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웅현과의 대화는 슬슬 종료 시각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대형 스크린은 여전히 켜져 있었고 후반전이 시작하기 전에 그라운드 대신 중계석이 등장했습니다. 캐스터와 해설위원에 투 샷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죠. 피디는 김선우가 맡은 경기에 한해서 킥오프 전과 하프타임에도 카메라를 중계석으로 돌렸습니다. 화면이 산다는 이유였죠.
“쟤 요즘 잘나간다면서?”
“뭐, 아직. 신입이니까.”
“그렇지. 무슨 일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이웅현은 주차장 쪽으로 손을 뻗으며 말했습니다. “안 가?”
“잠깐 화장실 좀 들리려고.”
“방광염 재발했구나? 그거 신경성이라니까.”
그가 소개한 곳이 심부름센터나 폭력 조직과 결탁한 용역 업체라는 데 커피값을 베팅할 용의도 있었죠. 하지만 그가 패를 돌린 도박판에 참여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웅현의 차가 빠져나가는 걸 확인하고 그의 본명과 회사명을 나란히 검색창에 넣었죠. 주로 신문 경제면 쪽 기사가 등장하더군요. 굵직한 계약을 성사시키고 공격적으로 투자를 시행하면서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지난 여름부터였습니다. 그래봤자 돈 주고 산 지면이었겠지만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합법적인 사기꾼인지, 막대한 금액을 확보한 떠오르는 투자자인지는 판단하기 힘들었으나 신생 투자회사에 대표가 된 건 사실이었습니다. 이어서 라커룸을 검색했죠. 그 단어로는 얻어낼 수 있는 정보가 없어서 명함에 적힌 웹사이트 주소를 입력했습니다. 로딩을 알리는 화면이 한참 나오더니 마침내 메시지가 떠올랐죠. 세 가지 단어를 입력하라더군요. 명함을 뒤집었습니다. 그곳에 단어 세 개가 나란히 적혀 있었죠. 익숙한 낱말이었습니다.
시작, 전술적 운영, 굿바이
세 단어를 입력하고 확인 버튼을 누르자 제 이름과 함께 계정이 활성화되었다는 안내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처음엔 해킹 사이트가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접속과 동시에 개인정보 공개 동의서와 사용자 위치 정보 공개에 모두 동의 표시를 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개인 정보는 이미 공공재가 되어버린 지 오래잖아요. 그래서 나도 이곳에 왔을 테고요.
스크롤을 내리자 원하는 서비스 유형을 선택하라는 지문이 나타났습니다. 전술 변경, 경고, 퇴장, 선수 교체, 감독 사퇴 중 저는 경고를 택했습니다. 그러자 해당 서비스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이용 가능하다며 지정 매장을 방문하라는 메시지가 뜨더군요. 매장명은 ‘고양이의 지혜’였습니다. 회사에서 2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칵테일 바였는데, 출퇴근길에 간판을 본 기억이 있었습니다. 가본 적은 없었고요.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사이도 없이 종료 메시지가 떠올랐다가 브라우저가 닫혔습니다. 검색 기록과 쿠키까지 모조리 날아갔더군요. 그때만 해도 괜한 짓을 했나 싶었죠. 악성 코드라도 깔린 거 아닌가. 역시 프로 사기꾼은 다르구나 싶었습니다. 남은 귀갓길도 내비게이션이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저는 운전을 싫어합니다. 폐소 공포증까지는 아니지만 이렇게 밀폐된 공간에 갇히는 것도 딱 질색이고요. 그런데 말이죠. 아무리 하기 싫은 일이라도 꼭 해야 할 시기가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하기 싫은 일을 수행할 때 비로소 한 발짝씩 나아갈 수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인생이 끝장날 거라는 불안이 늘 따라다녔죠. 설령 누군가의 미움을 사게 되더라도 말입니다.
그 무렵 캐스터로서의 제 입지는 점점 좁아졌습니다. 개막전에서 선수 이름을 몇 차례 잘못 부른 일이 시작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매 경기 크고 작은 실수를 범했습니다. 병원에 있는 형석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중계는 점점 엉망이 되었죠. 급기야 관중석에서 형석과 닮은 사람을 보고 한동안 말을 잃은 적도 있었고요. 그 일로 시말서를 썼습니다. 게다가 방광염이 재발하면서 해설위원에게 중계를 맡기고 자리를 이탈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쯤 대자 주요 경기 편성이 달라졌고 그 스트레스로 인해 성대에 문제까지 생기면서 보름가량 중계를 쉬었습니다. 의사는 호르몬 분비 이상으로 인한 일시적인 증세라고 했죠. 심리적인 문제라며 정신과 전문의를 소개해주었지만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담당 피디나 국장, 동료 캐스터 귀에 들어가면 좋을 게 없는 일이니까요. 이 바닥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화면에 보이고 목소리로 들리니까요. 그건 제가 잘 알죠. 공개를 원치 않는다면 경기장 밖으로 밀어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며칠 새 증세는 호전되는 듯했으나 메인 캐스터 자리로의 복귀는 소원했습니다. 김선우가 버티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의 지혜’를 방문한 게 열흘쯤 뒤였나. 그날 1차는 흔한 송년회 자리였습니다. 제가 먼저 김선우에게 한 마디 던졌을 겁니다. 스포츠를 예능으로 만들지 말라고요. 그 자식, 지지 않더군요. 뭐랬더라. 저를 두고 녹화 중계 전문 캐스터라며 깔아뭉개더니 이웅현과 세트로 엮어서 도박판 운운하더군요. 그때 꼭지가 돌았습니다. 이상한 건 테이블을 뒤엎었는데 숯불이 날아오르더란 겁니다. 누군가 숯불을 던지기라도 한 듯 말이죠. 저는 김선우에게 입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며 문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불꽃 수십 개가 눈앞에 일렁였죠. 따라 나오는 동료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힐끗 돌아보니 제가 뒤엎은 테이블을 원상 복구하기 바쁘더군요. 검붉은 숯불을 어쩌지 못하는 폼이 꽤 우스워 보였습니다. 무리에서 이탈해 혼자 길을 걷다 보니 열이 좀 식더군요. 그제야 좀 이성적인 판단이 섰습니다. 정작 조심해야 할 것은 김선우의 입이 아니라 저 자신의 안위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테이블에서 튀어 오른 놋그릇에 강타당한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고양이의 지혜’였습니다. 낡은 입간판에는 불빛도, 문을 열었다는 표식도 없었기에 발길을 돌리려다가 저도 모르게 어두침침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상가 건물 지하였죠.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재즈 피아노 연주가 마중을 나오더군요. 실내는 제법 어두웠고 인더스트리얼 풍의 인테리어가 과하지 않아 단정한 분위기였습니다. 한쪽 벽면에는 물품 보관함인지 직원용 사물함인지 모를 로커가 세워져 있었고요. 손가락만 한 운동선수 피겨가 눈에 띄었습니다. 가장 강한 빛이 머무는 곳에 바텐더가 서 있었죠. 그는 흰색 천으로 유리잔을 문지르고 있었습니다. 테이블과 바를 따라 징검다리처럼 놓인 스툴은 비었으나 음악 때문인지 황량하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바 테이블에 앉자 달콤한 과일 향과 위스키 냄새가 코끝을 스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