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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May 31. 2022

이혼 3개월, 소소하게 바뀐 두 가지

이제야 나를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평일 오후 8시, 침대 베개에 기대서 책을 읽다가 문득 집안을 가득 채운 적막함을 느낄 때면 새삼 ‘아, 내가 이혼을 했구나’ 자각한다. 적막함을 만끽하려 숨이 폐 깊숙이 도달하도록 코로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쉰다. 안온함이 온몸을 감싸면서 하루 동안 쌓인 긴장이 스르륵 풀린다. 행복감에 입꼬리가 스윽 올라가며 절로 평온한 미소를 짓는다.


결혼생활 4년 내내 전남편이 집에 머물 때면 거실에 있는 컴퓨터는 한시도 꺼진 날이 없었다. 그는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컴퓨터 전원을 켜서 게임 방송을 틀었다. 식사와 씻기는 그다음 일이었다. 주말에 잠에서 깨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컴퓨터 속 게임 캐릭터를 확인했다. 컴퓨터는 밤새 켜져 있어서 전원을 켤 필요도 없었다. 씻기는 그의 주말 할 일 목록에 아예 있지도 않았다. 그는 1분 1초의 적막함도 견디기 어렵다며 봤던 유튜브나 예능 프로그램을 항상 틀어 놓았다.


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 소음에 노출되면, 생각은 대체 언제 하는지, 정신이 혼탁하고 마비돼 판단력이 흐려지지는 않는지 나는 그것이 늘 의문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는 미디어를 잠시라도 보거나 듣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미디어 중독자였다. 혼자 식사할 때와 심지어 집에서 화장실을 갈 때조차 그의 손에는 늘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그는 외부의 소음으로 정신을 마비시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너무 예민해서 작은 자극도 크게 증폭해 큰 자극으로 받아들이는 불안도가 매우 높은 사람이라서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이런 방식으로 외부 자극이나 내부의 상념을 차단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모양이었다. 불안감을 애써 감추느라 늘 말수가 적고 침착한 척 자신과 나를 속였다.


평일 저녁이나 주말은 나에게도 휴식 시간이었다. 쉬고 싶어서 거실에 머물면 눈앞에는 화려한 게임 화면이 계속 눈에 들어와 거슬렸다. 유튜브나 예능 프로그램의 끊이지 않는 작은 소리에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갔고 정신은 피폐해졌다. 혼자 방에 머물거나 근처 카페 등으로 외출해서 혼자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집에서 이런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니 나도 마찬가지로 정신은 점점 마비되고, 어느순간 집은 썩 편한 공간만은 아니었다. 주말 내내 등을 돌리고 앉아 컴퓨터에 집착하는 그의 눈치를 얼마나 봤는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다. 전자기기에 의존하거나 영향을 받지 않고, 어떤 전자 소음도 차단된 고요하고 평온한 공간과 시간이 내 생활에서 얼마나 절실하고 중요한지 이제는 알게 되었다.





몇 년 전 SNS에 남긴 이런 글을 최근 발견했다.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씌고 결혼생활 동안 내가 얼마나 저자세였는지 긍정적으로 본다면 얼마나 상대방을 배려했는지 새삼 깨닫고 흠칫 놀랐다. 전 시어머니가 자신의 형제를 만나러 온 김에 근처 사는 아들 내외에게 같이 식사하자고 한 일을 나는 왜 이토록 감사하고 배려한다고 생각했을까. 결혼 초반부터 이어진 배우자의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에 빠져서 미쳐도 단단히 미쳤던 모양이다. 결혼을 한 뒤 초반 2년 동안 전 시어머니 가족들 즉, 전남편의 외가 사람들을 네댓 번은 만났다. 전 시어머니는 이혼 뒤 재혼하기 전에도 친정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자주 왕래했다고는 들어서 전남편의 외가 행사에 초대하실 때면 되도록 참석하려고 했다. 아들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전 시어머니에 대한 배려이자 도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연하기도 한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다.


문득, 아무래도 우리나라가 여전히 남자 가족 중심이다 보니 과연 남편의 외가 행사에 2년 동안 네다섯 번을 참석한 며느리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흔치는 않을 듯했다. 이제는 다 지난 일이라고 여겨서 화가 나거나 억울한 감정이 드는 시기는 지나갔다. 그래도 이것 하나는 바로잡고 싶다. 그는 내가 자신의 부모에게 제대로 못했다며 이혼을 내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최소한 그가 우리 가족을 만난 횟수보다 내가 그의 부모 이혼으로 그의 아버지 가족, 어머니 가족을 따로 만나고 챙기느라 그의 가족을 만난 횟수가 확실히 많다(감안한 결혼이라 일일이 따지고 싶지도 않지만, 내가 제대로 못했다는 주장은 일기 같은 글에서나마 바로잡고 싶다).


한 번은 어버이날에 직접 만든 디퓨저를 시아버지/시할아버지/시작은아버지/시누이/사촌들 심지어 할아버지의 여자친구까지 드린 적이 있다. 시어머니는 물론이고 이모님들 몫까지 챙겼다. 전 시어머니 댁에 갈 때면 선물도 더 신경 쓰고는 했는데, 우리집에도 챙겨간 적 없는 고급 케이크를 미리 주문해서 두 시간 넘게 대중교통을 타면서 가져갔다. 전 시어머니와 엄마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반찬이나 음식을 보낼 때면, 일부러 전 시어머니 반찬을 먼저 꺼내 먹었다. 혹여나 전남편이 자신의 엄마가 만든 반찬을 싫어한다고 오해할까 봐, 아무래도 전 시어머니 음식이 그의 입맛에 더 맞을 테니 둘이서 같이 식사할 때면 더더욱 전 시어머니 반찬을 꺼내 놓았다. 코로나로 오랫동안 뵙지 못했을 때는 전 시어머니 댁으로 대형 꽃바구니 선물을 배달했는데, 이 또한 엄마에게 먼저 배달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전시어머니를 먼저 챙겼다. 또 한번은 직접 쓴 손편지를 등기로 부쳐서 감사한 마음을 전한 적도 있다.


시아버지 가족들과 외식을 할 때면 8~9명 식비를 으레 우리가 부담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우리집이 유일하게 두 사람이 벌이를 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 좀 더 여유로웠다. 좀 비싸더라도 평소에 잘 먹지 않는 고급 식당에 가서 특히 시할아버지와 시누이, 사촌들이 맛있게 드시는(먹는) 모습을 보면 뿌듯했다. 전남편이 자신의 아버지는 물론이고 할아버지, 심지어 작은 아버지까지 용돈을 챙겨도 ‘작은 아버지와 관계가 남다르게 친밀한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치사하게 비교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집에 갈 때는 엄마가 식사를 준비하시거나 외식을 하더라도 ‘푼돈이라도 아껴서 얼른 집 사는데 보태라’며 오히려 부모님께서 대접을 해 주셔서 내가 식비를 부담할 일은 거의 없었다. 용돈도 생신 때 선물 대신 드릴 때를 제외하고는 드리지 않았고, 이 마저도 내 생일이나 다른 명목으로 오히려 더 돈을 얹어서 돌려주시고는 해서 더욱 용돈을 드릴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전남편의 가족에게 다 내가 하고 싶어서, 나름대로 감사하고 위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한 행동들이지만, 전남편은 이 모든 것이 감사하지 않고 당연한 일이라며 끝까지 꿋꿋이 내가 한 일을 부정하고 폄하했다. 그와 그의 가족들이 내 가치나 소중함, 고마움을 결코 모르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고, 너무 약한 존재라서 내가 자신들을 무시했다고 믿지 않으면 그동안 거짓된 마음으로 애써 덮고 덮어서 영위한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무너질까 봐 두려운 것이다. 아무튼 이혼 뒤 처음 맞이한 이번 5월에는 주말 내내 억지로 여기저기 가족 투어를 가서 생각 없는 인형처럼 좌불안석 앉아있지 않아도 돼 자유롭고 행복하다. 




최근에 어느 라디오에서 ‘결혼 적령기인데 소개팅에서 만난 말이 잘 통하는 반백수와 연애해도 될까요’라는 사연에 ‘그런 사람과 결혼해서 이혼했네요’라며 한 청취자가 자신의 경험을 문자로 남겼다. (관련 글: 대화가 잘 통하는 반백수와 연애할까요? 말까요?) DJ는 다른 청취자는 닉네임을 밝히고 조언을 읽었는데, 유독 이혼했다는 이 청취자만 배려하는 마음에서 닉네임을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그 사람은 타인이 자신의 이혼 사실을 알아도 상관없어서 이런 공적인 매체에 별다른 언급 없이 익명이 아닌 자신의 닉네임으로 의견을 밝혔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문제이긴 하지만 오히려 DJ가 이혼을 감춰야 한다는 편견이 있어서 쓸데없는 배려를 했다는 생각마저 들면서, ‘아, 내가 이젠 정말 이혼을 그저 출생, 입학, 졸업, 취직 같은 내 인생에서 벌어진 하나의 이벤트로 여기는 구나’ 싶어서 만면에 웃음이 지어졌다.


6개월 전, 도저히 답이 안 보이는 결혼생활에 절망하고 불안하고 매일 눈물짓고 밤잠을 설치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하루하루가 이처럼 가볍고 설레고 기대되고 충만한 적이 있었나 싶다. 이처럼 파국으로 치닫지 않고 그럭저럭 살 만한 결혼생활을 했어도 괜찮았겠지만, 그럼 아마도 평생 진정한 나 자신을 직면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고, 그 말인 즉 무엇이 행복이고 불행인지, 자유이고 속박인지, 자립이고 의존인지 깨달을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야말로 아찔하다. 지금까지 허구의 독립을 진짜로 독립했다고 착각하고 살았다면,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어두컴컴한 긴 터널을 내 속도대로 한 발자국씩 천천히 내디뎌 빠져나오니 이제야 ‘이것이 진정한 독립이고 자유이고 행복이 아닐까’, ‘이제야 나를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조금은 알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애 많이 쓰고 고생 많았다고, 지금 나 자체로도 충분하고 멋있다고 매일 자기 전 씻느라 욕실에서 거울을 볼 때면 내 마음을 스스로 다독거린다. 이제는 이렇게 까먹지 않고 틈틈이 나 자신을 잘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2020년 브런치에 연재한 결혼 관련 글 중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던 글을 모아서 <드디어 며느라기 해방입니다>라는 제목으로 크몽 전자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상징적인 의미였지 ‘진짜로’ 며느리에서 해방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크몽 전자책에는 2년 동안 달라지고 깊어진 생각을 덧붙여 결혼에 대한 좀 더 예리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브런치 글을 기반으로 발전시키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결혼/부부/가족 나아가 이혼과 비혼에 관한 생각을 크몽 전자책으로 만나보세요! 관심 있으신 분은 아래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주세요. 감사합니다. ^^


♣ <드디어 며느라기 해방입니다> PDF 전자책 살펴보기: https://kmong.com/gig/394554


<전자책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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