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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이또이 May 28. 2024

#오늘의커피독서

가끔은 다른 공간에서 나와 마주했으면 좋겠다. 

자화상, 모노타이프 #1


샌드위치 9,800원. 아이스 아메리카노 4,300원. 모두 14,100원.

오늘 아침 다른 동네에 가서 오전 시간을 보내며 지출한 내역과 금액이다.


아침의 시원한 공기가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고 낯선 외국인 셋이 마주 앉아 구글맵이 좋은지 네이버맵이 좋은지 잡음 비슷한 대화를 이어갈 때 시선을 밖으로 돌려 주변 초록에 인사한다. 내가 앉은 테이블 정면에 있는 벽면에 눈을 살짝 치켜뜨면 좋을 높이에 유럽풍 정물화가 걸려있다. 주변 소음은 아주 좋은 음악이 되어 공간을 즐겨도 될 만큼의 흥과 여유를 선물했다. 저들은 며칠 머무는 여행자일까. 아니면 주변에 살고 있는 장기 여행자일까.


아침 식사를 거하게 한 것도 아닌데 싱크대 한가득 아침 설거지가 쌓였다. 어제의 다소 피곤한 일정으로 늦게 일어난 딸은 여러 질문에 대답도 없이 방바닥을 기어다니며 엄마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아침부터 화를 낼 수 없으니 여러번 타이르며 어렵게 아침식사를 마쳤다. 아들은 불편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알아서 등교 준비를 서둘러 해주었다. 아이들 등교를 입으로 조종하며 쌓여 있는 설거지를 해치우는데 왼쪽 팔꿈치 아래 뭔가 쑥 밀고 들어온다. "엄마 도와주려고요... ." 딸이었다. "원아 괜찮아. 학교에서 좋은 하루 보내." 이마에 쪽 뽀뽀를 한다. 등교 전에 딸의 기분이 조금은 풀어져서 다행이었다. 


공간을 분할해 각자의 영역에 그림을 전시할 수 있었는데 오늘이 그 전시의 철수하는 날이라 압구정에 간 거였다. 작품을 설치하고 벌써 3주가 흘렀다. 자화상 아닌 자화상으로 공간을 채웠던 나는 무엇을 말하려는지 것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조급하게 전시를 준비했다. 공간을 채우기는 했어도 비어있는 공간이라니 아이러니하게도 그 표현이 딱 맞는 전시였다. 그건 정말 어떤 이의 말만큼이나 내 안에 무엇인가 무너지는 계기가 되어야 했다. 자각 없이 행동하는 날들이 이어졌고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아이들이 등교를 하고 집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그랬을 거다. 


병이 깊어지고 사는 게 점점 자신 없다며 기운 없는 눈물을 흘리는 엄마를 고향에 두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도 내 영혼은 맥락없는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콩이 잔뜩 들어있던 바가지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콩들이 사방으로 떨어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하니 서있는 것처럼 그렇게. 줍고 싶은데 어떻게 주워야 할지 모를. 집으로 돌아온 나는 몸과 정신이 따로 놀고 있던 게 분명했다. 저녁식사를 준비하면서도 아이들 공부를 봐주면서도 남편이 퇴근해 잘 다녀왔냐고 물어볼 때도 난 그곳에 없었나 보다. 아픈 몸을 이끌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몰라하는 엄마가 아른거려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는 시간이었다. 


"엄마 오늘은 점심 대충 먹지 말고 맛있는 거 있음 사 먹어요." 아들이 현관문을 빠져나가며 등 뒤로 던진 말을 꼭 그렇게 하고 싶어 들어선 카페에서 조금의 평안을 찾을 수 있었다. 동네에서 멀어져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진한 커피로 정신을 깨우고 달큰한 샌드위치로 배를 불렸다. 그리고 조안나 작가의 <나의 다정한 그림들>로 위로를 받았다. 서브타이틀처럼 '보통의 일상을 예술로 만드는 방법'에 심취했던 수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픔도 고통도 받아들이려 노력했던 그간의 글쓰기를 다시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힘든 시간을 지나는 엄마도 나도 우리 가족도 지난 수 많은 추억의 시간들로 견뎌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방이 열려 있는 카페는 주변 초록을 한껏 채우고 기분 좋은 바람을 통과시켰다. 카페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그 모습도 가지각색이라 가만히 앉아 내 안에 여유를 충전하기에 참 좋은 시간이었다. 유독 비어있는 카페 밖 테이블과 의자가 좋아 보였다. 공간을 다 채웠다면 커피도 샌드위치도 오늘처럼 맛이었을까. 주인에겐 미안하지만 곳곳이 비어있어 여유 있고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데 의심할 수 없다. 뭘 그렇게 해결하고 만족하고 채우려고만 했을까 싶다. 흘러가는 시간에 내 몸 하나 얹었을 뿐인데. 


주인 없이 공간을 지키고 있던 내 작품들. 다시 만나 반갑다. 벌써 많은 작품들이 돌아갔고 같은 시간에 철수를 기다리고 있는 작품들이 듬성듬성 전시되어 있었다. 설치할 때의 마음과 다시 찾을 때의 마음이 이렇게 다를까.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보듯 그릴 때의 마음과 다른 마음으로 은근히 바라보니 사랑이란 감정이 가까이 와 있다. 은근히 응원하는 내 주변 사람들 덕분에 사랑도 느끼고 사는구나. 챙겨간 화선지로 한 점씩 정성스럽게 포장해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전시 공간을 나와 아침에 좋은 시간을 보냈던 카페를 돌아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오늘 내가 먹은 커피와 샌드위치는 그 값이 적당할까. 좋은 가격을 매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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