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지향적이지 않은 인간

혜킬이 씁니다

by 혜파리

가족과 건강 등을 제외했을 때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면, 우선 일기장이 있다. 약 오 년 간 삼백 페이지가 넘도록 날 것 그대로의 일기를 썼다. 가끔 나에게 거짓말을 하기도 했지만. 아이패드로 쓸 때의 장점은, 페이지의 제한 없이 새것처럼 과거를 돌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날들의 나에게 댓글을 몇 번이고 달면서 꽤 자주 잊고 있었던 나를 발견한다. 다음으로는 위스키, 나는 술 마시는 걸 좋아한다. 특히 독주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갈 때 살아있음을 물리적 감각으로 느낀다. 향도 좋지만 효율도 좋은 위스키는 재빠르게 혜이드를 봉인해제 시킨다. 미성숙한 어린애의 모습을 한 혜이드가 싫기도 하지만 그만이 가지고 있는 감성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가끔 술 취한 내가 일기장에 쓴다. 감성적인 내가 좋아~ 마지막으로는 노트북이 있다. 수능 국어 문학 지문 읽는 것이 재밌어서 들어갔던 국문학과에서 진정한 문학소녀들에게 밀려 학부생으로서의 정체성으로 잃고 산지 구 년 차에 내가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여태껏 딱히 취미가 없었다. 그래서 무언가를 좋아하고 경험은 소중하다. 공개할 수 있는 정제된 글을 쓰는 행위는 나를 다듬어 준다. 오래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지켜야 하겠다.


일기로 과거의 나와, 위스키로 현재의 나와, 글쓰기로 과거와 현재의 나와 함께한다. 쓰고 보니 나는 미래가 궁금한 사람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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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다 잃어도 지키고 싶은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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