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어느 날
너무도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며
나는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돌아가실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무뚝뚝한 딸이었던 나는
퇴직하고 난 후 아버지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고독함. 쓸쓸함. 허탈감..
어떤 말로도 위로받을 수 없는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그 표정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남들처럼 퇴직 기념 파티는 고사하고,
그동안 고생하셨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 벌로 아직도 텔레비전에서 누군가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아버지와 관련된 언급을 하는 것을 잘 보지 못하겠다. 잔잔한 내 마음에 슬픔이 폭풍처럼 몰려들기 때문이다.
절에서 49재를 지내던 어느 날 창문 밖 햇살이 가슴에 들어오는 듯 강렬한 따뜻함을 느낀 적이 있다.
순간 나는 아버지가 건네는 위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난생처음 생생하고 간절한 물음표들이 마음속에 생겨났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인데, 그동안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아온 것일까?
명상이라는 것을 통해 아버지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버지는 어디로 가신 걸까?
죽음 이후의 세계는 무엇일까?
눈을 감고 온통 물음표 가득한 머릿속을 정돈하니, 한 가지 물음에 강렬한 기운을 느꼈다.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할까?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나’라는 정체성의 본질이 궁금했다. 30대 끝자락이 되어서야 나를 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나에게는 모두가 볼 수 있는 내가 존재하고, 나조차도 볼 수 없는 내가 존재한다. 분명한 사실은 눈에 보이는 내가 다는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에서 내 몸으로 볼 수 없지만 알 수 없는 무한한 공간에서 영혼으로 느낄 수 있다.
아직까지도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나를 알아가고,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쓴다는 건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와 소통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와 소통하고 이야기 나누는 그 시간들이 너무 좋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 궁금하고,
내 마음이 알고 싶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고 싶은데
그 시작이 글쓰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작가가 된 나는
지금보다 더 나 다울 것이고
내면의 소리를 더 잘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진정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로부터 공감받고 함께 소통하며
진정한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작가 인생이 시작되었다.
깜깜한 어둠이 있어야
반짝이는 별들을 볼 수 있듯이
그렇게 깊고 어두운 슬픔을 경험하고서야 비로써
내가 꿈꾸는 세상을 그려 볼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지금 그 설레는 첫걸음을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돌 아 본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