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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l 22. 2022

이혼은 결혼의 실패도, 인생의 실패도 아니다

'요새 이혼은 흠도 아니야'라는 말은 하지도, 듣지도 마세요

요새는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여행기 <여행하는 나무>를 읽고 있습니다.

1952년에 태어난 그는 20여 년간 알래스카의 자연과 야생 동물,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사진 작업을 했는데, 1996년 러시아 캄차카 반도 쿠릴 호에서 TBS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취재하다가 취침 중 불곰의 습격을 받아 사망했다는 작가 소개를 읽고 잠시 숙연해졌습니다.

알래스카 자연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쓴 <여행하는 나무>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결과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실패라는 단어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결과에 상관없이 지나온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진정 의미를 갖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렇게 쌓인 시간들이다. 그리고 이런 시간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인생일 것이다.

_호시노 미치오, <여행하는 나무>, 김욱 역, 갈라파고스, 2006.05




‘이혼’은 결혼의 실패라는 생각에 붙잡혀 있었습니다.

상담 선생님께서 이혼이란 인생에서 벌어진 하나의 이벤트이고,

결혼이 곧 행복이 아니고, 이혼이 반드시 불행은 아니라며

이혼은 실패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아무리 강조하셔도 

머리로는 무슨 말씀인지 이해해서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혼이 여전히 내 인생에서만큼은 벌어져서는 안되는

인생의 실패 중 하나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좋은 일은 손톱만 하고, 답답하고 불안한 일은 손바닥만 해서

화병과 우울증이 그림자를 드리운 불행으로 점철된 결혼이었지만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몰상식과 억압으로 숨 막히는 일상이지만

행복으로 가는 관문인 줄 알았던 결혼을 거쳐 이혼에 다다른 과정은 

저에게는 내면은 한층 단단하되, 융통성을 발휘하도록 유연해지고

선하기도 악하기도 한 인간이라는 존재의 다면성을 민낯 그대로 직면했으며

가족이라는 존재의 지독한 이중성과 지리멸렬한 애증의 관계를 깨달은 시간입니다.


저 역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은 제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정수리 꼭대기까지 분노감에 휩싸여서 불 같이 화를 내며 소리를 꽥 질러보고,

갑자기 찾아온 이혼이라는 이별을 감당하지 못해서 자존심은 모두 내팽개치고

울며불며 매달리고 무릎 꿇고 싹싹 빌어도 보고,

문자하고 전화하며 비굴하다 싶을 만큼 집착도 해보고,

헤어지더라도 복수심에 평생 나를 기억하며 후회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를 각인시키고자 발버둥도 쳐봤습니다.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부부였기에 명치끝에서부터 차오르는 배신감에 사로잡혀

깊이를 알 수 없는 감정의 밑바닥의 미세하게 균열이 난 깊고 깊은 골짜기 틈새 사이로

감정의 끄트머리까지 닿을 수 있는 한 끝없이 추락하는 기분을 맛보았습니다.


민낯이란 부정적인 감정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제 민낯에는 무한히 사랑하는 감정도 포함됩니다.

제가 바라던 온전한 사랑의 모습대로 나무처럼 묵묵하게 사랑하는 이의 곁을 안정적으로 지키고자 했고,

배우자이자 가족이기에 상대방이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믿고 지지하고자 했으며,

만일 모두가 그의 곁을 떠나더라도 저만은 끝까지 남아서 제가 선택한 사람을 책임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항상 맞출 수는 없었지만, 사소한 말도 경청해서 놓치지 않으려고 했고,

최소한 그가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부족할지언정 저는 이것이 사랑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이처럼 결혼은 제 사랑하는 감정과 원망하는 마음의 극과 극을 오간 경험이었고,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어느 정도 사회적 가면을 쓰기 마련인 세상에서

저조차 알지 못한 처음 보는 제 하찮을 대로 하찮고, 찌질할 대로 찌질한 본모습을 당면한 시간이었고,

순수한 사랑의 감정으로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할 수 없는 면모를 이해하고자

참고 견딘 다시는 오지 않을 위대한 나날이었습니다.

심지어 제 마음이 곪을 대로 곪아서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파괴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이혼을 했든 아니든 상대방인 어떤 행동을 하고 말을 하든

온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지독하게 상처받으며 쌓인 시간들이

제 인생에서 절대로 무의미하지 않으며,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는 상담 선생님의 말씀이

비로소 귀에 들어왔습니다.

결과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치열하게 살아온 나날이 사라지지는 않으니까요.

제 몸과 마음 구석구석 어딘가에 고스란히 남아있다가

언젠가 필요한 때가 오면 자양분으로 쓰일 테니까요.




누군가 저에게 결혼을 했는지 물으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고민이었습니다.

예전의 저였다면 오로지 대답을 해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서

석연치 않게 대충 얼버무리거나

결혼은 했지만 지금은 아니라거나 얼마 전에 이혼했다고

곧이곧대로 답변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에 대답을 망설일 정도면

상대방과 내 관계의 거리는 상당히 먼 낯선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결혼 여부가 궁금하다면 상대방이 먼저 자신에 대해서 밝히는 게 합당하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관계는 상대적이니까요.

‘그게 왜 궁금하세요? 그럼, 선생님은 어떠신데요?’

라고 상대방이 먼저 자신과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도록 질문을 던져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나아가 ‘좋은 사람 소개해 주시려고요?’라며 슬며시 농담을 던져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은 별생각 없이 안부 인사 대신 묻는 지나가는 사람일 거라

대충 얼버무리고 지나갈 경우가 많을 테지만요.




모든 일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고,

저는 단지 이혼이라는 형태로 결혼을 종료했을 뿐입니다.

인연이 다해서 헤어졌을 뿐이고,

인간관계에서 만남과 헤어짐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관계가 나빠서 헤어질 때도 있지만

관계가 좋은데도 불구하고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니

이별을 애써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결혼을 했든, 이혼을 했든, 누구와 같이 살든, 혼자 살든

나 자신을 사랑하고,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웃음이 많고 인생을 가볍되 진중한 태도로 살아가는 저라는 사람은 변함이 없으니

이 정도면 제 뜻대로 삶을 아기자기하게 가꿔가기에 이미 충분합니다.




이혼은 결혼의 실패가 아닙니다.

그러니 이혼은 인생의 실패라는 편견을 깔고 있는

‘요새 이혼은 흠도 아니야’라는 말은 하지도, 듣지도 마세요.

누군가의 이런 편견 서린 시선이나 말에 기죽지도 마세요.

정말로 이혼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애초에 ‘흠’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도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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