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진술인 20화

둘은 하나의 단단한 단위(1/2)

by 유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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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디에 나왔던 문장인지 기억나?” 제목을 붙이고 나서 내가 말했다.

동지는 입술을 다물고 고개를 저은 다음 창밖을 바라보았다. 며칠째 비가 그치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건 그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그가 아는 걸 나는 대체로 몰랐다. 그는 아는 걸 말하는 사람이고, 나는 그를 믿는다.

얼마 전 미셸 오바마는 결혼 28주년을 맞았고 남편을 창밖으로 밀고 싶을 때가 있다고 고백했다. 경찰서나 법정에서 한 발언이 아니라 그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에서 코난 오브라이언과 결혼 생활을 주제로 대화하던 중 나온 말이었다. 젊은 부부들은 다투고 나서 “우리는 끝났다”라고 생각한다면서, 자신도 그런 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결혼 생활을 포기했다면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 수많은 아름다움도 놓쳤을 것이라고 말하며 오랜 결혼 생활의 비결로 ‘인내’를 꼽았다. 승리를 위해 솔직하게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동지를 선택하고, 다양한 상황을 함께 맞닥트리고 겪어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도 전했다. 나는 다른 사람의 결혼 생활에는 좀처럼 관심이 없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창틀을 꽉 붙잡고 살아야 했기 때문인 거 같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 내 결혼 생활만으로도 곱씹을 장면이 충분히 많은 까닭이었다. 마침 나는 결혼 10주년을 맞아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소설을 쓰고 있다. 글은 잘 풀리다 못해 장황해지고 있는데, 요즘은 죽음을 앞둔 남편이 자신을 변호하는 에피소드가 무한정 길어지고 있어서 곤란할 지경이다. 아마도 퇴고 과정에서 잘려 나갈 듯싶지만 그래도 초고니까, 일단 남편의 이야기는 다 들어볼 작정이다. 돌이켜보면 결혼 3년 차에 이혼한 부부가 등장하는 소설을 써서 등단했고, 6년 차에는 편집자와 작가로 등장했던 부부가 이혼한 뒤 각자 행복한 이혼 생활을 영위하는 이야기를 써서 첫 소설집 마지막 작품으로 수록했다. 쓰고 있는 이야기도 작년에 초안을 마련한 작품이니, 내 결혼 생활을 굴절시킨 파국 서사는 3년 주기로 찾아오려나 싶다.


지금껏 발표한 십수 편의 단편 소설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만큼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는 ‘러시아’다. 영국이나 핀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아니고 왜 하필 러시아일까? 지역 간 시차가 총 11시간에 이르는 세계 최대 영토 보유국이기도 하거니와 고골과 체호프, 도스토옙스키 등 대문호가 이 땅에서 살았기에 그들이 속하거나 만들어 낸 세계, 가령 시베리아 노동수용소, 붉은 광장 혹은 외투를 잃은 채 매서운 추위를 짊어지고 걷는 인물을 심심치 않게 그려 왔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그래도 「하바롭스크의 밤」을 쓸 때는 명확한 사유가 있었다. 하바롭스크 일대 벌목사업소를 북한에서 운영한 사례를 눈여겨보았고 그곳에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여러 사건, 사고가 있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특히 남과 북의 인물이 함께 일하는 장면에 매혹되어 가보지 않은 세계를 꿈꿨다. 소설의 뼈대를 완성해 나가면서 내가 구상한 로그라인과 겹치는 역사적 인물을 알게 되었던 것은 집필 후반부에 큰 동력이 되었다. 그도 가보지 않은 세계를 꿈꾼 사람이다. 한국 최초의 공산주의자로 레닌이 이끄는 러시아 볼셰비키당에 가입하고 러시아혁명에 참여했던 김 알렉산드라. 그는 하바롭스크 소비에트 외무위원으로 일하며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조직인 한인사회당을 탄생시키는데 앞장선 인물이다. 1918년 10월 백군에 의해 처형당한 곳도 하바롭스크 아무르강 유역이었다. 더군다나 1915년부터 우랄 지방의 벌목장에서 통역으로 일하며 현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처우를 개선하는데 힘쓴 노동 운동가이기도 했다. 겨울 벌목장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김 알렉산드라가 이곳 ‘하바롭스크의 밤’에 와주길 바랐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탈주하는 남성들의 서사에 그의 자리는 없었다. 대신 「하바롭스크의 밤」을 쓴 뒤 작가로서 말할 일이 있을 때, 김 알렉산드라의 말이나 그가 지나온 이력을 흉내 내 말하곤 했다. 가보지 않은 세계를 그리는 것이 소설 쓰기라고 생각한다거나, 쓰는 일이야말로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기묘한 무기일지 모른다고 말이다. 내가 언급한 ‘소설’의 자리는 사회주의, 그러니까 김 알렉산드라가 꿈꾼 이상적인 사회가 들어갈 자리였다. 「만화경」의 경우도 그랬다. 나는 러시아 대문호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가 종국에 연희문학창작촌에 다다르는 엉뚱한 이야기에서 ‘왜 쓰는가’라는 주제를 억지로 갖다 붙인 바 있다. 여기엔 사회주의 혁명가 김산의 목소리가 있다. 님 웨일스에 의해 기록된 그의 목소리는 소설 여러 장면에서 각색되어 등장했다. 가령, 시를 써서 신문사나 잡지사에 보내 몇 편이 채택되어 몇 원을 벌었다는 이야기는 안톤 체호프의 경험에 덧씌워 등장시켰고, 김산이 자신을 모함한 한 씨를 찾아가 칼을 건네며 “나는 나 자신을 죽일 힘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하자 한 씨가 눈물을 떨구었다는 일화는 안톤 체호프를 찾아간 막심 고리키의 이야기로, 또한 김산이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 나 자신에 대하여만 승리했을 뿐”이라는 독백은 막심 고리키가 만화경의 비밀을 마주하는 대목에서 각기 영향을 받았다. 간혹 내가 훔쳐보고 전해 들은 그들의 이력과 목소리의 본체, 그러니까 김 알렉산드라나 김산 혹은 님 웨일스가 내게 다가와 멱살을 잡고 “너구나, 이 나쁜 놈. 혁명을 팔아먹다니, 네 것 따윈 필요 없어!”라고 말하는 악몽을 꾸지 않을까 걱정하고 내심 기대했지만, 그와 비슷한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2019년 겨울, 내가 그곳에 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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