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은 정말 여섯 시에 퇴근하는가
고참과 관리자로부터 이 말을 지긋지긋하게 듣게 될 것이다. 공무원은 문서로 말한다. 정부가 내리는 의사결정은 자격 있는 결재권자의 관인이 날인되거나 서명이 기재된, 공식적인 문서로 공표된다.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이후, 어떤 후보가 대통령 당선인으로 확정되는 때는 방송사가 ‘○○○ 후보 당선 확실’이라고 발표하는 때가 아니라, 대한민국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의 직인이 찍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공식적인 당선증이 ○○○ 후보에게 도달되었을 때다. 여러분도 정부의 일원이 된 만큼 문서를 기안하고, 결재하고, 생산하고, 시행하고, 발송하고, 편철하고, 보관하게 된다. 여기에서는 문서와 문서 작성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도록 하겠다. 법 규정 숙지와 쌍벽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공무원이 생산하는 문서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실무자가 자주 다루는 공문은 크게 계획서와 보고서, 그리고 시행문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계획서와 보고서는 문서의 내용을 보고받는 사람이 정부 내부의 상급자다. 시행문은 필요에 따라 누구에게나 전해질 수 있다. 문서를 받는 사람이 기관 내부의 장일 수도 있고, 외부 기관의 장일 수도 있고, 국민 개인일 수도 있고, 회사, 법인, 단체일 수도 있다.
우리가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정형적인 정부 공문 예시를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다. 행정 효율과 협업 촉진에 관한 규정 시행규칙 별지 제1호 서식이다. 서울특별시라는 지방정부에 근무하는 공무원이라면 행정기관명에 ‘서울특별시’가, 발신명의에 ‘서울특별시장’이 기재된다. 기획재정부에 근무하는 공무원이라면 기획재정부와 기획재정부장관이 기재되고, 행정안전부에 근무하는 공무원이라면 행정안전부와 행정안전부장관이 기재된다. 여러분은 기안자에 그 이름을 올리게 된다. 문서에는 원칙적으로 기관장의 직인이 찍히게 된다.
다음으로 계획서와 보고서를 살펴보자. 정부 조직에서 일반적으로 기안하는 계획서에 수록되는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기본 형식이라고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당연하게도, 이 기본 형식에서 필요에 따라 일정한 내용이나 소제목을 추가 또는 제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보고를 받는 상관이 내용을 한눈에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표와 그래프를 적절하게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본문 중에 본질적이지 않으면서 설명을 길게 해야 하는 내용이 있다면 붙임 문서로 정리해서 본문 뒤에 수록한다.
앞부분
-배경: 이 계획서를 작성하게 된 배경
-법적 근거: 이 일과 관련된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
중간 부분
-추진 개요: 일시 또는 기간, 장소, 내용
-추진 방법: 계획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전략
뒷부분
-행정사항: 주무부서와 타 부서에서 앞으로 해야 할 구체적인 일 지정
보고서는 목적에 따라 각각의 문서 형식이 다양할 수 있어서 이 책에서 모든 케이스의 보고서를 소개할 수는 없다. 참고할 만한 책을 이후에 소개하도록 하겠다.
계획서와 보고서를 잘 쓰는 방법에 대해서는 얄팍한 스킬을 우선적으로 제공하도록 하겠다. 우선 전임자 또는 상급기관 담당자가 작성한 문서를 선례 답습할 것을 권한다.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첫째,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뭔가 혁신적인 계획을 수립하거나 정책분석, 정책평가, 프로그래밍 흐름도 수준의 체계적인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지나치게 힘 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둘째, 전임자가 작성한 문서는 관리자가 이미 결재한 문서이기 때문에 관리자도 ‘이 정도 내용이면 결재할 수 있다’고 판단한 문서다. 따라서 관리자가 결재하지 않을 만한 논리적인 이유가 별로 없다. 정기적이고 형식적인 계획서와 보고서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기존 문서에 오타나 오류는 없는지 확인해서, 문장을 다듬는 정도로 작성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위에서 소개한 얄팍한 스킬만 습득해서는 안 된다. 공직 근무하는 중에, 중요하고 복잡한 사안에 대해 판단하고, 그 판단에 따라 계획서나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때가 어느 날 반드시 올 것이다. 이때는 얄팍한 스킬에서 그치지 말고 반드시 심화 과정에 이르기를 바란다. 우선 그에 관한 책 두 권을 여기에 소개해 둔다.
첫 번째 책으로, ‘대통령 보고서’*1라는 책을 추천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 혁신담당관들이 주축이 되어 구성된 동아리 ‘대통령 비서실 보고서 품질향상 연구팀’이 지었다. 보고서의 여러 종류, 그리고 그 종류에 따른 예시 내용이 제시되어 있어서 보고서 작성할 때 곁에 두고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두 번째 책으로, ‘7가지 보고의 원칙’*2이라는 책을 추천한다. ‘나 어떡해’라는 곡으로 MBC 대학가요제 제1회 대상을 받은 ‘샌드 페블스’의 남충희 저자가 지었다. 배경이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고, 회사와 상사에게 몰입하고 헌신하는 개인의 양상이 책에 많이 제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이 책이 추구하는 바와 전적으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구조적 사고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부분, 그리고 관리자가 실무 담당자의 명확한 판단을 바라고 있다는 점을 소개한 부분이 개인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보고서도 중요하지만, 보고할 때의 자세와 요령도 중요하기 때문에 읽어 보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공직에 있으면서 중요하고 복잡한 사안에 대해 판단하고, 그 판단에 따라 계획서나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앞서 말했다. 만약 정형적이지 않은 업무 또는 여러분이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업무에 대해 문서를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면, 상당히 막연한 마음이 들 것이다.
이때는 ‘먼저 자료를 수집’하라고 조언해 주고 싶다. 인터넷과 기사 검색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큰 도서관에서 관련된 책 서너 권을 대출해서 읽어 볼 것을 권한다. 학술지 논문을 찾아 읽어 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자료를 충분히 확보해 두게 된 이후에는 막연한 마음이 많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데이터, 데이터, 데이터가 필요해! 진흙 없이 벽돌을 구울 수는 없지 않은가!” 셜록 홈즈가 한 말이다.*3 세기의 명탐정도 벽돌을 굽기 위해 진흙이 필요한데, 하물며 우리처럼 평범한 9급 공채생이 자료 없이 중요한 문서를 만들 수 있겠는가. 자료를 모으자. 열심히 모으자.
논문 검색에 있어서는 다음의 경로를 추천한다. 회원 가입과 로그인이 필요하다. 여러분이 근무하고 있는 기관이 다음 기관들과 협약을 맺고 있다면 여러분이 일하고 있는 기관의 모든 PC 또는 지정된 일부 PC에서 자동으로 로그인이 될 것이고, 개인이 로그인할 때보다 더 많은 자료에 접근할 수 있다.
∙전자국회도서관(http://dl.nanet.go.kr)
∙누리미디어 DBpia(http://www.dbpia.co.kr)
∙한국학술정보 학술논문 검색(http://kiss.kstudy.com)
∙한국교육학술정보원 학술 연구 정보 서비스(http://www.riss.kr)
여기에서 권위 있는 기관이 작성한, 수준 높은 보고서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를 하나 소개하겠다. KDI(Korea Development Institute․한국개발연구원)는 경제․사회 분야에 있어 대한민국 정부의 대표적인 연구기관이다. KDI 홈페이지(http://www.kdi.re.kr)와 KDI 경제정보센터 홈페이지(http://eiec.kdi.re.kr)를 통해 정부 부처와 민간기업 연구소 등 권위 있는 기관의 문서에 접근할 수 있다. 한국 정부뿐 아니라 UN, OECD, IMF,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의 한국 관련 자료에도 접근할 수 있다.
필요한 때에 이 경로를 통해 자료에 접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KDI 홈페이지 회원 가입 후 뉴스레터 수신을 신청해서, 정기적으로 KDI의 뉴스레터 메일을 받아 보는 것을 여러분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렇게 하면 국내․외 기관에서 발간한 최신 보고서, 정책자료, 동향자료, 보도자료를 놓치지 않고 체크해 볼 수 있다. 뉴스레터를 신청할 때 거시경제, 산업, 노동, 재정, 복지, 교육, 국토 인프라 등 관심 분야를 체크해 두면, 그에 대한 최신 자료와 자료 접근 경로를 뉴스레터가 제공해 준다. 단기적인 보고서 작성을 넘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여러분이 공무원으로 일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주요 정책에 대한 최신 자료와 수준 높은 문서를 틈틈이, 대략적으로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안목과 실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정형적이지 않은 업무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받았던 비정형적인 업무 지시 가운데 기억나는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구청장 공약사업 중 독서인증제 계획 수립
▲ 구청장 공약에 따라 신설된 도서관팀의 내년도 업무 계획 수립
▲ 지방공단, 지방문화원, 문화재단 개념 정리
▲ 구청 산하기관(도시관리공단, 문화재단, 복지재단) 직원 인건비 비교
여기에서는 독서인증제 계획안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학생들이 책을 많이 읽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구청장이 후보자 신분이었을 당시에 공약으로 내건 것이다. 후보자는 같은 맥락으로 ‘100권 책 읽기’라는 타이틀의 독서 운동도 공약으로 내세웠다. 신설된 도서관팀에서 이 공약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일이 나에게 주어졌다. 한두 줄의 공약 제목을 토대로 전임자가 작성했던 1페이지 분량의 간략한 공약사업 계획서가 내게 주어진 정보의 전부였다.
앞서 말했듯이, 진흙 없이 벽돌을 구울 수는 없다. 독서인증제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없으니, 이에 대한 자료를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독서인증제가 어떤 것인지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 해도,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실무자 입장에서는 그 독서인증제를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실행할 것인지, 그 방법론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도 자료를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대략적인 정보를 모을 수 있었고, 좀 더 깊게는, 교사, 학부모, 전문가 모두가 독서인증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책 내용과 관련된 몇 가지 단답형 문제에 답을 입력하는 미션 클리어 방식으로 독서 이력을 저장․관리하는 전산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더더욱 격렬하게 비판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진해 기적의 도서관’에서 초등학생이 책을 읽은 뒤 독서기록장에 독서활동을 남기면 자원봉사자가 ‘책 도장’을 찍어 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여기서 독서활동이라 함은 인상 깊었던 문장 하나를 독서기록장에 적는 것, 책을 읽은 뒤 책 내용을 독서기록장에 그림으로 그리는 것처럼 가벼운 활동을 말하는 것이었다. 완성된 독후감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읽은 책에 대해 학생들이 도서관 자원봉사자와 대화를 나누고, 자원봉사자가 ‘책 도장’을 찍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정보를 접한 순간, 이 프로그램에 무척 호감이 갔다. 인증 방식이면서도, 자원봉사자와 소통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인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독서 흥미를 반감시키지 않고, 학생들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상사들의 검토를 받은 뒤, 진해 기적의 도서관에서 시행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을 그대로 도입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그 방식 그대로 <100권 책 읽기 사업>을 시행하게 되었다. 구청장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독서인증제와 100권 책 읽기 운동은 이러한 내용으로 계획이 세워지고, 집행되었다.
기존에 없었던,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계획하고, 집행해야 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자료를 확보해 두고, 자료를 읽으며 곰곰이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길이 열리리라 생각된다. 많이 부족하지만, 참고 차원에서 그 당시의 계획서를 이 책의 끝에 부록으로 수록해 둔다.
만약 여러분에게 어려운 일이 주어진다 해도 너무 괴로워하지 않길 바란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상사들이 9급 공채생에게 최고 수준의 문서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9급 시절에 고생을 심하게 많이 하는 것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여러분에게 복이 될 수도 있다. 첫째, 앞으로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을 때 가뿐하게 해결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힘든 경험은 틀림없이 여러분에게 소중한 자산이 된다. 둘째, 앞으로 그런 어려운 일을 겪게 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낮아진다. 확률상 그렇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상급자의 지시와 의도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여러분의 능력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다. 이때 그의 성향까지 알아 둔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여러분에게 과제를 부여한 상급자가 발군의 스피드를 원하는지, 간략한 페이퍼를 원하는지, 논문처럼 깊이 파는 페이퍼를 원하는지 알아 둘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상급자가 스피드를 원하는데, 논문 다섯 편을 확보해서 며칠을 할애해서 읽고 있다면, 상급자는 아마도 화를 낼 것이다. 관리자가 논문처럼 깊이 파는 페이퍼를 원하는데, 빈약한 내용의 페이퍼를 두 시간 만에 완성해서 보고한다면, 상급자는 여러분이 성의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잘 모르겠다면 지시를 받을 때 ‘언제까지 해야 되나요?’,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대화를 통해 확인하면 된다. 지시를 받은 뒤에 나름 작성해 보다가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다시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이러한 대화가 소통이다. 관리자와 같이 영화 보고, 영화 보고 나서 스파게티 먹는 의전을 소통이라고 표현하는 조직이 있다. 어이없다). 며칠 동안 고생해서 작성했는데, 상급자가 원했던 방향이 아니어서 다시 작성하는 것보다는, 일하는 중간에 상급자로부터 점검을 받는 것이 훨씬 낫다. 상사들도 여러분이 헛고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시에 퇴근하려면: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내리자’에 계속.
*1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 보고서 품질향상 연구팀. 2007. ‘대통령 보고서: 청와대 비서실의 보고서 작성법’. 위즈덤하우스.
*2 남충희. 2011. ‘7가지 보고의 원칙: 성공과 실패 사례로 엮은 경영 다큐멘터리’. 황금사자.
*3 맥스 알란 콜린스. 2004. ‘냉동화상: CSI 과학수사대, 라스베이거스 #1’. 유소영 譯. 찬우물.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