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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Feb 08. 2021

살면서 우연히 만난 해리 포터 흔적들

의외로 해리 포터의 도시 '포르투'

런던 킹스크로스 역 London King's Cross Station: 에든버러 Edinburgh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들렀다. 일찍 도착을 해서 두리번거리며 구경을 했다. 웬걸! 역 한쪽에 해리 포터 9와 4분의 3 플랫폼이 꾸며져 있었다. 한 손으로는 반쯤 벽으로 들어간 캐리어 모형 손잡이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마법 지팡이로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Wingardium Leviosa’를 외칠 수 있다. 전담 직원이 빨강과 노랑이 교차되는 그리핀도르 머플러 끝을 잡아서 흩날리는 장면을 연출해준다.

스코틀랜드 글렌피넌 고가교 Glenfinnan Viaduc: 하이랜드 당일 투어를 갔다. 높은 아치 위로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에 맞춰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나는 해리 포터 팬도 아닌데…… 저 기차는 진짜 호그와트로 가는 열차도 아닌데…… 칙칙폭폭 달려오는 기차를 보겠다고 있는 힘껏 달렸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래야만 했다. 전력 질주 끝에 몇 초간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렇게 상쾌하고 동심으로 돌아간 듯 유쾌할 수가 없었다.

옥스포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 University of Oxford Christ Church College: 건물 앞 정원은 한눈에 호그와트 퀴디치 경기가 펼쳐진 곳이라고 알 수 있었다. 그레이트 홀 Great Hall과 홀로 들어가는 계단도 마찬가지였다. 해리와 론, 허마이오니가 평소 걸어 다니고, 덤블도어 교장의 주관으로 연회를 즐기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영화 속 일부분이 된 기분은 늘 흥분되고 긴장된다.

몰스킨 해리 포터 에디션: 해리 포터를 좋아하는 친구가 2019년에는 이 다이어리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고 사진을 보여줬다. 겉면에는 루모스 Lumos 마법주문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채도가 높은 파란 바탕에 별처럼 큐빅이 박혀 있어서 신비로움을 더해주었다. 콜라보 에디션은 일반 디자인보다 비싸지만 고민 끝에 결국 나도 루모스 다이어리를 장만했다. 이유는 단지 예뻐서. 해리 포터는 콘셉트를 자연스럽게 녹여낸 세련된 마케팅을 잘한다는 생각을 했다.


해리 포터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 살면서 우연히 접한 해리 포터가 남긴 흔적들이다. 영화 1편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극장에서 봤는데 역시나 영화를 보고 싶어 한 친구를 별생각 없이 따라갔다. 사전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이야기의 절정인 퀴렐 교수 뒤통수에서 볼드모트가 등장한 반전을 잊을 수가 없다. 2편, 3편은 영화관 또는 나중에 VOD로 봤고, 4~7편은 영화가 완결된 지 한참이 지난 불과 몇 년 전에 ‘그래도 결말은 봐야지’라는 생각으로 감상했다. 해리 포터에 흥미가 적은 사람이 경험한 내용이 이만큼이니 해리 포터 광팬들이 보내는 사랑은 상상이 가질 않는다.


런던 킹스크로스 역 9와 4분의 3 플랫폼


글래피넌 고가교를 지나는 기차


옥스포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 그레이트 홀


2019 몰스킨 해리포터 에디션




해리포터 관광지들은 영국에만 있다고 생각했다. 포르투갈에서 해리 포터 흔적들을 만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조앤 롤링은 작가로 데뷔하기 전 1990년대 초반 몇 년 간 포르투에서 거주했다. 그녀는 포르투에서 영어 교사로 취직을 했고 첫 번째 결혼을 했으며 첫째 딸을 출산했다. 그러나 남편과의 불화로 결혼 약 1년 만에 이혼 소송을 시작했고, 생후 4개월 딸을 데리고 동생이 사는 영국 에든버러에 정착했다. 이 기간 동안에도 그녀는 해리 포터 창작을 계속 이어나갔다.


마제스틱 카페 Majestic Café는 1921년에 문을 연 긴 역사와 전통, 아름다운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조앤 롤링이 이곳에서 해리 포터 시리즈 첫 번째 책을 집필했다고 알려져 더 유명해졌다. 숙소가 카페와 볼량 시장 사이라서 마치 동네 단골 카페처럼 오며 가며 몇 번이나 지나쳤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나 <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할 법한 벨 에포크 Belle Époque(‘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 시대가 연상되는 화려하고 세련된 외관부터 유난히 눈에 띈다. 앤티크 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글자체로 ‘MAJESTIC CAFÉ라고 쓰여 있기도 하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광경도 흔해서 굳이 찾지 않아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마제스틱 카페


이름부터 예쁜 렐루 서점 Livraria Lello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늘 손꼽히는 책방이다. 1906년 주세 렐루 Jose Lello, 안토니우 렐루 Antonio Lello 형제가 책을 제작하고 판매하기 위해 설립했다. 설립 당시부터 포르투 지식인 사회에서 파장을 불러일으켰는데, 몇몇 서점을 합쳐서 새로운 장소에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보수적인 전통 사회에서는 이를 혁신으로 받아들였나 보다. 오늘날에는 조앤 롤링이 둥그렇게 양쪽으로 갈라지는 렐루 서점 나선형 계단에서 호그와트 움직이는 계단을 묘사할 때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져 포르투 필수 방문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계단에서 나무 내음이 느껴지는 것 같지만 착각이다. 화재에 대비하고자 당시로서는 드물게 콘크리트로 짓되 나무 느낌을 살리면서 화려한 아르누보 장식으로 감쪽같이 마감을 했다.


렐루 서점




렐루 서점은 나도 고대했던 여행지였다. 사진으로 본 아름다운 서점 내부도 매력적이었고, 당시 출판인으로서 외국 유명 서점이나 도서관을 방문하려는 스스로 부여한 의무감 같은 것이 있었다. 여기저기 골목을 한참 누비며 구경을 하다가 5시 즈음에 렐루 서점에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책방을 구경하고 해가 떨어지기 전에 먹거리를 사서 숙소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입구에서 직원이 친절하게 입장권 구매를 안내했다.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면 책값에서 입장권 5유로만큼 차감하고 지불하면 된다고 했다. 여러 이유로 독서 인구가 감소해 책의 위기를 염려하는 시대에 적절하고도 아주 영리한 마케팅이었다. 왠지 할인을 받는 기분이라 흡족하게 기념으로 책을 한 권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입장하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고, 내 배낭과 손에 든 종이백들을 물품함에 보관해야 했다. 줄이 길지는 않았지만 나도 관광객이면서 이미 포르투갈 곳곳에서 관광객에 치이는 일에 지쳐 있었다. 앞, 뒤, 옆 사방이 타인에게 가로막혀 도떼기시장처럼 종종걸음으로 서점 안을 관람할 생각에 벌써 숨이 막혔다. 좋아하는 책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는 익숙한 서점이라기보단 이곳에 왔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해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싶은 완벽한 관광지였다. 그 순간에는 인기 관광지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마음의 안식처인 아늑한 서점을 기대했다. 그러자 물품 보관조차 그렇게 번거롭고 귀찮을 수가 없었다. 딱 한걸음만 내디디면 코앞이 고대했던 렐루 서점인데 발에 쇳덩이를 매단 듯 바닥에 붙어버린 것 같았다. 어차피 관광객 신분으로 관광지에 온 건데 정말 마음이 동하질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 옆 건물 잡화점만 실컷 구경하다 지쳐서 숙소로 돌아왔다.


다른 이들이 포르투에 다녀온 여행기를 읽다 보면 ‘나도 렐루 서점에 다녀왔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잠깐 둘러보며 그만인데 내가 뭐라고 유난일까. 그 먼 곳까지 가서 코앞까지 갔다가 좋은 구경거리를 놓치고 와? 어쩌면 인생에 한 번뿐인 기회였는데 말이야. 아쉬움을 넘어서 가끔은 약간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미련의 근원은 렐루 서점을 구경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나는 해리 포터 팬도 아니지 않은가. 건축 양식을 연구하는 건축학도나 건축가도 아니다. 책은 좋아하지만 언젠가부터 독특한 서점은 개인적 호기심보다는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스스로 부여한 직업적 의무감에 들르곤 했다. 결국, 기회가 생겼는데도 다른 사람들 다 하는 걸 미련하게 스스로 거부했다는 ‘타인과 비교하는 감정’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대중에게 편승하지 못했다는 불안감과 손해를 봤다는 기분을 떨쳐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스스로가 대견스럽다. 내 마음의 소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 타인의 잣대에 따르지 않고 내키지 않는 일을 하지 않은 셈이니까. 그런데 왜 여전히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놓고 있을까. 내 본심은 무엇일까.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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