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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 에세이스트 J Jul 28. 2023

너와 나, 그 찬란하고 치명적인 굴레에 대하여

클로즈(2022)

두 소년이 빈집에서 속삭이고 있다. 자신들을 잡으려는 80여명의 사람들이 이 집을 포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를 기다려 사람들을 피해 잽싸게 달아나는 소년, 레오와 레미. 강렬한 여름의 태양아래 선명한 빛깔의 꽃들이 가득한 벌판을 가르며 미소 가득한 그들은 힘차게 달려간다. 물론 그들을 쫓는 무리 따위는 없다. 그것은 소년들이 만들어낸 그들만의 세상에만 존재할 뿐이며, 따라서 소년들의 세상 밖 누구도 그 무리를 보거나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바로 이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며, 이 세상의 붕괴, 그리고 살아남은 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클로즈의 감독 루카스 돈트는 2018년 자신의 첫 장편 영화였던 ‘걸’을 통해 일찌감치 천재성을 알린바 있는 벨기에의 젊은 감독이다. 소년과 소녀의 경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던 ‘걸’의 라라의 세계관이 이번 영화 클로즈에서는 더욱 확장되고 보편화되어, 비단 정체성에 대한 고민뿐 아니라 인생의 어느 한 시절 소중한 인연의 상실과 그것을 통한 성장을 생각하게 한다.  


1. 우리라는 독보적 우주

벨기에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13살의 레오와 레미. 가족보다 가까운 그들은 항상 함께였다. 풍부한 상상력과 섬세한 감정을 지닌 레오와 귀여운 미소를 띄운 채 무조건 적으로 레오를 따르는 레미. 이 들의 세상에는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었고, 그 누구도 필요치 않았다. 그 해 여름, 꽃보다 아름다운 두 소년은 완벽하게 자신들만의 세상에 속해 있었다. 


생의 한 시절, 특별한 의미를 갖는 사람이 나의 일생에 머문다. 평생을 서로 무관하게 살다 어느 한 시점에 교차하여 나의 인생에 뛰어든 그 덕분에 나의 인생은 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무엇인가가 되어버린다. 나와 그만이 알 수 있는 언어, 은밀하게 교차하는 눈빛, 손 닿는 곳 어디에나 머무는 그의 존재로 인해 나는 그의 누군가가 되어가고, 그렇게 그도 나의 누군가가 되어간다. 각각의 존재가 만나 ‘우리’가 되어버린 그 시간, 우리라는 유일무이한 세상에는 그 누구의 입장도 허락 되지 않는다. 나만 아는 그, 그만 아는 나로 존재하는 그 시간은 그렇게 ‘우리’라는 관계 속에서 불멸의 생명을 얻는다. 그렇게 탄생한 하나의 우주가 비밀스럽게 숨을 내쉰다.  


2. 관계의 치명적 숙명, 배타성

둘 만의 세상에서 행복한 여름을 보낸 레오와 레미는 중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타인을 의식하며살 필요가 없던 그들이 타인들로 가득한 세상 속에 내던져지며, 둘이 만든 세상의 공고함이 시험대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외부의 시선과 타인의 목소리가 끼어들 틈이 없던 그들만의 세상이 타인들에 의해 관찰되고 비판되어지면서, 레오는 급격하게 레미에게서 등을 돌린다. 레오와 레미가 만든 작은 우주, 둘 중 하나라도 사라지면 통째로 사라져버릴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우주는 이렇게 한 사람을 잃음으로써 전체를 상실한다. 남아있는 자, 레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사라진 우주, 그 텅 빈 공간에서 그는 더 이상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에게는 레오가, 그리고 레오와의 그 우주가 삶의 이유이자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의 우주는 영원히 심연으로 사라진다.


<판타스틱 우먼의 마리나>

2017년 영화 ‘판타스틱 우먼’의 주인공 마리나는 사랑하는 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자신의 우주를 잃어버리고 어제까지 자신의 것이었던 우주에서 미아가 되어버린다. 세상 단 한 명, 나에게 의미를 부여해 준 사람의 상실은 단지 한 명의 죽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의 다른 한 축이었던 이의 삶마저 죽음과 같은 상태로 데려갈 수 있음을 마리나는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단 한 사람, 특별한 이와 맺는 ‘친밀한’ 관계는 배타성을 전제할 수 밖에 없는 숙명을 갖는다. 너와 나라는 관계는 너와 나 사이에 그 누구도 개입할 수 없으며, 그렇기에 너와 나 둘 중 하나가 사라지면 곧바로 그 관계 역시 사라져야 하는 운명을 지녔기 때문이다. 관계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상실의 고통은 커진다. 이 비극적 반비례성을 안고서 우리는 끝없이 관계를 맺는다. 어쩌면 이것은 필멸의 인간이 지닌 시지프스의 숙명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3. 또 다른 우주를 향하여

레미를 가멸차게 내쳤던 레오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어쩌면 레미 자신보다 레미를 더 사랑했었을 레오는 주변의 생각 없는 말들과 편견 어린 시선으로 자신의 내밀한 비밀, 혹여나 하는 정체성의 비밀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웠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은 결국 사랑하는 레미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해 있던 세상을 파괴하는 행동이었고, 선택의 결과는 레오에게서 삶을 앗아갔다. 사랑을 숨기기 위해 슬픔마저 억누르던 레오는 결국 사랑을 드러내며 오열하고, 그제서야 레오는 아름다웠던 한 시절을 뒤로 한 채 앞으로 나아간다. 하나의 우주는 사라졌지만 또 다시 올 우주를 향해서 말이다. 



<줄리안 반스와 그의 아내 팻>

평생의 사랑이었던 아내를 사별하고 5년의 애도 끝에 작가 줄리언 반스는 자신의 에세이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Levels of Life)’ 를 통해 사랑하는 이를 잃고, 순식간에 전복된 자신의 우주를 떠돌며 자신이 느꼈던 소회를 적어 놓았다. 5년간이나 아내의 죽음에 침묵하던 그였지만, 클로즈의 레오가 마침내 감정을 분출하고 나서야 한 시절을 떠나 보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듯, 줄리언 반스 역시 헤아릴 수 없는 깊이의 고통을 경험하게 한 상실의 면면을 한 자 한 자 지면에 담음으로써 한 사람과의 기나긴 한 시절을 뒤로 하고 삶을 이어나갔던 것이다. 관계에서의 영원성이란 무엇일까? 관계의 붕괴는 누구의 책임일까? 책임을 물을 수나 있을까? 특별한 한 우주의 상실은 더 이상의 우주란 없음을 선포하는 최종적인 선고일까?



우리가 한 우주를 상실한다 함은 그 우주와의 영원한 작별이 맞다. 그러나 우리의 삶 자체는 커다란 우주이며, 그 우주 안에서 우리는 단 한 개의 우주를 단 한번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우주를 몇 번이고 만들고, 만든 만큼 상실하는 경험을 반복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상실을 통해 원치 않는 성장을 하게 된다. 클로즈의 레오가 결국 발길을 돌려 앞으로 나아갔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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