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진영은 누구에게 이 편지를 보내려고 했을까요. 나일까요. 아니면 인수 씨일까요.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이 편지의 수신인은 진영 자신이었을 겁니다. 그때는 이런저런 사정을 돌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물 잔에 무엇이 들었고 내 손에 무엇이 들렸는지, 분별할 정신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진영이 죽은 것은 죄책감 때문이라고 했지요. 두 아이를 지키지 못한 죄의식. 버스 사고가 있고 난 뒤 몹시 괴로워했다는 원장의 증언이 뒤따랐습니다. 인수 씨도 동의했다고 했습니다. 반면, 경찰에 제출한 진영의 편지는 수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원장의 방에는 금고가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경찰은 진영이 남긴 편지를 일기라고 표현했습니다. 일기에는 주관과 감상이 담기기 마련이고 특정인을 향한 원망이라고 보기도 어려우니 원한 관계도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빠르게 시인했다는 점을 두고 급성 우울증으로 해석했습니다.
나는 원장을 찾아가 그날 밤, 진영을 만났는지 물었습니다. 만난 사실이 없다며 유감이라고 하더군요. 사고를 당한 아이들, 아이들의 부모와 진영에게 그랬듯이 그는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진영의 장례식도 하기 전에 교회에서는 진영을 위한 특별 기도회가 열렸습니다. 자신들의 건물 옥상에서 떨어진 진영을 위해 뭐라도 해야 했겠죠. 저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진영의 장례식에 교회 사람들이 왔습니다. 그 대열 중에는 원장과 당신이 있었지요. 인수 씨, 그곳에서 당신을 처음 만났습니다. 당신을 알아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십니까. 그날의 진실을 알려달라고 쏘아붙였지요. 당신의 옷을 벗기려고 했습니다. 이 멍 자국을 보라고, 원장은 이런 사람이라고 사람들 앞에서 알리고 싶었습니다. 울지만 말고 어서 말을 해보라고 당신을 몰아세웠습니다. 진영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쳤습니다. 그날 일이 진영을 또다시 난처하게 만들었을까요. 혼절한 뒤 나는 새벽에 식장 가족실에서 깨어났습니다. 지난 몇 주간 그 새벽과 다를 바 없는 날을 보냈습니다. 미안합니다, 인수 씨.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날 어떤 일이 있었나요. 자책하고 괴로워하는 진영에게 인수 씨가 먼저 금고의 존재와 비밀번호를 알려주진 않았나요. 진영의 핸드폰에 여덟 자리 숫자와 우물 정자가 남아 있더군요. 인수 씨의 번호로 온 메시지였습니다. 그날 문을 열어 준 인수 씨에게 방에만 있으라고 말한 건 진영이겠죠. 혹시나 당신에게 피해를 주기는 싫었을 겁니다. 진영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부탁하거나 불편을 끼치는 일을 싫어했으니까요. 진영이 금고가 있는 방에 들어갔을 때, 계획과는 달리 원장이 찾아오진 않았나요.
그러니 인수 씨, 당신이 그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자책하지 말아요. 당신이 그 방에서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지, 그 이후로 얼마나 많은 날을 울음에 휩싸였을지 나는 짐작도 하지 못하니까요.
언젠가 진영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날이 수요일 밤이었는지, 일요일 밤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당신을 돌보고, 아니 당신을 만나고 돌아온 길이었죠. 식탁에 앉아 고객의 보험 상품을 설계하다가 진영을 맞이했습니다. 나는 새로 변경된 설계 프로그램을 익히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알려준 방법 기억나?”
“무슨 얘기야.”
“어렸을 때 엄마가 나 거짓말했다고 혼냈는데, 내가 막 서럽게 울었잖아.”
“그게 어디 한두 번인가.”
“그때 내가 엄마 몰래 생일 선물 살려고 용돈 모은 거였는데. 엄마가 막 오해하고 그랬잖아.”
“그랬나? 미안해서 그랬겠지. 엄마가.”
“그때도 그랬어. 미안하다고. 그러면서 엄마가 알려준 방법이 뭔 줄 알아? 꼭 거짓말이 필요하면 있었던 일을 그대로 써서 나만 아는 곳에 넣어 두랬어. 그러면 괜찮다고. 나중에라도 알 수 있으니까.”
“그래?”
“완전 억지라고 생각했는데. 가끔 생각나더라고. 그걸 인수에게 알려주면 어떨까 하고.”
진영은 물을 한잔 들고 와서 제 앞에 앉았습니다. 그걸 여러 번 나눠 마시다가 히죽 웃더군요. 그리고 다시 말했습니다.
“엄마, 물 한잔 가져다줄까?”
그렇게 건너편에 앉아 다정하게 묻는 진영이 끝없이 떠오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