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진술인 02화

라커룸(2/6)

by 유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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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현과는 입사 동기입니다. 제가 캐스터로 입봉한 해 그도 신입 해설자로 회사와 계약을 맺었으니까요. 우리는 신인 캐스터와 해설자 콤비로 자주 호흡을 맞췄습니다. 의욕 넘치는 신인 캐스터와 선수 출신 해설자의 만남은 시청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고 점차 주요 경기에 배정되는 횟수가 늘었죠. 이웅현은 중앙 지역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며 패스를 공급하는 미드필더처럼 무난하게 해설 직을 수행했습니다. 그는 큰 실수 없이 다섯 시즌을 보내다가 막판에 크게 한방 터트렸습니다. 도박으로요. 일부 프로 선수가 연루된 명단 속에 그의 본명이 섞여 있었죠. 국가대표를 거쳐 간 프로 선수 몇 명이 기사에 오르내렸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주목한 이는 없었습니다. 방송국 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이었죠.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뻔한 일은 담당 수사관이 아나운서실로 전화를 걸어오면서 회사에 알려졌습니다. 국장은 이미 알고 있던 눈치였습니다. 내부 여론을 지켜보고 있었겠죠. 회사에서는 이웅현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지 않도록 손을 쓴 뒤 적법하고 신속하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습니다. 명단이 공개되면 웃돈을 주고 사들인 중계권이 날아갈지도 모를 위기의식이 작용했던 거죠. 발 빠른 행정 덕분에 그의 비위 사실을 아는 이는 극히 소수였습니다. 계약 위반과 해지를 알리는 자리에서 담당 피디와 국장에게 자신이 베팅한 금액이 얼마나 소액인지 항변했으나 한번 내린 결정을 뒤바꾸진 못했다고 하더군요. 중계석에서 감독과 경영진의 권한을 자주 언급했던 이웅현은 그 뒤로 그라운드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 겁니다. 몇몇 축구 팬이 그의 안부를 묻곤 했으나 그것도 아주 잠깐이었습니다. 요즘 유튜브만 봐도 말 잘하고 똑똑한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회사는 그가 재기하는 걸 원치 않았고 이웅현도 복귀할 생각이 없어 보였죠. 소문 속에서 그는 자책골과 동시에 회복 불능의 상처를 입은 그저 그런 미드필더였습니다. 우리 팀을 응원하는 팬들은 그의 부상을 걱정하지 않았죠. 빈자리를 채울 선수는 무궁무진했고 감독의 콜업을 기다리는 유망주들이 속속 나타났으니 꼭 그의 선수 생활과 흡사한 이력 아닙니까?

“축구 교실 준비한다는 말은 들었는데.”

“그랬지. 재작년 봄인가. 학원 사업 준비한다고 부지를 좀 살펴보고 다니다가…… 처음엔 일이 좀 안 풀렸어. 사람들을 좀 수소문했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더라. 도와줄 사람보다 방해하는 놈을 없애는 게 우선이겠더라고. 나한테 도박 사이트를 알려준 브로커가 수배 중이었거든. 동선이 뻔히 보이는 데도 경찰은 잡을 생각을 안 하니까.”

“그 브로커에게 협박이라도 받은 거야?”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심리적인 문제였지. 그놈을 꼭 잡아야겠더라고. 그러다가 라커룸을 알게 됐어.”


“라커룸?”

“저 봐. 늘 한 사람이 문제잖아?”

이웅현은 텔레비전 화면 속 한 선수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팀이 2점 차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교체 지시를 받고도 필드 위를 천천히 걸어 나오는 11번 선수를 향해 관중은 야유를 퍼붓고 있었습니다.

“내가 말한 적 있었나? 2001-2002시즌에 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 감독은 강등 위기에 처한 자신의 팀에 변화를 주고 싶었지. 개인플레이에 몰두하는 주전 윙 포워드를 명단에서 빼버릴 계획을 세운 거야. 그 선수 때문에 쌓은 승점도 있었지만, 잃은 승점이 더 많다고 판단했거든. 그런데 커다란 장애물이 있었어.”

“구단주가 버티고 있었겠지.”

“맞아. 무슨 이유인지 구단 경영진은 그 선수를 방출할 생각이 없었던 거지. 오로지 선발 투입을 원했어. 궁리 끝에 감독은 조용히 피지컬 코치를 불러서 무언가를 지시했고 이튿날 그 선수는 부상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지. 공식적으로 말이야. 넉 달짜리 부상이었어. 시즌 아웃. 팀은 극적으로 잔류 성공. 감독은 자신이 세웠던 전략을 경영진에게 말하지 않았어. 결과가 그렇게 나오자 아무도 그 일을 캐묻지 않았지. 라커룸은 그런 곳이야. 감독과 코치가 머리를 맞대고 최상의 방책을 모색하는 곳. 설령 누군가 크게 다치더라도 말이야.”

“그 선수는 어떻게 됐는데?”

“나도 모르지. 1부 리그에서 한 시즌만 반짝 뛰었던 선수를 누가 기억이나 하겠어. 보라니까, 5년을 일해도 날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지. 사업을 시작할 때는 그래서 편했지만.”

“한다는 사업이 그거야? 라커룸?”

“아니, 라커룸은 내가 힘들 때 도움을 받은 곳이고.”

이웅현은 지갑에서 명함을 두 장 꺼냈습니다. 첫 번째는 라커룸의 명함이었고 두 번째 명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죠. 그린센터홀딩스, 이지성 대표. 이지성은 그의 본명이었습니다.

“베팅 사이트 있잖아. 그거 한다고 사둔 비트코인이 그대로 있더라고. 그걸로 축구 교실 세울 부지를 좀 찾아다녔는데, 그게 또 돈이 되더라니까. 그 김에 회사 하나 차렸지. 좀 됐어.”

“그럼, 라커룸이 거기구나? 하우스라고 부르나?”

“하우스라니, 거긴 피파만큼 합법적으로 돈을 버는 곳이야. 그리고… 이제 보드게임에선 손 뗐어. 더 재밌는 걸 찾았거든.”

그가 대표로 있다는 투자회사가 대략 어떤 일인지 짐작이 가더군요. 이웅현은 축구 선수들의 연봉과 주급, 재산 증식 과정에 관심이 많았죠. 영국과 프랑스, 독일에서 발행하는 찌라시 같은 스포츠 신문을 섭렵하면서 신빙성 높은 정보를 골라내는 수완이 있었습니다. 저는 두 명함 간의 관계를 유추했습니다. 두 번째 회사를 위해 일을 하는 첫 번째 회사라고 생각하면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더군요. 그 왜, 나쁜 일을 대신해주는 친구들 있지 않습니까. 저도 어려서부터 그런 친구를 한두 명씩 곁에 두곤 했죠. 신의와 의리로 친구를 대신해서 상대를 겁박하고 싸워줄 순박한 아이들. 병원에 있는 그 친구, 형석이도 그랬습니다. 팀의 든든한 중앙 수비수이자 세트피스 상황에서는 상대편 골문도 노리는 체격 좋은 강릉중학교 축구부 주전 수비수였죠. 영입은 성공적이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실책을 남발한 게 문제였죠. 어쨌든 그 이후로 저는 선수 영입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성인이 되어도 완력이 필요한 일들은 종종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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