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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l 27. 2022

딸은 왜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가 (3)

엄마의 불행한 결혼을 재연하는 딸의 심리작용(낮은 자존감과 순응 성향)

이러한 심리가 작용해서 나는 지독하게 이기적으로 가부장적이고, 일을 하고 돈 버는 것을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억울한 심리를 보상받아야 한다고 믿으며, 인생을 살면서 자신이 이제껏 한 선택이나 잘못한 말과 행동은 아랑곳없이 열등감과 자격지심에 사로잡힌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과 결혼해서, 그가 먼저 입에서 이혼이라는 단어를 언급하기 전까지 도저히 이해가지 않는 상대방의 비상식적인 말과 행동을 어떻게든지 이해하고 맞추려고 노력했다. 엄마는 결혼 전 아빠가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고 주사가 심한 지 몰랐다고 하는데 즉, 알코올의존증인 줄 몰랐다던데, 나도 연애할 때 전남편이 게임 중독 초기에 극심한 가부장주의자인 줄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아빠와 전남편은 감추고 싶은 중요한 사실을 여러모로 말하지 않고, 즉 결혼을 하고자 치명적인 단점을 속이고, 엄마는 아빠를, 나는 전남편을 선택한 과정까지 닮았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아마도 엄마는 연애 때 낌새를 전혀 못 채지는 않았을 텐데, 사람이 다정하고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어 보이니까 결혼 상대로 이만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사소한 불행의 징조를 무시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공산이 크다. 내가 딱 그랬으니까. 부모에게 제대로 사랑받지 못해 자존감이 낮은데 다가 순응적이라 착하기까지 한 사람은 사랑하거나 소중한 사람의 사소한 친절에도 감동하고, 자기 자신보다 상대방이 실제보다 유난히 커 보이니까.




내가 열한 살, 열두 살 즈음이었을까. 그 어린 나이에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엄마처럼 똑똑하고 좋은 사람이 왜 아빠처럼 학력도 낮고 이상한 소리나 해대고 직업도 별로인 사람과 결혼하는 고생을 자처했을까. 이상하다’라는 의문을 종종 품었다. 절대로 내가 잘났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 역시 엄마처럼 상대적으로 나보다 학력도 낮고 이상한 소리나 해대고 직업도 별로인 사람과 결혼해서 그렇다. 부모를 비롯해서 상담 선생님, 나중에 전남편에 대해서 알게 된 주변 사람 모두 내가 어렸을 때 엄마를 바라본 시선처럼 내가 왜 배우자로 거의 모든 사회적 조건이 크게 차이나는 즉, 누가 보더라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선택했는지 무척 의아해했다.


여기에는 부모의 관심과 기대, 방치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불안정애착을 형성하며 생존을 위해 지나치게 긍정적이고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며 성장한 영향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자잘한 사고 한 번 치지 않고,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어른들이 바라는 대로 공부이며 생활이며 착착 알아서 해왔기에 주변 사람들 모두가 늘 익숙하게 그랬듯이 ‘○○는 알아서 잘하겠지. 어련히 배우자를 잘 골랐겠지’라며 지나치게 신뢰했다. 배우자는 당연히 나와 사회적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겠지 생각해서 아무도 배우자의 조건에 크게 관심 두지 않았고, 나도 굳이 가까운 지인이라도 묻거나 의논하지 않았다. 그만큼 상대방을 향한 사랑과 믿음은 의심할 여지 없이 굳건했다. 지나치게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게 살아온 것처럼 익숙한 대로 혼자 결정 내리고 내 선택을 믿기로 했다.


불안정애착을 형성한 사람은 부모에게 집착하고 부모의 뜻대로 살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모의 혼란스러운 태도 때문에 부모를 불신하는 무의식이 깔려있다. 처음에 엄마는 상대방의 학력을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지만 이런 불신 때문에 엄마의 의견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바로 묵살했다. 엄마의 근거가 당시에는 전혀 설득력이 없기도 했고. 한마디로 ‘착하고 똑똑한 여자가 왜 이상한 남자를 만나서 망하는 결혼을 하는가’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도 내가 지나치게 선량하고 순진한 헛똑똑이었다고 인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나는 열한 살, 열두 살 때 그 어린 나이에도 이미 사람 간 사회적 지위나 통용되는 직업의 귀천 등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고, 즉, 일찍이 옳고, 그름을 분간하고 괜찮은 사람과 괜찮지 않은 사람을 분별하는 능력을 충분히 갖췄다고 할 수 있는데, 왜 막상 배우자를 선택할 때 분별력을 잃고 피해야 할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을 고르는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을까.


이혼 뒤 내 인간관계를 돌아보니 가까운 친구들은 여러모로 거의 비슷한 면이 많은 사람들이고, 10년에서 30년 가까이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유일하게 전남편만이 나와 아주 많이 다른 사람이었는데, 놀랍게도 전남편은 나보다 더 나를 낳아준 아빠, 엄마와 닮은 점이 많았다. 특히, 보이는 면 즉, 체면을 지나치게 중시한다든가, 열등감 덩어리에 순간적인 쾌락을 참지 못해서 무언가에 중독된 증상을 보인다든가, 정작 솔직해야 할 때는 약해 보이거나 무시받을까 봐 두려워서 나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딴소리로 둘러대고는, 내가 자신들의 진정한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며 서운하고 억울해하고,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지나쳐서 온 가족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거나 간섭해서 조종하려 들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중요한 순간에 회피하거나 방임하는 성향이 빼다 박은 듯이 닮아 있었다.


부모님과 전남편 모두 나에 대한 정신적 의존 욕구와 심리적인 기대치가 불가능할 만큼 크고 높아서, 내가 자신들을 부모와 배우자가 아니라 마치 일곱 살 어린아이 대하듯이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참고 감내하면서 끝없는 사랑을 베풀기를 바랐다. 내 입장에서는 내가 그들의 부모도 아니고 최소한 동등한 관계에서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늘 가슴이 갑갑하고 불편했다. 끝없이 쏟아지는 폭포수를 들이부은 들 결코 채울 수 없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데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상처를 주고 왠지 모를 불편함을 주는 관계는 의심하고 돌아봐서 멀어지거나 벗어나야 하는데, 오히려 다가가려는 희한한 심리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 부모는 가장 내밀하고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 사람들이라 또 다른 내밀하고 친밀한 상대인 연인과의 관계에서 부모와 맺었던 관계를 재연할 확률이 대단히 높은데, 다시금 부모와 해왔던 대로 해롭지만 익숙한 관계에 나도 모르는 내면 깊숙이 각인된 무의식의 발로로 빨려 들어가고 만 것이다.  자신과 부모를 정신적으로 완전히 분리하지 못하고(일종의 허구의 독립), 나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자각하고 있지 않아서(자기객관화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음) 즉,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잘 알지 못하는 어른이 되다 만 미성숙한 상태라서 벌어진 일이다.

 



불안정애착이 혼란스럽고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함부로 대해서 깊은 내상을 입힌 상대가 한편으로는 어쨌든 나를 가장 사랑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아버지를 향한 내 마음은 밉고 싫고 무섭고 두려워서 결코 다가갈 수는 없는데, 사랑하는 감정이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었다. 그분이 바라는 만큼 관계의 거리를 좁히지 못해서 즉, 아버지의 기대치를 알면서도 충족하지 못해서 나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감정은 한마디로 ‘죄책감’이었다.


아버지는 술 먹고 큰소리치며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정신적 학대를 일삼는 사람이면서, 누구보다 근면 성실해서 회사에서 인정받는 멋진 사람이었고, 가족을 향한 경제적 책임감이 강해서 나는 경제적 어려움 없이 성장하고 대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기에 감사한 사람이며, 밀레니얼 시대를 맞이해서 가족에게 금연을 선언하고는 단번에 금연에 성공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고, 생사의 갈림길을 오간 끔찍한 사고에도 몇 차례의 큰 수술과 5년이 넘는 재활 과정을 의연하게 버틴 누구보다 생을 향한 의지가 강한 사람이다. 나에게 아버지는 몸서리치게 싫으면서도 자식으로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한편에 크게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실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는데, 허상처럼 마음뿐인 아버지의 사랑을 실체가 있는 진심이라고 착각하고, 아버지를 언제든지 의지할 수 있는 큰 산 같은 존재라고 오랫동안 착각하고 살아왔다.



<전체 글>


● 딸은 왜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가 (1)

 : 부모에서 자식으로 대물림하는 애정결핍


● 딸은 왜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가 (2)

 : 불안정애착이 자식에게 미치는 악영향(feat. 가스라이팅에 취약) 


● 딸은 왜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가 (3)

 : 엄마의 불행한 결혼을 재연하는 딸의 심리작용(낮은 자존감과 순응 성향)


● 딸은 왜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가 (4)

 : 딸이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하는 구체적인 심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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