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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l 27. 2022

딸은 왜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가 (2)

불안정애착이 자식에게 미치는 악영향(feat. 가스라이팅에 취약)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전형적인 불안정애착을 형성한다. 부모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절대적으로 믿지만, 때때로 부모의 일관적이지 않은 모습들 즉, 사랑한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이나 행동들을 경험하면서 혼란스러워한다. 예를 들면, 내 경우에는 어렸을 때 가족이 다 같이 저녁을 먹을 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신나서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면, 아버지가 갑자기, 밥 먹는데 계집애가 시끄럽게 떠든다며, 그만 쫑알쫑알 대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런데 또 어떤 날은 입이 삐죽 나와서 조용히 밥을 먹는데 그날은 아버지가 기분이 좋았는지 그건 또 그것대로 땡삐라는 둥 삐쳤느냐는 둥 헤실거리며 제멋대로 농담을 던졌다. 땡삐는 ‘땅벌’의 경상도 사투리라는데, 강원도가 고향인 아빠가 왜 틈만 나면 뿔이 난 이 가족, 저 가족에게 땡삐 땡삐 해댔는지 모를 일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은 안중에도 없는지, 지금도 왜 자식들이 다른 자식들처럼 애교를 부리거나 다정하게 살갑지 않은 지 내심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아버지는 알코올의존증(중독)이라 한 달에도 몇 번씩 과음한 날이면 집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는 말들을 토해내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십 대 시절에 그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집안 분위기를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다. (관련 글: https://brunch.co.kr/@smilepearlll/213) 엄마도 그 꼴을 보고 싶지 않아서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면 방에 들어가서 문을 쾅 닫고는 나와보지 않았다. 심지어 자식이 강압적으로 거실로 불려 나와 ‘자신을 무시하냐는 둥, 아이 씨X’ 이런 욕지거리를 듣고 있는데도 엄마 본인의 괴로움이 너무 커서 자식을 보호하기는커녕 지옥 같은 상황에 방치했다. 누구보다 이 상황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은 엄마 자신으로 얼굴에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온몸으로 치가 떨린다고 티를 다 내고서는 정작 자식에게는 아버지가 일이 너무 힘드셔서 그러니까 우리가 좀 이해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해결을 오로지 어린 자식들의 몫으로 떠넘겼다. 엄마는 이것이 방치이자 회피이며 자신이 어미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인식 없이, 남편과 자식 사이에서 최선을 다해서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생을 믿었다.


어린 자식에게 부모는 세상의 전부이다.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는 전혀 의심하지 않기에, 부모가 자신을 정신적으로 공격하고 상처 주거나, 보호해야 할 때 오히려 방치를 일삼아도 부모가 자신을 무한히 사랑한다고 착각한다. 아이들은 부모를 조건 없이 사랑하기에(생존을 위해서 본능적으로 그래야만 하기에)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는 주양육자인 엄마(또는 아빠)가 힘들어 보이면 자칫 자신이 짐이 될까 봐 아이로서 당연히 가질 만한 대부분의 욕구를 감추고, 엄마의 요구가 불합리할지라도 그 기대에 맞추고자 한다. 내면의 성장을 저해하는 거리를 둬야 할 부모에게 오히려 인정받고 제대로 사랑받고자 집착하게 된다. 극심한 내향형의 아이들은 심지어 문제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 찾다가 자기를 부정하는 단계까지 나아가 자해를 하는 등 자신을 해치는 행동을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엄마가 어린 자식을 감정쓰레기통 삼아서 남편이나 시부모에 대한 온갖 불만을 털어놓으면, 자식은 엄마의 프레임에 따라서 아버지나 할머니, 할아버지를 실제보다 더 부정적인 감정이나 편견을 가지고 대하게 된다. 그럼, 자식에게 남편이나 시부모를 좋게만 말하는 건 어떨까. 지나친 긍정 프레임도 부정 프레임 못지않게 위험하다. 내 경우가 알코올의존증 아버지를 술만 먹지 않으면 성실하고 사람 좋은, 가족을 위해 헌신하기에 ‘이해’ 해야 한다고 합리화 과정을 거친 엄마의 영향으로 긍정 프레임으로 바라본 상황이다. 이 프레임에 익숙해지면 현실을 실제보다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바라보거나, 심지어 나에게 독이 되는 관계조차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며 자기 합리화를 거쳐 이해하고 수용하는 지경에 이른다.


소위 말하는 딱 순진하고 사람 좋은 호구로 성장하기 십상이다. 연인이나 배우자를 고르는 눈이 형편없어서 즉, 기준이 너무 낮아서 주변 사람에게 ‘너 같이 갖출 거 다 갖춘 사람이 왜 너보다 한참 모자라는 사람을 만나?’와 같은 말을 들어도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너희 아버지는 술만 먹지 않으면 참 괜찮은 사람인데’처럼 치명적인 단점을 긍정적인 면모로 덮는데 익숙하다 보니까 예를 들어, 배우자가 생활력이 없는 결혼을 하면 안 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사람인 줄 알면서도 ‘그 사람은 돈 못 버는 것만 빼면 참 괜찮은 사람이야’처럼 생각하고 기꺼이 불행 속으로 뛰어들곤 한다.


때로는 자기 방어기제로 지나친 긍정/부정 프레임을 사용해서 잠시 착각하거나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도 있지만, 가능하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서 있는 그대로 ‘수용’할 때 진정한 내적 성장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무서운 점은 어렸을 때 한번 이러한 불안정애착 관계가 고착화되면, 어떤 계기로 자신이 부모와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깨닫고 현실을 직시하기 전까지,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 또는 부모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과 관계를 형성할 때 어렸을 때부터 이어온 습관 그대로 행동한다는 점이다. 나를 사랑한다던 상대방이 서서히 내 의사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더 이상 배려하지 않고, 나아가 심지어 무시하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데도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외면한다. ‘아닐 거야.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했잖아. 무슨 사정이 있겠지. 시간이 좀 지나면 나아질 거야’라며 오히려 더 이해하려고 하고 상대방에게 맞추려고 한다. 나에게 상처를 주고 왠지 모를 불편함을 주는 관계는 의심하고 돌아봐서 멀어지거나 벗어나야 하는데, 오히려 다가가려는 희한한 심리가 작동한다. 타인의 마음에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켜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해서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 인간 심리에 관심이 있다면 어디선가 한번 즈음 들어본 상황 아닌가. 바로 ‘가스라이팅’이다.


이제 어른인 나에게는 이러한 건강하지 않은 관계를 끊어내서 벗어날 힘이 충분한데도,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나를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거나 공격하는 연인이나 배우자, 직장 상사나 동료, 친한 친구 관계에서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렸을 때 생존을 위해 억울해도 부모에게 맞춰야만 했던 습관 그대로 행동하고 말한다. 더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친밀하다고 생각하는 관계에서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나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다.

                    


<전체 글>


● 딸은 왜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가 (1)

 : 부모에서 자식으로 대물림하는 애정결핍


● 딸은 왜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가 (2)

 : 불안정애착이 자식에게 미치는 악영향(feat. 가스라이팅에 취약) 


● 딸은 왜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가 (3)

 : 엄마의 불행한 결혼을 재연하는 딸의 심리작용(낮은 자존감과 순응 성향)


● 딸은 왜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가 (4)

 : 딸이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하는 구체적인 심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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