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마일펄 Jun 01. 2022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이라고 왜 자각하지 못했을까(1)

알코올 의존증 부모를 둔 자식이 경험하는 구체적인 일상 모습

동네 서점에 갔다. 책을 눕힌 평대를 어기적거리며 훑고 지나가는 한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170cm 전후 크지 않은 키를 한 그는 허름한 차림으로 한 손에는 검은 봉지를 들고 있었고, 나이는 50대 후반~60대 초반으로 보였다. 약간 술에 취했는지 걸음은 꼬였고 비틀거렸으며, 타인이 제지할 만큼 난폭하거나 크지 않은 목소리로 그러나 주변에 들릴 만큼 간간히 신세 한탄을 내뱉었다. ‘내가, 내가 공부만 했어도 스카이(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지칭)는 그냥 갔어. 아이 씨~’ 술냄새를 풍기며 완전히 제정신으로 보이지는 않아서 불쾌했지만, 정도가 세지는 않고 서점 안은 대낮처럼 환했으며 손님도 많아서 위협적으로 느끼지는 않았다.


아버지를 아예 모르는 완전한 타인이 아버지를 밖에서 마주치면 이런 시선과 감정으로 바라보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가가고 싶지도, 할 수만 있다면 되도록 엮이고 싶지도 않은, 피하고 싶은 사람이다.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엮이면 짐이 되고 고통을 주는 내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사람이다. 기분이 묘했다. 좀 떨어진 발치에서 책을 고르다가 나도 모르게 노년에 접어든 그 남성에게 흘깃흘깃 눈길이 갔다. ‘사람이 참 못나고 안 됐다. 인생이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딨다고. 술 하나 주체하지 못해서 저 상태로 남 부끄러운 줄 모르고 돌아다니나. 저 사람 가족들도 사람 구실 못하는 인간 하나 때문에 고생깨나 했겠다’ 싶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제 말씀을 듣고 이 말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든가 화가 나고 기분 나쁘다고 느끼는 분은 알코올 의존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술을 조절해서 먹는다거나 적당한 음주를 한다는 말은 세상에 없습니다. 술을 조절해서 먹겠다고 생각한다면 술을 안 드셔야 하는 겁니다. 아예 안 먹거나 의존해서 먹거나 둘 중 하나지 그것을 조절해서 먹는 중간 단계는 없습니다. 술에서 비롯되는 여러 문제들 즉, 신체나 정신 건강에 문제가 되거나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기는데도 술을 계속 먹는 경우 그러니까 술을 조절할 수 없는 상태를 알코올 의존이라고 합니다.


알코올 의존 진단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우선은 본인도 알아요. 자기가 오늘은 안 먹겠다, 오늘은 먹어도 이만큼만 먹겠다고 했는데 결국은 또 오늘도 먹었고 자신의 예상보다 많이 먹어요. 이처럼 주량 조절 불가가 한 가지 증상이고요. 다음으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나를 염려하고 아끼는 사람, 가장 친한 친구라든지 가족이겠죠. 가족이 ‘당신, 건강이나 사회생활에 문제가 되니까 나는 당신이 술 좀 안 먹었으면 좋겠다’라며 알코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거의 틀림없는 알코올 의존입니다.


내가 술을 먹고 싶은 지 아닌 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내 몸에 술이 들어왔느냐 안 들어왔느냐가 중요하겠죠. 예를 들어, 술을 굉장히 먹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도 술을 안 먹는 사람은 알코올 의존이 아니에요. 그런데 술 먹을 마음은 없는데 식욕을 못 참듯이 어쩌다 보니 매일 술을 먹고 있으면 알코올 의존이지요. 술 없이 사는 인생도 굉장히 즐겁고 행복한데, 술 없이 사는 인생이 만약에 불행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면 당신은 알코올 의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_‘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남궁기 교수’, 유튜브 <세브란스> 인터뷰 중에서




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한 잔, 어제는 속상해서 한 잔, 내일은 일이 잘 안 풀려서 한 잔…… ‘오늘은 나가서 딱 술 한 잔만 하고 오겠소’ 지겹도록 들은 아버지가 엄마에게 말하는 단골 외출 인사말이다. 어렸을 때 우리 가족 그 누구도 아버지가 술을 딱 한 잔에 그치리라고 믿지 않았다. 인사불성이거나 고주망태만 되지 않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취해 집에 들어오면 자신의 어머니, 아내, 어린 자식 할 것 없이 가족 모두에게 울분을 쏟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평소 진중하고 좋은 사람은 온데간데없이 행패를 부리는 추잡한 괴물 한 마리가 제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해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술에 취하면 가족 앞에서는 눈에 뵈는 게 없는 듯이 보였다. 어린 마음에 두 얼굴의 아버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잠시 다른 인격이 아버지의 신체를 지배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믿고 싶었다.


‘진주 아빠는 술만 안 먹으면 사람이 멀쩡한데 그놈의 술이 문제야, 문제.’ 할머니는 자신이 생계를 의존하는 장성한 아들을 꾸짖지 못하고 항상 애먼 술을 탓했다. 엄마가 ‘당신 술 좀 그만 드세요. 대체 뭐하는 짓이에요. 애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아요’라는 말에 아버지는 늘 잔소리는 귀찮고 간섭은 싫다는, 저러다가 다시 화는 내지 않을까 싶은 조마조마한 말투로 ‘알겠어’라며 대강 상황을 모면할 뿐이었다. 아버지가 우리집에서 때때로 빚어내는 지옥 같은 현실은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지옥에서 자식들을 보호하거나 탈출시키기는커녕 남편과 자식 사이를 중재하겠다고 터무니없는 말을 하곤 했다. ‘아빠가 술밖에 낙이 없으셔서 그래. 술 빼면 아빠는 살아가실 수가 없어. 일이 너무 고돼서 그러신 거야. 엄마도 결혼 전에는 아빠가 이런 사람인지 몰랐어. 엄마 친정에는 주사가 심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 아빠는 자신의 이런 행동을 가족이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셔. 엄마도 어떻게 할 수가 없구나. 너희가 아빠를 좀 이해하면 안 되겠니?’ 엄마의 말속에는 자식들의 불안감이나 두려움 같은 우리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아버지와 엄마의 입장만이 녹아있었다. 사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에게 저지르는 치명적인 실수이고 다 지나간 일이라서 이제는 별로 원망하는 감정도 들지 않는다. 그냥 그때는 그런 일이 있었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몇달 새 나도 제법 어른이 된 모양이다.




아버지는 과연 자신이 성인이 된 뒤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이 단 하루라도 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나도 성인이 돼 독립해서 살면서 가끔 집에 들렀을 때, 그 짧은 만남에서도 아버지가 술을 입에 대지 않은 적이 없었다. 명절, 생신 같은 대가족이 모이는 가족 행사는 공식적으로 술이 빠지지 않는 날이다. 우리 식구끼리 식사할 때도 아버지는 매번 아내와 자식들의 눈치가 보이는지 ‘그래도 막걸리는 한 잔 해야지’라고 말하고는 한다. 자신이 먹고 싶은 반찬 하나도 직접 냉장고에서 꺼내서 드시지 않고 꼭 아내를 부려 먹으면서 이때는 어김없이 잔뜩 흥이 나서 직접 주방 베란다에 가서 막걸리를 챙겨 온다. ‘적당히 드세요’라는 엄마의 잔소리와 퉁명스러운 ‘알겠소’라는 아버지의 무성의한 대답이 오가는 식사 분위기는 익숙하다 뿐인가. 아버지가 자주 만나는 동네 친구들과 밖에서 어울리고 귀가했을 때도 술에 취하지 않은 날이 없었던 듯하다.


눈은 반쯤 풀리고 기분이 고조돼 주저리주저리 자기 할 말만 늘어놓는 술 취한 모습이 얼마나 익숙한 지 어느 순간 그 모습을 아버지의 원래 모습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처럼 한 집에서 같이 살지 않고 아버지가 그때처럼 난동을 부리지 않아서 ‘이제는 좀 사람이 되셨나’ 싶었다. 그런데 가만히 기억을 하나씩 거슬러 올라가니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있었다. 내가 집에 들렀을 때 말수가 적고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람 좋은 제정신인 아버지와 정상적인 대화를 나눈 순간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대부분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그렇듯이 건강검진에서 의사가 강력히 금주를 권고해도 말로만 ‘알겠다’라고 하고, ‘한 잔은 괜찮다’라며 가족의 걱정을 가볍게 무시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술잔을 밥상에 올리는 일은 입이 아파서 더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렇게 아버지는 그놈의 술 때문에 평생 자신이 누구보다 사랑한다는 가족과 극심한 갈등을 반복해서 겪었고,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엄마는 아버지를 불쌍하게 여겨서 연민으로 돌보고 있지만, 모순적이게도 부모의 성정을 닮아 마음이 착하고 여린 자식들은 한평생 고통에 시달린 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허우적거리며 길을 잃고 인생의 방향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 그나마 기질상 욕심 많고 이기적이고 덜 착한 첫째인 나는 일찌감치 부모와 거주 공간을 분리해서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그동안 도무지 정리되지 않던 감정 찌꺼기가 남아 헷갈리던 현실까지 직시하고, 오래도록 내 발목을 붙잡은 끔찍한 늪지대를 발가락 하나마저 빠져나오려고 한다.




악감정을 묻어두고 아빠를 그럭저럭 대하기까지 십여 년은 걸린 것 같다. 그의 잘못된 행동을 용서하거나 우리 부녀가 화해한 것은 아니다. 손찌검하거나 물건을 부수지 않고, 가족에게 고함을 치는 정도에 그쳐서 고맙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을 어떻게 쉽게 용서할 수 있을까. 잘 키워줘서 고맙다는 마음과 한때 존재 자체가 거북했던 양가적인 감정, 묵직한 부채 의식과 마음속 응어리를 동시에 남겨준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용서란 미움에게 방 한 칸만 내주면 되는 거라지만…… 나쁜 기억이 얼마나 깊이 각인되었는지 머리보다 몸이 먼저 거부하는 걸 난들 어떡해. 평생 쌓아 올린 공(攻)이 아무리 크더라도 비록 딱 한 번뿐일지언정 치명적인 과(過)가 결국 자신의 모든 공을 덮어버릴 수도 있다.


작년(2021년) 3월에 아빠를 향한 감정을 담아 쓴 글(만우절이면 생각나는 사람)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이 모든 폭력적인 상황과 아버지의 그릇된 행동, 내 마음속 응어리와 거북한 감정, 떨쳐지지 않는 악몽 같은 기억과 깊게 파인 상처, 결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 이 모든 것을 분명히 인지하면서 희한하게도 한편으로 아버지가 알코올 의존증(중독)이라는 생각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저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고 많이 드시고, 결코 술을 끊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데 생각이 멈춰 있었다. 최근에 우연히 유튜브에서 알코올 의존증에 관련된 영상을 몇 개 접하고서야 ‘아, 아버지는 알코올 의존증(중독)이구나’라고 확신했다. 내 감정과 사고의 이 거대한 괴리는 대체 어디에서 비롯했을까. 누가 봐도 비이성적인 성장 환경을 거쳤으면서 대체 왜 아버지가 알코올 의존증(중독)이라고는 자각하지 못했을까.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려고 한다.



연결되는 글



관련 영상



관련 글



브런치북 <부모님과 관계를 끊기로 했습니다>를

심리에세이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책으로 출간습니다.


현재 온라인 서점(교보문고 온라인,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도서)에서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책은 6월 22일(목) 발송 예정으로 예정일 이후 1~2일 이내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한 책 소개는 각 온라인 서점을 확인해주세요. ^^


이전 10화 저는 알코올 의존증(중독) 아버지를 둔 딸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