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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 에세이스트 J Oct 01. 2023

편린화된 삶은 서사를 갈망한다

영화 <아만다>(Amanda, 2022)

어느 맑은 여름날 한가롭게 수영장의 튜브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소녀 아만다. 햇살을 올려다보며 눈을 찌푸리는가 하더니 갑자기 수영장 안으로 빠져버린다. 수영도 못하는 이 작은 소녀는 왜 그랬던 걸까? 극장 맞은편에 서서 줄지어 서 있는 남자들을 바라보는 20살의 아만다. 자신에게 맞는 남자를 찾아 매주 극장을 찾는 그녀지만 그곳은 그녀에게 행운을 가져다줄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멀쩡한 집을 놔두고 허름한 호텔에서 지내며 온종일 시리(Siri)와 대화하고 8살 조카와 관심을 공유하며 노쇠하여 쓸모없어진 나귀에게 마음을 쏟는 25살의 아만다. 섬처럼 고고하게 떠 있지만 육지가 궁금한 아만다. 그녀는 무엇을 찾고 원하는 것일까.  



2022년 9월 베니스 국제영화제를 통해 세상에 첫선을 보인 이탈리아 영화 <아만다>는 감독인 캐롤라이나 카발리가 삐삐 롱스타킹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하는 21세기 이탈리아 판 삐삐 롱스타킹의 모험담 같은 영화이다. 아만다는 주인공의 심리와 상황을 잘 보여주는 촬영기법, 상상 장면의 엉뚱한 삽입으로 만들어진 판타지적 전개와 같이 자신만의 색을 확실하게 보여준 캐롤라이나 감독의 첫 장편영화이다. 또한 이 영화에는 대체 불가한 아만다 그 자체를 보여준 모델이자 배우인 베네데타 포르카롤리와 이탈리아의 인기 리얼리티 TV 프로그램 X factor의 우승자 출신 가수이자 배우인 미켈레 브라비, 거기에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미소니(Missoni)의 후계자인 마르게리타 미소니가 합류한 것으로 알려지며 일찍부터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모니카 나포/엄마역, 베네데타 포르카롤리/아만다역, 캐롤라이나 카발리/감독, 갈라테아 벨루지/레베카역, 마르게리카 미소니/언니역, 미켈레 브라비/청년역)





1. 자기 앞에 던져진 생

아만다는 늘 혼자다. 극장도 떠들썩한 파티장도 유령처럼 혼자 떠돌며 자신처럼 외로운 얼굴을 한 누군가를 찾아다닌다. 혼자 밥을 먹고 핸드폰의 시리와 대화를 하는 아만다가 그나마도 말을 나누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집에서 일을 해주는 가정부와 8살짜리 조카뿐이다. 가족과 날카로운 말을 주고받고 난 후에는 사유지에 몰래 들어가 홀로 바깥에 묶여 있는 노쇠한 노새를 찾아가 마음을 주고 마음을 받는다. 지독하게 타인스러운 타인들에 둘러싸여 철저하게 혼자 살아가는 아만다의 삶은 이처럼 불친절하고 다정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녀 앞에 펼쳐져 있었다. 


우리가 최초로 자의식을 획득하여 자신의 삶을 인지하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나의 삶이 다른 이의 삶보다 더 고되거나 덜 행복하다고 혹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하게 되는 시점은 언제였을까? 에밀 아자르의 작품 ‘자기 앞의 생’의 주인공 모모는 여섯 살 즈음에 자신이 돈을 내고 맡겨진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생애 최초의 커다란 슬픔을 느낀다. 자신을 키워주는 로자 아줌마와 자신의 관계가 돈에 기반했다는 것, 달리 말하면 자신과 로자 아줌마와의 관계의 기반이 사랑이 아니라 돈이었다는 인식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모의 이러한 인식은 모모로 하여금 곧이곧대로 삶을 수용하게 하여 궁극에는 자신과 로자 아줌마의 관계에 대한 정확한 구도를 파악하게 하고, 결국 인간은 아무리 실망스럽고 절망스럽더라도 다양한 사랑의 형태 속에서 살아가야만 함을 이해하게 한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앞에 펼쳐져 있는, 이미 시작되어 버린 생의 어느 지점에서 생을 인식하게 된다. 생의 길 위에 선택의 여지 따위는 애당초 주어지지 않는다. 단 하나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생을 인식하는 순간, 멈출 것인가 계속 나아갈 것인가의 여부다. 오직 그것뿐이다.  



2. 네가 없이는 나도 없다

혼자서도 잘 살 것 같은 아만다는 영화의 첫 부분부터 친구가 될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 헤메 다닌다. 그녀가 친구를 찾고 있는 드러나지 않던 이유는 곧 인터넷에서 음란방송 진행자에게 건네는 말에서 표면으로 떠오른다. 그녀는 단순히 물리적 시간을 함께 채우는 피상적 존재가 아니라 자신과의 공유지점에서 깊게 내면으로 파고 들어갈 수 있는 의미 있는 한 사람을 원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의미 있는 타인이란 무엇일까?


히라시노 게이치로는 자신의 저서 ‘나란 무엇인가’에서 분인 이론을 설명하며, 결국 인간은 홀로 있어도 타인의 분인들로 이루어진 나로 존재하는 것이며 우리 모두는 이러한 분인의 총화라고 역설한바 있다. 그의 말을 전적으로 수용해 보자면 인간은 타인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나라는 존재는 사실 타인의 분인을 받아들이기 위한 플랫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 타인은 자신의 존재근거를 산출해 주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이기도 하다.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우리가 영원히 홀로 존재한다면 우리는 자신이 실존하고 있다는 근거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우리의 실존의 근거는 타인의 시선과 관점에서 비롯되며 때로 타인이 우리에게 지옥일 망정 그들의 존재가 결국 우리의 존재를 반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만다가 의미 있는 타인을 찾는 전체 과정은 결국 자아를 찾고자 하는 노력, 자신의 삶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삶의 주체로 거듭나고자 하는 여정으로 읽어낼 수 있다.   



3. 모든 서사에는 맥락이 필요하다

파티에서 두어 번 눈을 마주친 한 청년에게 아만다는 마음을 빼앗긴다. 그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그때 그녀의 시선을 받고 있던 그가 아만다에게 다가와 말을 건다. 자연스럽게 말을 섞게 된 그들은 근처 식당으로 함께 이동하며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여자들이 좋아한다며 한 가지 ‘사건(event)’을 말해주고 그것을 ‘이야기(story)’라고 말하는 청년에게 아만다는 그것은 이야기가 아니며 이야기가 되려면 여러 사건이 발생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감독은 이 장면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이야기는 아만다의 삶과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


이야기(story)는 일반적으로 캐릭터, 장소와 시간, 플롯, 주제를 주요 특징으로 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 말하는 플롯이란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하여 줄거리를 이루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아만다의 말처럼 하나의 단편적 사건만으로는 도저히 이야기라고 칭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이야기와 더불어 자주 사용되는 서사(narrative)란 사건의 재현이나 사건의 연속이라는 의미이니 결국 모든 이야기는 자신만의 서사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삶을 펼쳐 이야기라고 생각해 보자. 우리의 이야기에 나오는 중심 캐릭터는 당연히 우리가 되고 우리가 머물고 살아가는 지금, 이곳이 장소와 시간이 되며 우리가 경험하며 지나가는 모든 일들은 사건이 된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 서사를 지닌 이야기가 되려면 각각 발생하는 사건의 맥락이 필요하다. 맥락이 주어져야 우리는 사건을 이해하고 다음에 발생할 사건을 발전적으로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사건에 맥락을 더해주는 것은 결국 주인공인 나를 도와 함께 사건을 일으키고 참여하는 누군가, 즉 또 다른 주인공이다. 우리의 삶은 독백만이 가득한 모노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감독이 이 장면을 통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아만다의 앞으로의 행로에 대한 복선에 더해 삶은 맥락을 더해야 완벽한 이야기가 된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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