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진술인 18화

진술인(4/5)

by 유재영

4


“스티븐 호킹 알아요?”

원장 선생님이 내게 물었습니다. 얼마 전에 뉴스를 봐서 알고 있었습니다. 루게릭병을 앓고 있느냐고 묻자 그건 아니라고 답하더군요. 근골격계 질환으로 인한 지체 장애. 인수(그 아이의 이름입니다)에게 듣기론 어렸을 때 앓은 소아마비가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부모를 원망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나는 원장 선생님의 요청에 따라 운동복 차림으로 출근했습니다. 면접을 봤던 어린이집 건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맞은편 골목에 위치한 주상복합 건물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요. 몸이 불편한 인수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1층 주차장에는 전동식 휠체어 자리도 있었습니다. 누군가 집에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인수 말고 현관문을 열어 줄 또 다른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르고 교회 십자가가 붙어 있는 현관문을 응시하고 서 있었습니다. 문을 연 사람은 다름 아닌 원장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들어가기도 전에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무척 반짝이는 검정 구두였습니다.

“필요한 게 생기면 전화해요. 바깥에서 문이 잠기면 다시 들어오기 힘드니까.”

인사 대신 그가 건넨 말이었습니다. 정해진 시각까지 움직이지 말라는 지시로 들렸습니다.

“인수는 어디 있나요?”

“자기 방에 있겠죠.”

나는 고개를 돌려 거실 안쪽을 살폈습니다.

“저기요. 저기 식탁 뒤편에.”

그의 시선이 식탁 모서리를 가리켰습니다. 그사이 현관문이 닫히고 자동으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인수는 가죽 재질의 어두운 갈색 소파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냥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책을 읽고 있었죠. 독서 거치대를 앞에 두고 『코스모스』를 읽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책이 어떤 내용이고 누가 쓴 책인지 알지 못했어요. 몇 번이나 책을 들추어 본 끝에 제목을 외울 수 있게 된 겁니다. 소파 옆 책상 위에는 그 정도 두께의 책이 여러 권 놓여 있었습니다. 인수는 나보다 네 살 어린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평일에는 특수학교에 다니고 저녁에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가 인수를 봐주었습니다. 수요일과 일요일, 예배가 있는 날에는 인수 혼자 남아야 했습니다. 원장 선생님은 그곳 교회의 장로였고 아주머니도 신자이기 때문이었는데요. 인수도 몇 차례 교회에 나갔으나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일이 인수에게나 평신도들에게나 썩 반기는 일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그런 상황을 꺼린 이는 원장 선생님이었습니다.

“교회 가는 게 싫었어.”

나중에 인수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인수와 함께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한두 차례 화장실 가는 걸 도와주었습니다. 일요일 오전에는 목욕을 시켜 주었습니다. 인수는 능숙하게 옷을 벗고 제 몸을 씻어냈습니다. 아이의 몸을 지켜보며 샴푸나 보디클렌저, 수건 따위를 인수의 손에 쥐여 주는 일만 하면 될 따름이었죠. 가끔 채 씻겨 가지 않은 비누 거품을 닦아내는 일이야 인수 몰래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인수의 몸에는 작은 상처와 시퍼런 멍 자국이 군데군데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것이 골격 이상에서 오는 만성 질환이나 이동 중 몸을 부딪치며 생긴 흔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상처는 인수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주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상처에 관해 물은 건 인수와 좀 더 친해진 뒤 일이었습니다.

나는 인수의 더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을 때가 많았는데 그건 아이가 다치거나 도와줄 일이 있을까 하는 염려이기도 했지만, 인수가 대단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여러 번 시도하고 아파하면서도 끝내 그 일을 끝마치는 집념이 나는 좀 놀라웠습니다. 딱딱한 육체 안에는 유연한 사고와 고고한 정신이 있었습니다. 난감한 상황을 타개하는 위트와 유머도 있었습니다. 인수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그 육체와 정신의 불협(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걸 용서해 주세요)을 한동안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만, 평범한 몸으로 무서운 말들을 쏟아내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요. 시간이 지날수록 인수가 편해졌고 나는 부끄러울 때가 많았으며 그 시간은 즐거웠습니다. 요컨대 인수를 만나고 변한 건 나였습니다.

한 달이 지날 무렵부터는 대화도 부쩍 늘었습니다. 인수는 말을 내뱉는 데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완곡한 어법을 구사했기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오해되는 법이 없었죠. 주로 말하는 쪽은 인수였습니다. 나는 그다지 말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인수는 주로 자신이 읽은 책과 구절에 관해 말했습니다. 학교생활이나 가족들과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죠. 가족을 말한 쪽은 나였습니다. 인수가 묻기에 엄마가 하는 일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인수는 이색 보험 상품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망한 결혼식을 보상한다는 웨딩 보험과 유명 연예인과 운동선수가 신체 특정 부위에 가입한다는 상품을 말하자 둘 다 가입하고 싶다며 웃었습니다. 후자의 경우라면 눈을 두고 한 말이었을 겁니다. 인수는 양쪽 눈동자 색깔이 미묘하게 달랐으니까요. 어렸을 때 겪은 사고의 후유증이라고 했습니다.

“약 좀 발라 줄까?”

일요일 오전 목욕을 끝내고 어깨에 난 상처를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검붉은 멍은 오른쪽 목덜미에 손바닥만 한 크기로 남아 있었습니다. 부기도 상당해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학교에서 그런 거야?”

약을 바르며 내가 말했습니다.

“아니.”

짧은 대답 뒤 인수는 머뭇거렸고 나는 화제를 돌리려고 했지만 그가 다시 무언가 말하고자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건 인수가 내뱉은 가장 어려운 말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수를 학대한 건 원장 선생님이었습니다. 때리는 횟수가 예전보단 확연히 줄었다고 인수는 부연했습니다. 그 덕분에 옳지 않은 습관도 많이 교정되었다더군요. 스무 살, 성인이 되면 그때는 자연히 나아질 것이고 나아지지 않으면 독립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할 때 인수가 내게 보이고 싶었던 건 웃음 쪽이었겠지만, 내가 느낀 게 그의 의도와 같을 수는 없었습니다. 인수는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했고 나는 알았다고 했습니다. 원장 선생님의 행동을 용인해서가 아니고 둘의 관계를 이해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인수를 위해서였습니다. 그 뒤로 그때만큼 심한 멍 자국을 보지 못한 건 내가 보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결정이 옳은 것인지는 여전히 확신이 없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돌아온 원장 선생님이 나를 불렀습니다. 그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막상 얼굴을 대하니 나는 사람 좋게 웃고 있었습니다. 새싹반 선생님이 다음 달부터 육아휴직에 들어가니 일을 맡아 줄 수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그간 인수를 잘 돌봐줘서 고맙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내심 기다린 순간이었으니까요. 그날 제가 잘한 게 있다면 인수와 함께 있는 일도 병행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시간은 겹치지 않았습니다. 인수에게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 주곤 했습니다. 인수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사진을 보여주자 아이들 이름을 한 명씩 외우기 시작했죠.


현장학습을 떠난 건 새싹반을 맡은 지 삼개월이 지난 뒤였습니다. 이웃한 도시에 있는 미술관으로 떠나는 일정에 인솔교사 역할을 맡게 되었죠. 배정받은 버스에 주임 선생님과 함께 타 아이들을 앉히고 안전띠 착용을 도왔습니다. 동승한 차량에는 나무반 아이들이 타고 있었어요. 다섯 살 아이들이었죠. 한 시간 남짓이라는 제법 긴 시간이 걸려 미술관에 도착했습니다. 아이들은 회화보다는 조각 작품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더군요. 긴 팔을 앞으로 내뻗은 동상 밑에서 아이들은 그 손을 잡겠다고 저마다 제자리 점프를 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요.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인수에게 보여줄 생각을 하면서요. 미술관 야외무대에서 점심을 먹은 직후 하늘이 급격히 어두워지더니 일정을 모두 끝마칠 무렵엔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나는 주임 선생님과 함께 비에 젖은 아이들의 옷소매와 두 뺨, 이마를 닦아 주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얼굴을 앞으로 쭉 내밀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까지 모두 안전띠를 착용한 다음 나의 신호에 따라 버스가 출발했습니다.

버스는 월곡 터널 입구에서 좌우로 흔들렸습니다. 조잘거리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작아진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속절없이 잠이 든 건 나였습니다. 눈을 떴을 때는 버스가 이미 옆으로 기울어진 뒤였습니다.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고개를 돌려 빈자리 두 개를 발견했을 때만 해도 상황을 비관하지는 않았습니다. 침착하자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아이들에게 의사 선생님이 금방 오실 거라고 말했습니다. 운전석을 통해 버스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자 뒤따라오던 차 몇 대가 정차한 채로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 멀리 갓길에 엎어진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주임 선생님과 운전기사 그리고 뒤편 차량에서 내린 운전자들이 남아 있는 아이들을 인도로 안내하는 사이 나는 아이가 있는 쪽으로 뛰어갔습니다. 사이렌 소리가 터널 안을 가득 메울 때까지 쓰러진 아이를 안고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사고로 한 아이가 사망하고 한 아이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제가 발견한 아이는 이미 숨이 멎은 상태였고 그보다 앞선 곳에서 또 다른 아이가 발견되었던 겁니다. 만약 승호(제가 안고 있던 아이입니다)를 발견하기 이전에 주희(중상을 입은 아이입니다)의 존재를 알아챘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두 아이의 안전띠가 풀렸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내 책임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그건 나의 잘못이었습니다.

원장 선생님은 사고 소식을 듣고 현장에 찾아와 병원으로 후송되는 아이들을 확인했습니다. 구급차에 오르는 아이들의 등을 쓸어 주고 마지막으로 주임 선생님과 나의 손을 잡을 때 나는 참았던 감정이 터졌습니다.

“괜찮아요. 다 잘 될 거예요.”

원장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아이의 치료를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가 돌변한 건 병원에서 경찰과 보험사 담당자를 차례로 면담하고 난 뒤였습니다. 우리들이 탔던 미니버스 운전자는 개인사업자인데, 그에게 모든 과실이 있는 거라고 원장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너희들 잘못이 아니라고 했을 때, 그 말에 잠시 위안을 받았던 내가 싫었습니다. 원장 선생님은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자책하는 나를 불러내 정신 차리라고 주의를 줬습니다. 피 묻은 티셔츠도 어서 갈아입으라고 했습니다. 아이들 부모님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말라더군요. 나는 낮에 찍어 두었던 사진 몇 장을 떠올렸습니다.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사죄하는 것이 옳았을까요. 내가 매달린 건 중상을 입은 아이의 수술비였습니다. 주희의 부모님은 나만큼이나 어렸고 큰돈을 헐어 쓸 통장도, 도움을 청할 친인척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원장 선생님이 인정하지 않는 까닭에 병원과 보험사에서도 상황을 개선할 방도가 없다고 했습니다.


인수의 집을 찾아가는 건 그 때문입니다. 원장 선생님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봐두었던 금고 안에서 주희의 수술비를 가지고 나올 계획입니다. 그걸 주희 부모님에게 가져다주는 것까지가 내가 할 수 있고, 그가 해야 하는 가장 합당한 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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