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마일펄 Feb 03. 2021

소소한 즐거운 쇼핑 천국, 포르투갈

포르투갈 기념품들


좋은 사람, 맛있는 음식과 함께 여행에서 쇼핑은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쇼핑이라고 하니 세련된 옷가게가 즐비한 패션 거리에서 양손 가득 브랜드 로고가 적힌 종이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 소비의 정점을 찍는 거창한 쇼핑이 아니라 여행 순간을 기억할 만한 기념품, 지인들에게 선물할 잡동사니를 구매하는 쇼핑이다. 한참을 둘러보고 결국 내 손에 남는 건 공들여 고른 엽서 몇 장일 때가 대부분이지만. 관광지에 기념품 가게는 많지만 막상 마음먹고 고르려고 하면 희한하게 별로 살 만한 물건들이 없다. 실용성이 떨어지거나 만듦새가 조악하다. 그게 그거 같고 생각보다 비싸다. 꽤 여러 여행지를 다녔지만 포르투갈만큼 소소하고 즐거운 쇼핑을 하기에 좋은 나라가 없었다. 나라마다 여행에서 이건 꼭,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포르투갈에서는 스트리트 마켓, 잡화점 등에 들러 눈요기를 하며 시간 보내기이다.




테일러 와인 하우스에서 투어를 마치고 도루 강변에 왔다. 날씨 좋은 주말 이어선지 나들이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고, 강변을 따라 스트리트 마켓이 쭉 펼쳐져 있었다. 어느 상점을 갈까 고민을 하다 그냥 걷다가 발걸음이 멈추는 곳을 들르기로 했다. 다른 곳보다 몇 유로 더 비싸지만 질이 좋아 보이는 디자인 행주가 눈에 띄길래 멈춰 서서 구경을 했다. 새하얀 천에 라일락, 하트, 작은 새, 신랑 신부, 네잎 클로버 등 다양한 모양이 정성껏 수놓아져 있었다. 물론, 공장에서 기계로 만든 제품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의 재질이 좋고 박음질이 깔끔해서 정성스럽다고 느껴졌다.


신혼집에서 잘 어울릴 것 같길래 결혼을 앞둔 친구에게 선물할 디자인을 몇 개 먼저 골랐다. 내 것은 좋아하는 보라색 라일락과 하트 모양을 샀다. 분명히 행주인데 행주로 사용하기에 아까워서 아직까지 수납장 안에 모셔 두고 있다. 가끔 물건을 정리할 때 눈에 띄면 꺼내서 ‘이걸 어디에 쓴담?’이라고 고민을 한다. 이젠 원래 용도인 행주라기보단 내 전용 고민을 불러일으키는 요상한 물건에 더 가까워졌다. 아무렴 어때. 즐거우면 그만이지. 아마도 포르투에서 이 행주를 봤을 때부터 예정되었던 일인 것 같다.


포르투갈의 가장 북쪽, 미뉴 지방에는 여인들이 면이나 리넨 천에 수를 놓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연인들의 손수건에는 사랑을 고백하는 말과 그들만이 알 수 있는 문양이 수놓아져 있다. 예를 들어, 개나 비둘기는 신의를, 열쇠는 두 연인의 마음을 연결해준다는 의미이며, 길게 늘어진 꽃과 식물 줄기는 사랑의 울타리를 빗대고 있다. 이 모티브는 오늘날 식탁보, 오븐용 장갑, 수건, 그릇 등 다양한 소품에서 활용되고 있다. 디자인 행주를 보고 괜히 한국에 있는 예비 신랑, 신부가 떠오른 게 아니었다.


예쁜 문양이 수놓여진 포르투갈 행주




포르투갈에는 내가 산 행주처럼 꼭 가내수공업을 했을 것 같은 예쁘고 아기자기한 잡동사니들이 많다. 디자인이 워낙 다양해서 무엇을 고를까 고민하는 즐거움에 빠진다. 아줄레주 모양이나 코르크 재질을 활용한 물건들이 많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전 세계 코르크 생산량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코르크 1위 생산국답게 코르크로 만든 가방과 신발까지 판매한다. 에스프레소 잔, 아줄레주 문양에 테두리는 코르크로 된 냄비받침, 정어리(사르디나) 모양 세라믹 그릇 등도 인기다. 독특한 디자인 접시와 컵도 많아서 요리나 플래이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상점을 누빌 것이다. 부피는 크고 깨질 우려가 있어서 막상 구매는 망설이다 포기한 채 빈손으로 돌아올지라도 행복한 여운은 남을 것이다.


디자인과 크기가 다양한 화려한 수탉 장식품은 어디를 가나 눈에 띈다. 진실과 희망, 행운을 상징하는 바르셀루스의 닭(O Galo de Barcelos, 우 갈루 드 바르셀로스)이다. 포르투갈어로 수탉은 Galo 갈루이다. 한 순례자가 바르셀루스에서 물건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교수형에 처할 위기에 놓였다. 그는 자신이 결백하다면 재판관 앞에 놓인 구운 닭이 소리를 내 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처형을 하려는 순간, 구운 닭이 살아나 소리 높여 우는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고 순례자는 누명을 벗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시, 스토리는 평범함을 특별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있다.


바르셀루스의 닭




렐루 서점 근처의 ‘Fernandes, Mattos & Ca., Lda.’라는 상점도 인상적이었다. 이미 만원인 렐루 서점 관람을 포기하고 근처를 서성이다가 발견한 가게였다. 겉에서 볼 때보다 매장 안은 훨씬 넓었고, 계산대 없이 진열대로 가득 찬 2층은 구경을 해도 해도 끝이 없을 정도였다. 비누, 컵, 그릇, 핸드로션, 잼과 초콜릿, 가방과 선글라스 등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품목을 판매했다. 구경은 재미있고 독특한 디자인에 품질도 좋았지만 가격은 살짝 비싸다고 느꼈다.


기껏해야 참치, 고등어 통조림을 접해봤는데 정어리, 대구, 참치는 기본이고 문어와 이름 모를 해산물 통조림 천지였다. 세상에 이토록 다양한 생선 통조림이 존재할 수 있다니. 사탕이나 초콜릿 포장 같은 알록달록한 예쁜 패키지도 마음에 들었다. 브랜드와 크기가 제각기 다른 올리브 오일과 올리브 장아찌도 탐이 났는데 부피와 무게 때문에 사지는 못했다. 외국인에게 김치란 아마도 배추김치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인 나는 한끼 식사에서 배추김치를 먹으면서 파김치, 깍두기를 같이 먹을 줄 안다. 같은 배추김치라도 식성에 따라 익은 것과 덜 익은 것, 겉절이 등 선호하는 맛도 다르다. 한국인이 다양한 김치 종류에 익숙하듯이 다채로운 통조림과 올리브를 보고선 ‘아, 이곳은 포르투갈이구나’ 싶었다. 대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쁜 상점 안에서 포르투갈 어업과 농업의 단면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포트 와인도 절대 빼놓을 수 없다. 나는 테일러 와이너리에서 LBV(Late Bottled Vintage)와 토니 와인을 구매했다. 포트 와인이야 말로 각종 상점, 시장, 면세점까지 아주 흔하기에 마음에 드는 곳에서 사고 싶을 때 살 수 있다.


사실 가장 눈여겨본 쇼핑지는 신트라 시가지이다. 많은 소품들이 신트라의 감성적이면서도 아기자기한 매력을 머금고 있었다. 집안 곳곳에 멋스러움을 더해줄 벽에 걸 디자인 타일이나 패브릭 포스터, 탁상 위에 놓을 장식품 등을 장만하기에 이보다 좋을 순 없었다. 여행 초반이라 짐을 늘릴 수 없어서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계속 보면 욕심이 생길까 봐 구경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대강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포르투갈에 다시 간다면 그때는 신트라 시가지를 천천히 누비면서 소소한 행복한 시간을 마음껏 즐기고 싶다. 다 즐겨 놓고 아직도 신트라 쇼핑에 미련이 남았다니.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며 반성하기보다 속물근성을 인정하는 게 빠를 것 같다.


신트라 시가지에서 판매 중인 장식품들


신트라 시가지에서 발견한 표지판 모형

▼ 위 내용을 바탕으로 더 많은 사진과 보실 수 있도록 내레이션을 넣어 영상으로 제작했습니다. 관심있는 분은 아래 영상을 살펴봐주세요. ^^

이전 25화 독보적인 예술로 승화한 밋밋한 진흙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