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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Feb 15. 2021

일자리도 없는데 세금을 더 내라니!

포르투갈 경제와 저출산, 고령화

관광객으로서는 실감할 수 없는 포르투갈 경제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정리해보려고 한다. 포르투갈을 여행하면서 호텔, 카페 등에서 의외로 나이 든 남성 종업원을 자주 마주쳤다. 그들은 사장이면서 직접 서빙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이기도 했다. 정확한 나이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머리와 수염은 허옇고, 아저씨라고 하기엔 연세가 많아 보였고 그렇다고 할아버지라고 부르기도 애매했다. ‘포르투갈에서는 이 연세까지도 일을 하실 수가 있구나. 우리나라와 달리 노인 일자리가 많은가 보네’라고 긍정적이면서도 다소 의아하게 생각했으니 그분들이 노인인 것은 확실하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졌기에 허용되는 ‘젊은 노인’, 이 정도가 적당한 표현일 것 같다.


포르투갈의 경제 위기와 저출산 상황을 알고 난 뒤 일하는 젊은 노인을 긍정적으로 볼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르투갈은 2011년 유럽 재정 위기 여파로 한때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4%까지 곤두박질치고 2013년 실업률은 16%까지 치솟는 아픔을 겪었다. 25세 이하 청년들의 실업률은 40%를 웃돌았다. 문득, 취업준비로 시사상식을 공부할 때 외운 뒤 잊고 살았던 PIGS가 떠올랐다. 유럽 국가 중 심각한 재정적자를 겪고 있던 포르투갈(Portugal), 이탈리아(Italy), 그리스(Greece), 스페인(Spain)의 앞글자에서 따온 용어였다.


포르투갈은 2011년 유럽 연합 긴급 구제 780억 유로를 받았는데, 지출을 줄이고 세수를 늘려 예산을 개선한다는 조건이었다. 포르투갈 정부는 최악의 실업 사태 중에 세금을 인상하고 연금을 삭감했으며 사회 복지 지출을 줄였다. 강력한 긴축 조치가 이어지자 국민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항의했다. 2013년 시위에는 150만 명이 참가했다고 추정되는데, 포르투갈 인구가 약 1,000만 명을 웃도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다. 1974년 카네이션 혁명 이후 최대 인원이 집결한 사건이었다. 독재정권이 무너진 1970년대 이후 가장 심각한 불경기에 놓인 포르투갈 국민은 매일 공공 지출 동결, 의료 서비스 지원 삭감, 무료 급식 폐지, 경찰 순찰대 축소, 자살 증가 같은 우울한 뉴스를 접해야 했다. 생계유지를 위해 고군분투했으며 많은 이들이 가난과 굶주림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코로나 상황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정부의 역할이 더 커지고 있다.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 충격을 완화하고자 정부 예산을 최대한 집행하려는 상황이다. 세금이 높아지더라도 사회 복지가 확대되길 기대하며 갈수록 큰 정부에 익숙한데 긴축 재정이라는 용어 자체가 너무 낯설었다. 일자리는 없고 정부 지출은 줄이면서 세금은 더 거둬가다니 암울해서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나라도 외환 위기로 구제 금융을 받은 뒤 힘든 시기를 겪었고 이십 년이 지났는데도 비정규직 등 고질적인 문제를 남겼기에 포르투갈인들이 느꼈을 절망감과 고통에 마음이 갔다. 포르투갈은 코로나 직전인 2019년 경제성장률은 2%대로 회복했고 실업률은 6%대로 낮췄다. 청년 실업률은 여전히 10% 후반~20%에 머물고 있다. 현재는 코로나 때문에 전 세계 경제가 어려운 상황인데 특히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은 청년 실업률은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나이가 들면 은퇴를 해서 편안한 노후를 즐겨야지. 사장이건 뭐건 간에 어쩔 수 없이 일을 붙들고 있어야만 한다면? 젊은이들이 부족해서 노인이 직접 일을 할 수밖에 없다면? 그러고 보니 포르투갈에서는 관광지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하는 노인은 흔해도 다른 유럽 국가를 여행할 때보다 유달리 아이들을 본 기억이 없었다. 머지않은 우리나라 모습을 미리 본 것 같아 뒤늦게 위기감과 씁쓸함을 느꼈다. 포르투갈 인구는 이미 2010년부터 매해 감소했다. 여성 1명당 출산율은 1970년에 3명이었는데 2013년에는 1.21명으로 사상 최저까지 떨어졌다. 참고로 우리나라도 2013년 출산율이 1.19명으로 곤두박질쳤다. 유럽 연합 통계청(Eurostat)에 따르면 포르투갈은 유럽 연합 국가 중 출생률이 가장 낮다. 인구학자는 이 상황이 지속될 경우 2060년에는 포르투갈 인구가 현재의 3/5 수준인 600만 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측한다.


우리나라도 저출산, 고령화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우리나라 인구구조가 피라미드 모양에서 항아리 모양을 거쳐 어쩌면 역삼각형 모양으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전망은 1990년대에 초등학교 수업시간에도 배웠던 것 같다. 위기의식을 갖고 문제 해결을 위해 본격적으로 각종 정책을 시행한지는 (물론, 그전에도 여러 정책들이 있었겠지만) 체감하기로는 십여 년 즈음되었다. 지난해인 2020년에는 예견된 수순인 출생아가 사망자보다 적은 인구 데드크로스(人口 dead-cross)가 나타났다. 1970년 대한민국 주민등록인구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인구가 약 2만 명 자연 감소했다. 포르투갈처럼 우리나라도 곧 편의점 계산대, 호텔 체크인 데스크, 카페 바에서 은발을 한 어르신께 서비스를 제공받는 일상을 경험하면서 급격한 인구 변화를 체감할 것 같다.




포르투갈은 유럽 국가이고 국민의 90% 이상은 가톨릭을 믿으며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주요 산업에서 서비스업 비중이 매우 높고, 한때 브라질, 아프리카, 마카오 등 식민지를 지배했다. 국가 면적은 우리나라보다 약간 작은데 인구는 1/5이어선지 초고층 빌딩은 물론이고 고층 빌딩과 고층 주거지도 흔치 않다. 역사적으로 가톨릭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오늘날 포르투갈 헌법은 완전한 종교의 자유와 종교 간 평등을 보장한다. 2010년에는 유럽에서 여섯 번째,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


이토록 다른 나라인데 때때로 포르투갈에서 우리나라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우선 기후, 지리와 음식, 사람들의 기질이 비슷해 보였다. 각각 큰 이웃나라인 중국과 스페인을 접하고 있다는 점도 같았다. 1249년 국경 확립 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 국가라는 점도 다른 유럽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었다. 치안이 좋아 비교적 늦은 시간까지 밖에서 즐길 수 있고 소매치기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비슷했다. 포르투갈은 1960년대 이전까지 농업에 의존했고 1974년에는 오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혁명이 있었다. 금융 구제 이후 힘겨운 시간을 보냈으며 유럽 최저 출생률을 나타내고 있다는 닮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닮아 있었다. 그래서 포르투갈은 좋아한다기보단 ‘정이 간다’는 감정이 드는 것 같다. 닮은꼴에는 마음이 쓰이기 마련이다. 포르투갈을 그리워하는 다른 사람들도 이처럼 자연스레 스민 역사적 시간들을 직감적으로 알아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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