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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n 04. 2022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이라고 왜 자각하지 못했을까(2)

애증관계와 허구의 독립, 그 위험성

이번 글은 부모가 자식에게 얼마나 큰 존재이고 어떤 깊은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내용이 될 것 같다. 누가 보더라도 아버지는 알코올 의존증(중독)이고, 나와 동생들은 술 취해서 난폭한 언행을 일삼는 아버지에게 어렸을 때부터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집은 결코 편한 공간이 아니었고, 특히 아버지와 같은 공간에 있을 때면 왠지 모를 거북한 감정이 가슴을 짓눌러서 꼭 소화불량에 걸린 것 같았다. 10대 때 아버지는 다가가기 힘들었고, 이상한 소리를 해대며, 왠지 모르게 부끄럽고 껄그러운 존재였다.


아버지는 평생 결코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고, 때로는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란 적도 있지만, 희한하게 아버지가 밉거나 싫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그저 불편하고 약간 두렵고 긴장되며, 같이 있는 건 거북해서 만나고 싶지는 않은 사람일 뿐이다. 이제는 나와 크게 상관없는 사람으로 여기며 살고 싶고, 아버지가 술로 사람들에게 더는 상처를 주거나 미움받지 말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서 부디 평온하게 사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제 이건 불가능하다고 안다. 아버지가 알코올 의존증을 극복했으면 자식들과 관계가 이지경이 되지 않았을 테니까.)


딸은 아버지를 닮은 사람과 결혼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는데…… 아버지와 달리 갈등의 매개가 술이 아니었을 뿐 결혼생활을 하며 전남편에게 느낀 감정은 아버지를 향한 감정과 손톱만큼 차이도 없을 만큼 소름 끼치도록 똑같다. 이 이야기는 기회가 되면 다른 글로 더 자세히 풀어보려고 한다.




“부모님과 관계는 어떠세요?”

“음…… 오히려 아빠와 관계가 좋은 것 같아요. 연락을 하거나 그런 관계는 아니지만 오히려 연결 지점이 없고 저를 그냥 내버려 두시고 아빠는 또 아빠 인생을 잘 살아가시고. 돌이켜보면 그러면서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결국은 다 아빠가 아낌없이 금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지원을 해주셨더라고요. 그야말로 희생이죠. 저도 제가 아빠의 희생으로 이만큼 살고 있다고 아주 잘 알고 있어요.”

“아빠를 향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군요.”

_브런치 글 <#심리상담 1일 차(2022.01.25)> 중에서


나는 폭력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했으면서 왜 최근까지도 아버지가 알코올 의존증(중독)이며, 폭력적인 성향이 있다고 자각하지 못했을까. 애증의 감정인 걸까. 그건 아마도 내가 아버지를 오래도록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왜 아이들은 부모가 아무리 하찮고 잘못하더라도 부모를 좋아하고 걱정하지 않는가. 부모가 눈물을 흘리면 사슴 같은 눈망울로 다가와서 ‘무슨 일이야? 왜 울어?’라며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하지 않는가. 아이에게 부모는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고, 아이가 어릴수록 부모는 세상의 전부이다.


나도 하찮은 인간으로서 예외는 아니어서 순수한 아이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라고 끝까지 믿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를 싫어하거나 미워할 수 없어서 최악의 모습을 오래도록 부정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무의식의 세계에서 쓰레기 같은 아버지를 둔 남 부끄러운 딸이 되기가 두려워서 한사코 거부했던 것 같다. 육체와 정신 모두 이미 오래전에 어른으로 성장했는데, 생존을 위해서 더 이상 부모에게 기대거나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데, 경제적/정신적/신체적으로 더는 부모에게 의존하거나 도움받지 않고 내 힘으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데, 이를 자각하지 못한 채 어린 시절 몸과 마음에 밴 습관의 고리를 끊지 못해서 아버지는 내 마음속에서 여전히 태산처럼 큰 존재로 자리 잡고 있었다.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축복이라던가. 이 축복 덕분에 나는 십 대 시절의 악몽을 딛고 성인이 된 스무 살 이후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아올 수 있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통학했지만 대학교를 가고, 회사원이 돼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부모님과 부딪힐 시간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원래도 살가운 가족관계는 아니었고, 이후에는 온 가족이 같이 식사하는 일도 드물어서 아버지와는 더더욱 마주할 일이 없었다. 부모님도 표면적으로는 성인이 된 나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존중해 주셨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내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만, 왠지 모르게 집은 늘 답답하고 불편하고 속박하는 기분이 들어서 한시라도 빨리 늘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엄마는 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한사코 만류했지만, 이 집을 벗어나야지 비로소 내 인생의 중심을 잡고, 양 어깨에 날개를 달고 능력을 활짝 꽃 피워서 훨훨 날아다닐 수 있으리라고 예감했다. 부모님이 내 인생의 방해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벗어나야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자식을 길들여서 계속 옆에 두고 싶은 통제 욕구가 강한 부모를 벗어나서, 인생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오로지 내 힘으로 개척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발현했다고 생각한다.


마침 파주에 있는 회사에서 근무를 하게 돼 구리에서 파주까지 출퇴근은 무리라는 명목으로 거주지를 완전히 독립했다. 비록 빛도 잘 들지 않는 원룸 단칸방에 살았지만 그 시기에 마음이 얼마나 편안하고 가볍고, 하루하루 얼마나 큰 설렘과 기쁨으로 가득했는지 모른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희한하게도 4년 결혼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직업과 거주환경 등 많은 것들이 불안정한데도 부모님을 벗어난 그때처럼 지금이 하루하루 마음이 가볍고 설레고 행복하다.


앞에서도 짧게 언급했지만 달리 말하면 전남편은 부모님과 많은 부분에서 닮은 사람이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결혼생활을 할 때는 몰랐지만 통제 욕구가 강해서 자꾸 나를 길들여서 수동적이고 무기력하도록 이끌려던 전남편을 벗어나니 이토록 속 시원할 수 없고, 다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 사람도 깊은 속마음(무의식일 수도 있고)과는 달리 표면적으로는 내 자율성과 독립성을 존중하는 사람인 척 말하고 행동해서 뭔가 늘 헷갈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이처럼 이십 대는 너무 불안정하고 물론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치열하게 산 만큼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도 많았다. 게다가 아버지와 연락을 하거나 대화를 하는 등 접점이 거의 없었고, 각자 인생에도 무엇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서로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부모-자식이고, 핏줄로 이어졌지만 돌아보니 실제로는 거의 남이나 마찬가지인 관계였다. 부모-자식으로서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은 있되, 사실은 서로 무관심하고 방치하는 오묘하고 모순적인 관계였다.


아버지는 할머니 말씀처럼 지독한 술주정만 빼면 좋은 면모가 많은 사람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지만 아버지가 오랜 세월(지금까지도) 술 먹고 행패만 부리지 않았으면, 어른이 된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누구보다 다정다감한,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는 애교 많고 효심 깊은 딸이 기꺼이 되어드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 이런 부녀관계는 내 몫이 아니라고 이제는 잘 알고 있다.


나는 겉으로는 누구보다 독립적으로 보였지만 사실 허구의 독립이고, 여전히 아버지를 향한 감정적 탯줄을 끊지 못해서 깊고 깊은 마음의 심해에서는 어렸을 때처럼 아버지를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한다고는 알지만 말이나 행동으로 제대로 충분히 사랑을 받은 경험이 거의 없어서 여전히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갈구했던 듯하다. 실제로는 남남이나 다름없는 관계인데 아버지와 접촉이 거의 없다 보니 신이 내린 망각이라는 축복의 수혜(?)를 이상하게 입었다. 시간이 켜켜이 쌓이는 동안 상처나 미운 감정은 점차 희석되었다. 아버지에 대한 크지 않은 좋은 기억과 추억,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장점이 점점 크게 자리 잡았다.


아버지의 나쁜 기억을 축소하고 장점만을 가장 크게 부각한 때가 바로 결혼을 결정할 때였다. 아버지와 비슷한 전남편의 부족한 점이나 치명적인 단점은 완전히 외면하고, 이점이 얼마나 극심한 가정불화를 불러오고 나에게 고통과 상처를 줬는지 새카맣게 까먹고, ‘저런 부족한 면이 있어도 아버지의 이런 좋은 면모 때문에 아버지와 엄마도 행복하게 잘 살고 계시잖아’라고 현실을 왜곡했다. 감정적 탯줄을 끊지 못해 마치 무엇에 홀린듯이 무의식에 이끌려서 가장 중요한 인생 결정을 큰 실수를 저질러버렸다. 아버지와 비슷한 남자를 골라서 그토록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 불행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갔다. 불행한 부녀관계는 불행한 부부관계로 역할만 바뀌었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마치 드라마 재현 배우가 된 것처럼 나와 전남편이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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