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진술인 15화

진술인(1/5)

by 유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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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새벽 5시면 눈이 떠졌습니다. 화장실에 다녀와 식탁 의자에 앉아 있다가 냉장고에 있는 찬으로 간단히 허기를 채우곤 했지요. 그날은 일요일이었으므로 출근 준비 대신 텔레비전을 틀었습니다. 현관 벨이 울릴 때만 해도 텔레비전에서 나는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경찰입니다. 이정운 씨 좀 뵈러 왔는데요.”

경찰이란 말에 놀란 나머지 보안 줄도 걸지 않고 문을 열었죠.

“무슨 일이시죠?”

“회사 일 때문에 왔습니다. 이정운 씨 안에 계시죠?”

경찰은 정운의 이름을 재차 확인하며 문틈으로 한 발짝 다가왔습니다. 짧은 시간에 집 안 곳곳을 살피더군요. 벽에 붙어 있는 결혼사진을 보고는 신혼이신가 봐요,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잠시 기다리란 말을 남기고 침실로 향했습니다.

“여보, 일어나 봐. 경찰서에서 사람이 왔어.”

정운은 금방 눈을 뜨더군요.

“경찰?”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일?”

“회사 일 때문에 왔다던데?”

정운은 침대에 걸터앉아 눈가를 손바닥으로 천천히 문지른 다음 문을 열었습니다. 제가 뒤따라 나갔을 땐 현관문이 막 닫히고 있었습니다. 저는 닫힌 문을 바라보며 식탁 위에 묻은 얼룩을 행주로 닦아내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손등으로 쓸어 담았습니다. 문 밖에서 정운의 기침소리만 작게 들렸습니다. 일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들어온 정운은 침실에서 지갑과 휴대폰을 챙겨 나왔습니다. 그러고는 집을 한 차례 훑어보더군요. 경찰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둘러보듯이 말이죠.

“무슨 일인데?”

“금방 올 거야. 어디…… 안 갈 거지?”

정운은 차분한 음성으로 대꾸했습니다. 정운의 목소리는 대개 낮았고 무심한 투였습니다. 가끔 그 말투와 성격이 몹시 답답하다고 느꼈으나 예고에 없던 일이 닥치는 순간, 그러니까 임신 초기 몸의 변화가 극심할 때나 급하게 돈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안도를 느끼곤 했습니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가긴 어딜 간다고.”

그는 작년에 사두고 몇 번 신지 않은 운동화를 신발장에서 꺼내 신었습니다. 발볼이 좁아 불편하다며 신발장 맨 위 칸에 올려두었던 운동화였습니다. 다 해진 운동화 한 켤레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그가 나간 후에 알았어요. 드디어 버렸나. 베란다에서 골목 쪽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그곳에 서서 정운의 정수리를 몇 번이나 지켜보았는데 그날 정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찾지 못한 걸 수도 있겠죠. 휴일에 누군가에게 불려 나간 일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제조팀 소속으로 일하다가 결혼을 앞두고 영업팀으로 배속되면서 밤낮으로 사람을 상대할 일이 많았던 겁니다. 변경된 업무로 인해 스트레스가 있었을 텐데도 회사 일은 좀처럼 입 밖에 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날은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고 정운이 현관문 여는 소리에 설핏 잠에서 깼습니다. 불 꺼진 침실로 들어와 몸을 눕히는 정운의 몸이 평소보다 가볍게 느껴졌던 건 그저 느낌 탓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나간 일의 무게는 조금씩 줄어들게 마련 아니던가요. 그와는 어둠 속에서 몇 마디를 나누었습니다. 반쯤 잠이 든 상태였는데도 그 밤 나누었던 대화가 기억납니다. 돌아누운 정운에게 시간을 묻고 난 뒤 무슨 일이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사고가 있었대. 사람이 죽었어. 자재과 김미영 씨라고. 경찰서 들렀다가 소주 한잔 하고 오는 길이야. 졸지에 부서 회식을 다 했네. 참고인 조사인가 뭔가 때문에 다들 왔더라고.”

“새로 들어온 사람?”

“응.”

“젊은 사람이 왜.”

“모르지.”

“그런데 왜 회사에서 죽었대?”

“그러게. 왜 회사에 있었을까. 그 시간에.”

“어떻게 죽었대?”

“…… 그냥 죽었대. 그냥, 엎어진 채로.”

정운은 시간을 두고 답했습니다.

정운의 낮고 작아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저는 까무룩 잠이 들었습니다. 김미영 씨는 왜 엎어져 있었을까, 동료가 죽었다는데 이 사람들은 무슨 회식을 할까, 또 나는 왜 이렇게 평온할까, 왜 이리 대책 없이 잠이 쏟아질까, 임신한 사람들은 다 이런가. 잠들기 직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정운의 침묵에서 새어 나왔던 균열을 읽어낼 틈도 없이 필사적인 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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