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미술관 특별전 :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언론을 통해 올 상반기 호암미술관에서 불교미술을 주제로 대규모 전시가 열릴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불교미술과 여성의 역할을 조명하는 전시라고 했다.
메인 테마가 여성이라는 걸 알고나니 '또 여성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남자라서 그런 것도 아니요, 페미니즘 탓도 아니다. 전통적으로 불교(미술)와 여성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였기에 오래전부터 연구자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고, 그만큼 연구도 많이 진행되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남성보다는 여성이 보다 열성적으로 불교를 믿었으며, 시주도 그만큼 많이 했다. 왕실 여성 중에는 출가하여 비구니로 살아간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므로 적어도 내게 여성과 불교라는 소재는 다소 식상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전시관련 유튜브나 카페 등을 둘러보고 현장에서 도슨트도 몇차례 들어본 결과, 일반 대중들이 학계의 연구성과를 인지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아마 그들은 시중에 출간된 대중서적을 위주로 공부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서는 대부분 기초적인 내용을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에 최신 학설이나 급진적인 주장 대신 어느정도 검증된 내용을 담곤 한다. 그렇다보니 학계의 연구성과를 일반 대중들이 인식하기까지는 어느정도 시차가 있는 것이다. 먹고사느라 바쁜 일반인이 어려운 논문까지 찾아 읽으며 열성적으로 공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그간 학계에서 일구어낸 성과들을 일반에 공개하는 자리로 보아도 무방할 듯 싶다.
그 외에도 이번 전시가 가치 있는 이유는 보기 어려운 불교미술품들이 대거 출품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에 가도 보기 어려운 귀한 고려불화를 비롯하여 동시기 중국과 일본 불화, 백자 관음보살, 자수 불화, 석가탄생도와 석가출가도를 비롯한 조선 초기 불화, 그리고 150억의 가치가 있는 부여 출토 금동관음보살입상까지. 때문에 이 전시는 연구자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여러차례 지하철을 갈아탄 뒤 에버랜드 역에서 내렸다. 호암미술관은 에버랜드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있어 차가 없다면 1시간 가량 걸어야한다. 다행히 매시간 한차례씩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셔틀버스 운행시간은 호암미술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확인할 수 있다. 셔틀버스를 타고 산 속으로 15분 정도 달리면 호암미술관 근처에서 내리게 되는데, 여기서도 10분정도 걸어가야 한다.
호암미술관 근처에는 호수가 있고 손질이 잘된 나무들이 줄지어 심어져 있다. 원래 삼성가의 별장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만큼, 조경이 잘 되어있다. 조금 걷다보면 이렇게 해치 한 쌍이 등장하며 반겨준다.
조금 더 걸어가면 매표소가 나온다. 호암미술관은 예매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게 되어있는데, 나는 평일에 가서 그런지 당일 예매를 해도 무리가 없었다(관람료는 14000원). 매표소 옆에는 잘 꾸며진 호수가 보이는데, 수심이 깊어서 그런지 접근을 막고 있었다. 멀찍이 거미를 형상화 한 설치미술 작품이 하나 보이고, 주변으로 잘 가꾸어진 나무들이 깔끔하게 심겨져 있다.
매표소를 통과하면 바로 미술관으로 들어가는게 아니라, 정원을 지나가게 되어있다(매표소 사진을 못찍었다). 정원에는 물이 흐르고 있어 운치가 있다. 약간 언덕이긴 하지만 경사가 심하지 않고, 주변에 볼거리가 많으므로 천천히 올라갈 수밖에 없다. 별로 안 힘들다는 얘기다.
정원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거닐다보면 이렇게 미술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미술관 건물은 불국사의 대석단을 모티브로 삼은 것 같다. 주변에는 석탑과 각종 석물들도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내부에 들어가면 안내데스크와 굿즈를 판매하는 샵이 있고, 왼쪽 편에 이렇게 특별전시실이 꾸며져 있다. 이번 특별전시는 1층과 2층 모두에 마련되어 있다. 안내하는 직원에게 물어보니 전시장의 사진 촬영은 휴대폰으로만 가능하다고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디지털카메라를 챙기지 않았을텐데, 괜시리 가방만 무거워졌다.
전시장 초입에 보이는 유물은 바로 조선 초(15세기)에 그려진 석가탄생도와 석가출가도이다. 석가탄생도는 국내와 일본에서 몇차례 공개 전시된적 있었으나 석가출가도와 함께 전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사진1). 독일과 일본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으기 쉽지 않았을텐데, 호암미술관 학예사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두 작품은 석가의 일생을 모티브로 제작되었으나, 어머니인 마야부인과 태자비인 야소다라의 비중이 큰 편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선정된 것 같다.
이어 송광사 팔상도 4점이 전시되어있다(사진2,3). 석가의 일생을 묘사한 팔상도는 본래 8점이지만 전시된 작품은 석가의 입태와 탄생, 성불과 열반 장면을 묘사한 4작품 뿐이다. 앞서 전시한 조선 전기의 2작품과 비교해보라는 의미로 전시한 모양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출가장면을 묘사한 유성출가상이 빠졌다는 것이다. 만일 유성출가상이 전시되었다면 쾰른 동아시아미술관 소장본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었을텐데, 조금 아쉽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볼만한 작품들이 많은데, 주로 여성들이 많이 신앙한 관음보살 관련 작품들이 많았다. 아래처럼 고려와 조선의 수월관음도를 볼 수 있었으며,(사진4)
백자 관음보살상도 전시되고 있었다(사진5). 도자사 책으로만 보았던 백자 관음상을 실제로 본 것은 본인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백자 특유의 새하얀 색감이 백의관음의 고결하면서도 때묻지 않은 자비심을 극대화시켜주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쉽게도 백자 관음상은 중국의 작품들만 존재하고 우리나라에는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도 백자가 유행한 조선시대에는 불교 관련 문물의 유입이 적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미타불화도 전시 중이었다. 고려와 남송, 일본의 아미타불화를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사진6). 안내문에 의하면 모두 아미타불이 내영(망자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라 하는데, 같은 내용일지라도 표현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었다. 남송의 아미타불화는 좌협시보살인 관음이 연화대좌를 들고 있어 내영하는 장면임을 드러내고 있으며, 화면 상단에는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열번 적어 간절한 극락왕생의 소망을 드러내었다. 고려의 아미타불화는 아미타불이 측면을 향해 서있는 모습만 보여주어 은근한 암시를 하고 있다. 아마도 구품연지에서 왕생자가 화생할 때를 기다리는건 아닐까? 일본의 아미타불화에서는 아미타불이 구름을 타고 KTX급 속도로 날아가고 있다. 이쪽에서는 오히려 아미타불이 극락왕생을 시켜주고 싶어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마지막으로 백제 금동관음보살상을 거론하고 마치겠다(사진7). 2018년 즈음에 이 상이 공개되면서 환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생겨났는데, 당시 일본인 소장자가 150억을 요구했다. 당시 문화재청은 예산이 40억 뿐이라며 환수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 이후로도 문화재청의 태도는 소극적이었다. 예산의 증액을 위해 힘쓰지도 않았고, 민간과의 협력을 추진하지도 않았다. 윗선의 지시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정부 조직의 한계로 봐야하는 것일까. 우물쭈물 하는 사이 이 관음상의 존재는 서서히 잊혀지고 말았다. 지금은 당시에 비해 물가가 많이 올랐으니 150억으론 어림없고 그 이상을 주어야 환수가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그러던 중 이 상이 이렇게나마 호암미술관의 전시를 통해 공개된 것이다. 두번 다시 보기 쉽지 않은 작품이니 이번 기회에 찾아가서 많이 관람하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