빙수보다 훨씬 비싼 180위엔(7,740원)이다. 

  거리에는 특산물이라는 새우 맛 뻥튀기, 말린 숭어알, 도자기, 장신구, 기념품들을 파는 가게와 음식점이 이어져 있다. 그러나 건물들은 옛 거리라는 명칭과는 달리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다. 안핑고가 바로 옆에는 질란디아 요새(안핑구바오)가 자리하고 있다. 

  안핑라오찌에(안평고가)와 질란디아 요새(안평고보)는 말 그대로 옛 거리와 옛 성이다. 기록에 의하면 ‘질란디아 요새는 1624년에서 1634년 동안, 약 10년에 거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의해 건립된 작은 성채로 네덜란드 병사들이 방어를 위해 주둔하였지만 1661년 명나라 장군 정성공에 의해 1,600여 명의 네덜란드 군인이 사망한 뒤 함락되었다고 한다.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요새는 구식 대포와 정성공의 동상, 전망대 등이 놓여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영화 아바타에서 생명의 나무 모티프가 된 반얀트리가 더 인상적이다. 줄기를 뻗어 새롭게 뿌리를 내린다는 반얀나무(벵갈 보리수)는 여러 그루의 나무가 합쳐진 모습이지만 모두가 하나의 나무라고 한다. 아내와 나무 그늘에 앉아 잠시 쉬었다. 

  쌀쌀한 날씨 때문에 내복과 오리털 파카 차림으로 나섰는데 점심때가 되자 덥다. 그늘에 앉아 잠시 땀을 식히고 사람 구경을 하다가 일어섰다. 호텔에서 준 햄버거에 감자튀김, 우유를 먹었지만 시장기가 돈다. 아내는 펑리쑤(파인애플 케이크) 두 개로 점심을 때운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나는 아니다. 

  점심 식사를 위해서 여러 식당을 기웃거리다가 뷔페식 비슷한 서민 식당으로 들어섰다. 접시에 반찬과 밥을 선택하고 그 종류와 양만큼 돈을 내면 되는 곳이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인지 손님은 우리뿐이다. 나는 고등어구이, 계란프라이, 돼지고기 조림, 야채볶음 등의 반찬을 담았다. 국과 밥까지 전부 우리 돈 4,000원이란다. “워 스 한궈런(저는 한국인입니다.)라고 말했더니 외국인이라고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가 이것저것 관심을 가지고 일러준다. 안평고보로 오면서 이런 유형의 식당을 눈여겨보았던 것은 다양한 반찬들을 골라먹을 수 있다는 점과 내가 좋아하는 고등어 반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향도 별도 없고, 간도 입에 맞는다. 한 접시를 비우고 나자 느긋하고 행복하다. 값도 싸고 서민적인 음식이 입맛에 맞을 때 외국 여행의 재미는 배가 된다. 베트남과 키르기스스탄의 시장에서 만난 저렴하고 대중적인 음식들이 그러했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된 산책과 관광은 오후 1시 30분쯤에 마무리 지었다. 안핑의 거리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귀환한 뒤 낮잠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저녁은 7시가 넘어서 외출해서 현지인처럼 만두와 콩물로 때우고 나서 멜론과 패션프루트를 사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에게는 낯선 과일 중에 하나인 패션프루트, 마치 개구리알처럼 생긴 과육은 백향과란 또 다른 이름처럼 오묘한 맛이다. 강렬한 그 맛과 향에 취해 또다시 하루를 보냈다.


 자전거를 타고 작은 섬 어광도로     


  낡은 자전거를 타고 호텔을 나섰다.

  오늘의 일정을 어떻게 짤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자전거를 사용해도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근의 어광도와 해변을 돌아보기로 결정했다. 타이난 여행을 검색해 보면 추천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어제 다녀온 잘란디아 요새(安平古堡)와 안평고가(安平古街) 외에도 적감루, 안평수옥, 덕기양행, 공묘 외 관광 지도에서 추천하는 곳도 10여 군데가 넘지만 붐비는 시내 쪽보다는 한산한 해변을 선택했다. 어쨌든 여유 있게 일정을 즐기자는 것이다.

  자전거를 선택한 이유는 또 있다. 타이완 모두가 그럴는지는 모르나 타이난의 도로는 오토바이와 자전거 전용차선이 별도로 있다. 4차선이라면 1, 2차선은 자동차, 3차선은 오토바이 그리고 4차선은 주차겸용 차선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래서 자전거로도 차의 위협을 받지 않고 편안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광도를 구글에서 검색하자 호텔에서 도보로 46분 거리란다. 시원하게 뚫린 8차선 길을 페달을 밟으며 달리자 곧장 섬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나온다. 아치형의 다리 위에서 안평의 포구와 항구를 바라본다. 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우리의 전형적인 가을 날씨다.

  섬에 닿아서 안평항이 마주 보이는 북쪽 길로 곧장 달린다. 넓고 한적한 길 곁에는 수령이 꽤 될듯한 몸집이 커다란 나무들이 도열해 있고, 숲 속으로 난 산책로도 보인다. 거대한 나무 사이로 나무판자로 이어진 올레길이 꽤나 길게 이어진다. 우리는 자전거에서 내려 잠시 바다 쪽으로 걸어갔다. 파도가 몰려오는 해변에는 서핑을 즐기는 젊은이들도 보이고 산책하는 가족들도 여럿 있다.

  겨울이어서인지 관광객은 드물어서 섬 전체가 한산하다. 한산함은 오히려 여유처럼 느껴진다. 굴을 실어 나르는 어항을 지나 방파제 쪽으로 나아가자 낚시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몇몇은 차림새가 꾼인 것 같고, 몇몇은 생활 낚시를 즐기는 것 같다. 그중 나이가 지긋한 인물과 눈인사를 나눈다. 동행한 노인이 연실 손바닥보다도 작은 고기를 낚아 올리고 있다, 고기의 생김새는 꼭 병어와 비슷한데 색깔이 다르다. 그의 쿨러에는 작은 고기들이 가득하다.

  아내가 일본어로 그들과 소통한다. 작지만 요리하면 맛이 좋다고 한다. 그중 한 어르신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열어 과거에 잡았다는 넓적한 고기의 사진을 보여준다. 2 킬로였다고 한다. 그의 휴대전화 속에는 고기 사진이 가득하다. 방파제 맞은편에도 꾼들이 즐비하게 앉아 있다. 역시 소일하기에는 낚시가 최고다. 오토바이를 타면 금세 올 수 있는 곳에 아름다운 낚시터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꾼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다. 바다낚시를 나보다 좋아하는 낚시모임의 이 교수와 송 선배가 떠오른다. 셋이서 이곳에서 먼바다를 향해 투척하고 릴링을 하면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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