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진술인 01화

라커룸(1/6)

by 유재영

1


조성진은 밀실에 갇힌 지 한 시간이 지나서야 그날 새벽을 떠올렸다. 홍천휴게소에 들리지 않았다면 라커룸을 찾아갈 일도 없었을 것이다. 고속도로에 오르기 전 그들 부부가 건넨 아메리카노를 사양해야 했겠지. 차라리 에스프레소였다면 나았을까. 소식을 듣고 병원에 가는 게 아닌데…… 그는 궤적을 그리는데 몰두했다. 함정이 있었던가. 뭘 잘못했지.

눈앞에 보이는 건 완벽한 암흑뿐이었다. 창문은 철판으로 막혀 있었고 바깥으로 통했던 문은 사라졌다. 벽면 틈을 찾아 손에 닿는 대로 밀고 당겨봤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은 어떤 신호도 잡지 못했다. 배터리 잔량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시간은 묵묵히 흘러 새벽 두 시로 돌아왔다. 어둠에 길들었다가도 액정 화면 위로 떠 오르는 옅은 빛을 보고 나면 다시 적응하는 데 한참 걸렸다. 차라리 눈을 감는 게 나았다.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문구 하나.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장식이라곤 일절 없는 밀실, 한쪽 벽면에 가훈처럼 반듯하게 붙어있는 글귀였다. 마태복음 10장 26절. 이것이 가훈이라면 여기는 레위의 집인가. 모태신앙이 이래서 무섭다니까. 그는 계속 중얼거렸다. 문장 아래에는 독서실용 책상과 나무 의자가 있었고 책상 위에는 에이포용지 스무 장과 모나미 볼펜 두 자루, 손전등과 건전지 네 개뿐, 먹을 것이라곤 없었다. 물을 마시지 않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전에 질식사하지는 않을까. 쇼크사에 위기는 넘겼지. 조성진은 공포를 경감하기 위해 줄기차게 내뱉었던 혼잣말을 멈추고 자조 섞인 웃음을 내뱉었다. 이윽고 이곳을 설계한 자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의 의도는 책상 위에 있었다. 빠져나갈 방법이 있다면 오직 빈 종이를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성진은 상사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이 넓은 곳에 책상과 종이, 펜과 조명만 있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무엇을 써야 할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 할까. 그래, 그날 밤이 좋겠지. 결심이 서자 그는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이것은 반성문인가, 사유서인가. 그보다는 경위서, 더 정확하게는 참회록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지. 조성진은 주문을 외듯 중얼거렸다. 고해성사를 어떻게 하더라. 집필 동기와는 달리 그는 글을 쓰는 동안 수신인을 의식하지 않았다. 그의 삶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


그날부터 시작하죠.

새벽 두 시, 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에프엠 라디오에서 시보를 듣고 시동을 껐으니 확실할 겁니다. 경기, 시작했습니다! 주차장에서 화장실로 향하면서 입 밖으로 되뇐 말입니다. 오랜 습관이었죠. 생각보다 목소리가 크게 나와 놀랐습니다. 목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먹은 뒤였거든요. 누군가의 이목을 끌었다면 그 때문이었겠죠. 볼일을 보고 화장실을 나와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한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이웅현 전 해설위원이었죠. 마스크 때문에 못 알아볼 뻔했지만 그 날카로운 눈매를 어떻게 잊겠습니까. 제가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반가워서가 아니라 난감했으니까요. 오래전 일입니다만 그의 연락을 수차례 외면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심 그의 추락을 비웃기도 했고요. 그가 보낸 메시지는 대강 이런 내용이었죠.

잘 지내지? 미안하다. 물어볼 게 좀 있어. 이번이 마지막이야.

너였냐?

꼭 연락 줘. 부탁이 있어서 그래. 돌려줄 것도 있고.

야, 이 지저분한 새끼야.

번호를 차단할 무렵에야 그가 보내온 메시지를 확인했습니다. 안부와 제안, 의심과 악다구니가 맥락 없이 교차하더군요. 사람이 이렇게 추해지다니. 해줄 수 있는 일도, 남길 말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시청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마지막 중계, 마지막 멘트를 돌려주고 싶었습니다. 실은 무슨 일이 펼쳐질지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좋지 않은 기운은 스멀스멀 다가와서 주변 사람들이 먼저 인지하지 않던가요. 이웅현은 중계석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 축구 교실 운영 자금 마련을 위해 전전긍긍한다는 소문이 끝인가 싶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던 겁니다. 휴게소에서 마주친 이웅현은 전에 없이 말끔한 차림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만남과 예상치 못한 변화를 앞에 두고 머뭇거릴 수밖에요.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단련한 듯한 그의 상체에 눈이 가더군요.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싶었습니다.

“오늘 중계는 어떻게 하고?”

“휴가. 고향에 일이 있어서.”

“박스데이 기간인데? 무슨 일이길래?”

“병문안.”

“병원에 있다는 그 친구? 많이 안 좋다고 하지 않았나.”

“그 친구가 깨어났거든.”

“식물인간이랬지? 근데 깨어났다고? 인사는 했어?”

“아니. 눈만 좀 깜빡이더라고.”

“축구는 볼 수 있겠네? 10년이랬나?”

“23년. 볼 수야 있겠지.”

“식물인간으로 23년이라…… 난 23일도 힘들던데. 의사는 뭐래? 곧 일어날 거래?”

“일요일이잖아. 친구 부모님만 뵙고 오는 길이야. 그런데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야?”

이웅현은 잠시 시간 괜찮으냐고 물었고 저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가 휴게소 안쪽 카페를 향해 앞장섰죠.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향하는 밤이라서인지 휴게소는 한산했습니다. 제가 앉은 자리에서 대형 스크린이 보이더군요. 하필 저희 방송사 채널이 틀어져 있었습니다. 전반전 10분이 지났고 스코어는 영 대 영. 공이 옆줄 밖으로 나가자 주심이 휘슬을 불고 경기를 멈췄습니다. 순식간에 그라운드 위로 의료진이 들어왔죠.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 한 명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중계 화면 왼편에는 주문 번호 세 자리가 깜빡이다가 우측 화면으로 이동하곤 했습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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