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진술인 16화

진술인(2/5)

by 유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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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남편한테 무슨 얘기 못 들었어?”

옆 라인에서 근무하는 동료가 그 일을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무슨 얘기?”

“남편 다니는 회사가 기전설비 맞지?” 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이어 말했습니다. “사무실에서 사람이 죽었다며? 강도라던데.”

“아, 그 사람. 다른 부서 사람이야. 남편한테 들었어. 참고인 조사인가 뭔가도 하고. 그게 벌써 며칠이나 지났는데.”

“죽은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래?”

“잘 모르는 사람이야. 신입사원이고 자재과라든가. 기전설비 직원이 100명도 넘잖아.”

“그렇게나 많아? 아무튼 회사 사람이 그랬다는 소문이 있나 봐.”

“직원이? 아직 범인 안 잡혔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는 마스크를 쓰고 자신의 라인으로 걸어갔습니다. 그 일이 정운과는 일절 관련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동료의 얘기를 들은 뒤에도 정운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보름 뒤 정운이 회사에서 긴급 체포되어 지역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소식을 전한 사람은 그날 집까지 찾아와 정운을 데리고 갔던 경찰 중 한 명이었습니다.

“공범이 있었어요. 박순철이라고.”

박순철 씨는 정운과 입사 동기로 저도 몇 번인가 얼굴을 본 적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공범인 박순철이 어젯밤 자살했습니다. 범행 일체를 자백하는 유서가 나왔고요.”

제가 그럴 리 없다고 중얼거리자 경찰은 명료하게 답변을 달았습니다. ‘강력범죄팀’ 푯말이 붙은 사무실에서도 같은 말을 들었고 이어지는 경찰의 수사 내용은 제가 정운을 변호할 필요도, 그럴 입장도 아니라는 걸 말해 주었습니다.

“이정운 씨가 사채 쓰고 계신 건 아셨나요?”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죽은 박순철이랑 회사 자재를 빼돌리다가 자재과 직원한테 들키니까…….”

“왜 그랬대요? 그 사람.”

“사채요. 빚이 있었다니까요.”

“아니요. 박순철 씨요. 왜 자살했대요?”

“왜겠습니까. 미안했겠죠. 사람을 죽였는데.”

왜 그걸 물었을까요. 박순철 씨가 자살했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지만 저에게 쏟아질 질문 세례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경찰은 박순철 씨의 유서를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해 주었습니다. 퇴근 후 스크린 경마장과 성인 피시방을 들락거리며 그곳에서 어울린 사람들과 안마방이니 단란주점이니 하는 곳에 수십 차례 드나들었다고 했습니다. 돈이 떨어지자 사채를 썼고 빚을 갚기 위해 회사에서 납품하는 자재를 몰래 내다파는 처지까지 이르게 된 것이죠. 일이 손에 익자 액수는 점차 늘어났고 대담해졌습니다. 물건이 비는 걸 확인한 자재과 직원(그가 김미영 씨입니다)이 순시에 나서면서 현장을 목격했던 겁니다. 도망가는 김미영 씨를 정운이 잡아챘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도 그래요? 자기가 사람을 죽였대요?”

“이정운 씨요? 지금은 아니라고 하죠. 그런데 상황이 그렇지가 않아요.”

경찰은 박순철 씨의 유서를 직접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저는 그 종이를 만지지도 않았습니다.

“무슨 상황이요. 어떻게 죽은 사람 말만 믿어요.”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목격자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자주 찾던 술집 종업원 증언이 있다고요.”

“그 사람이 다 본 건 아닐 거 아니에요. 회사에서 그랬다던데.”

“죽은 김미영 씨를 데리고 와야 믿겠습니까? 우리한테만 얘길 안 하지. 자백을 했대요. 자백을.”

“자기가 사람을 죽였다고요?”

“울더래요. 생사람을 죽였다고. 정 궁금하시면 오신 김에 만나고 가세요. 설득도 좀 해보시고. 시간 끌면 불리하다는 건 아시죠?”

그때까지도 저는 정운을 믿었습니다. 모든 게 말뿐이지 실감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경찰의 말도, 박순철 씨의 유서도 허상처럼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정운은 누구 앞에서 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의 장례식 때나 입덧이 심해 병원에 실려 갈 때도 정운은 우는 대신 말없이 손을 잡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뭔가 단단히 꼬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정운을 누군가와 착각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유치장으로 향했습니다.

“경찰이 뭐라고 해?”

“박순철 씨가 죽었어. ……그 사람 유서에 다 적혀 있대. 당신이 얘기했던 김미영 씨 말이야.”

“근데, 난 안 죽였어. 여보. 그건 내가 아니야.”

“당신을 봤대.”

“누가?”

“당신을 본 사람이 있대.”

“그게 누구냐고.”

“울었어?”

“울긴 누가 울었다는 거야.”

“당신이 한 말, 다 진짜야? 거짓말 아니고?”

“미안해. 정말 미안한데. 김미영 씨를 죽인 건 내가 아니야. 여보. 그날 회사에는 가지도 않았어.”

“집에 없었잖아.”

“회사 근처에 있었어.”

“근처 어디?”

“술집.”

“그 사람이 봤대.”

“잘못 봤겠지.”

“거기서 울었니?”

“그게 무슨 말이야.”

“빚은 어떻게 할 거야?”

“내가 갚을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다 갚을게.”

집으로 돌아와 한참 동안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정물에서 안정을 느끼는 사람이었고 삶을 향한 의혹은 식탁 위에 떨어진 얼룩쯤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둡고 탁한 자국은 혼자 힘으로 지울 수 있으리라 여겼으나 모든 얼룩을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그 밤에도 몇 번이나 시계를 봤습니다. 정운이 돌아올 것 같다는 착각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웃집의 소음에도 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정운의 어깨를 두드려 주기 위해 식탁 의자에 앉아 근심했던 날들이 그 사람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스크린 경마장과 단란주점을 오가며 그 사람은 나를 생각했을까요. 그날들의 감정과 그날의 진실은 나누어 생각하기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박순철 씨의 유서와 경찰의 말이 모두 사실일까 두려웠습니다만, 더러 그 반대의 경우를 염려했습니다. 누명을 썼다는 정운의 말이 맞는다면,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어느 쪽을 더 바라고 있나 저울질했습니다. 그 심경의 변화를 당신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어느 쪽으로든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채권추심원의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갚지 않으면 압류될 품목을 알렸습니다. 그 억양의 완곡함 때문인지 높은 철조망 앞에 선 듯 막막한 느낌이 들더군요. 그 금액을 여지없이 제가 짊어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수화기 저편에서 고지하는 이는 그게 책임이고 보증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총무팀에서 근무하는 동료의 소개로 변리사를 만났고 이혼이 해결책이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정운을 다시 찾은 건 두 번째 채권추심원의 전화를 받은 직후였습니다. 당장 해결해야 할 빚이 너무나 가까이 있었으니까요.

유리문 건너 빈 의자를 보며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생각했습니다. 가파른 층계로 이루어진 시간을요. 그날 정운의 첫 마디는 탄원서였습니다. 직장 동료들에게 탄원서를 받아 줄 수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오래 준비해 온 말 같았습니다.

“아니면 당신이라도.”

“탄원서? 그게 뭔데?”

저는 그 말의 의미를 알면서도 일부러 되물었습니다. 정운도 그 물음의 의미를 알았는지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도 나처럼 바닥에 있는 얼룩을 찾았을까요. 채권추심원의 첫 번째 전화와 두 번째 전화 사이 경찰은 비닐에 담긴 운동화를 들고 나를 찾아왔습니다. 다 헐어서 버렸다고 생각했던 그 운동화에는 바닥과 겉면에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김미영 씨의 피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운동화가 정운의 것이라는 걸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현장에 있었다는 걸 알리는 결정적 증거였습니다.

“탄원서는 억울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거야. 거기, 당신 같은 사람이 아니라.”

“……그게 나야, 여보.”

그는 울먹이며 말했지만, 진짜 울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날의 진실이 무어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더는 그 사람에게 확인받고 싶지 않았던 탓입니다. 의미 없는 일을 되풀이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같은 해 10월에 열린 1심 재판에 대해서는 몇몇 장면들만 밝히겠습니다. 검사 측은 김미영 씨와 정운의 관계를 추궁했습니다. 정운은 자기가 아니라 박순철 씨가 김미영 씨에게 관심이 있다는 건 알았고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모든 걸 박순철 씨가 제안하고 주도했다고 그 사람은 말했습니다. 누군가 목소리를 높였고 그 살풍경 속에서 저는 변호사 측의 첫 번째 증인으로 재판정에 섰습니다. 선서를 하고 정운의 변호사가 묻는 말에 답한 다음 검사 측 질의에도 응했습니다. 정운의 성격과 범행이 일어난 즈음 행적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알고 있는 게 많지 않았기에 말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았습니다. 말을 할 때마다 진실이 아닐까 봐, 위증이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저는 그 사람에 대해서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요. 제가 증인석에서 물러난 후 검사는 김미영 씨도 저와 같은 임산부였다는 걸 알렸습니다. 부검 결과 밝혀진 사실이었습니다. 태아는 6주였기 때문에 누구의 아이인지는 알 수 없었고 김미영 씨도 자신이 임신했다는 걸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방청석에서 탄식이 흘렀습니다. 저를 흘겨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날 정운에게 선고된 형량은 30년이었습니다.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간 죄였습니다. 한 신문이 이 사건을 다뤘습니다. 정운은 회사 자재를 빼돌리다가 임산부인 신입사원을 살해한 인면수심의 살인범으로 등장했고 저는 살인자의 만삭 아내 A씨였습니다.


무언가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처음과는 달리 끝을 알리는 사람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떤 일은 평생토록 끝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그 무렵 저는 자주 뒤돌아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법원을 나설 때도 그랬습니다. 김미영 씨의 동료나 박순철 씨의 가족이 저를 불러 세울 것만 같았습니다. 오래도록 그 기분은 지속되었습니다. 무언가 따라오는 거 같았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누군가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래서 인적이 드문 횡단보도에서도 신호를 지켰습니다. 누가 묻지 않으면 먼저 말하는 일도 삼갔습니다. 좋아하던 껌도 씹지 않았습니다. 이와 이 사이에 무언가 달라붙는 느낌을 더는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이지요.


아이는 절 끝까지 붙잡아 주었고 재판 두 달 뒤인 1998년 12월 5일 태어났습니다. 이름은 진영. 참 진, 길 영 자를 씁니다. 제가 지은 단 하나의 이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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