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하는 구체적인 심리 과정
거주지를 독립해서 부모와 따로 산 이후에는 부모님과 직접 대면할 일이 거의 없고, 비로소 자유가 주어진 만큼 내가 바랐던 대로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아버지를 향한 미움은 점점 희석되고, 내가 믿고 바라는 대로 아버지의 좋은 점들이 내 머릿속에서 부각되면서, 미워하는 감정은 더욱더 옅어졌다. 부모에게 온전히 사랑받지 못한 불행한 어린 시절이었지만, 내심 깊은 마음 한편에는 화목한 가정을 갈망하며, 부모님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모양이다. 부모를 부정하면 할수록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기에 언제라도 온전해지고 싶다는 심리적 결핍이 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이런 결핍을 채우고자 세상 어딘가에 내 반쪽이 존재한다고 믿고 연인을 만나서 기꺼이 사랑에 빠져들고는 한다.
그런데 신이 내린 망각이라는 축복은 나에게는 약이 되는 듯하면서 독이 되었다. 이 시기에 전남편을 만나서 따뜻한 사랑의 감정을 나누며 부모에게 받은 결핍이 충족이 돼 부모와의 관계도 좋아졌는데, 이 사람을 만나서 회사 일이든, 원가족과의 관계이든 만사가 잘 풀리니까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부모에게 정신적인 독립이 덜 된 미숙한 채로 결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사회적으로 아버지처럼 학력도 낮고 직업도 변변치 않은 사람이었는데도, 이 시기에는 지나친 긍정 콩깍지를 쓰고 있었다. 자신의 직업과 학력 때문에 사회적으로 무시받는 생각에 열등감에 가득 찬 자격지심에 사로잡혔으나, 가족을 향한 책임감으로 평생 하기 싫은 일을 했기에 가족을 위해 희생했다고 믿으며, 술 먹고 가족 앞에서 깽판 치는 자신을 ‘그럴 수 있다’라며 정당화하던 아버지의 끔찍한 모습과 불행했던 시절은 새카맣게 잊었다. 거주지를 독립한 뒤로는 가끔 만나는 부모님과는 서로 좋은 모습만 보여주다 보니 아버지의 알코올의존증이 10년,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현재 진행형인 줄은 모르고, 최소한 예전만큼 몸이 망가질 만큼 드시지는 않으니까 나아지셨고, 부모님 두 분이 사이가 좋다고 착각했다. 어느 순간, 우리 가정은 행복하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배우자의 학력이나 직업은 상관없어. 아버지도 그러한데 부모님은 행복하게 잘 살고 계시잖아. 아버지처럼 진실되고 약속을 중시하고 예의 바르고 책임감 강한 사람이면 괜찮지. 사람이 나만 바라보며 솔직하고, 착실하게 책임감 있으면 됐지. 경제력은 나도 있으니까 직업이 있고 빚만 없으면 충분해. (다소 여러 사회적 조건이 썩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는 잘 알고 있지만) 배우자로서 사람이 착하면 되지, 뭐. 그 사람이 가족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해주고 싶어. 나도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가 아직 다 여물지 않았으니까 서로 사랑하고 보듬으면서 그렇게 잘 살아가면 될 거 같아’라는 부정적인 측면을 내심 알고 있으면서도 그야말로 장밋빛 렌즈를 끼고 모든 것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바라봐서 실체를 회피하고 심지어 현실을 왜곡하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전 배우자는 아버지의 강한 생활력이나 의지력, 타인에게 베푸는 선한 마음, 자신이 꾸린 가정을 어떻게든 지키겠다는 책임감과 같은 장점에도 전혀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를 향한 어쭙잖은 애정과 죄책감을 떨쳐내지 못해서 결혼 상대를 나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 즉, 우리 집안에게 더 어울리는 사람으로 선택했다. 더 솔직하게는 아버지를 무시해서 상처 주지 않을 만한 상대를 고르다 보니 당연히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상대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나와 아버지는 아주 많이 다른 사람이니까. 자식에게 끝없는 애정을 갈구하는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죄책감 때문에 나도 모르게 결혼을 하면서 효녀가 되고 싶었나 보다. 아버지 같은 사람을 배우자로 두면 아내가 감내해야 할 피눈물과 화병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으니 말이다.
아니, 한국에서 결혼이 여성에게 불합리하다고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오만하게도 내가 배우자보다 사회적 조건이 나으면 그나마 균형을 유지하고 결혼 뒤에도 내 목소리를 자유롭게 내며 평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착각하고 합리화했다. 한마디로 이 사람이라면 결혼 뒤에도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으리라는 심각한 오판을 저질러버렸다. 이혼 가정에 대한 이해마저 없어서 온전하다고 착각한 따뜻한 우리 가족 곁에서 전 배우자가 상처를 치유하길 바라며 순전히 내 위주로 행복한 환상에 갇혀 있었다. 그의 가족을 부정하려던 건 아니지만, 그의 어머니는 재혼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린 지 오래되었고, 아버지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해서 교류가 거의 없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들의 아들이 가정을 꾸리자 양쪽에서 서로 가깝고 친밀한 관계를 맺기를 바라서 내 계산에는 전혀 없던 말로 다 할 수 없는 마음고생으로 곤란하고 힘겨운 시간까지 더해졌다.
앞에서 나에게 아버지의 사랑은 허상이고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한 이유는 우리 가족은 독특하게 아버지와 자녀 사이에 소통의 매개체로 반드시 엄마가 끼어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눈 기억이 거의 없다. 어렸을 때는 ‘왜 아빠의 생각을 늘 엄마가 대신 전해주지? 바쁘셔서 우리와 마주칠 시간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라고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어느새 엄마를 매개로 한 소통 방식에 익숙해졌다. 즉, 내가 믿고 있는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하고 엄마를 위한다는 생각은 직접 보고 듣고 느껴서 판단했다기보다는 대부분 엄마의 프레임으로 바라본 아버지의 모습을 내가 직접 경험한 사실이라고 착각한 허상에 불과하다. ‘아빠는 너희를 엄청 사랑하고 염려하셔. 아빠는 엄마를 엄청 생각해서 잘 대해주셔’라는 왜곡된 긍정 프레임에 갇혀서 정작 독불장군인 아버지에게 자존감 낮고 의존적 성향이 높은 엄마가 얼마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모든 불합리한 상황을 감내하며 저자세로 맞춰왔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사실 내 입장에서 불합리한 결혼생활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유지한 근본적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엄마는 피해자가 아니라 공범자인데, 이런 식으로 딸은 엄마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고스란히 재연하곤 한다.
여기까지 ‘왜 딸은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서 엄마처럼 불행한 결혼생활을 반복하는지’에 관한 복잡다단한 심리 과정을 최대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자 한 경험에 기반한 이야기이다. 부모로서 경제적 책임을 다하지 않고, 가정에 충실하지 않고(배우자와 자녀가 있는데도 다른 상대를 만난다든가), 집에서 물건을 부수고 손찌검을 하며 폭력을 일삼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 특히, 가족이든 누구든 간에 물리적인 폭력은 명백한 범죄 행위이다. 다만, 이런 일들은 자식 입장에서 내가 당한 불합리함을 좀 더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서적인 학대는 교묘하게 정신을 지배해서 가까운 관계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키거나 지연시켜서 제대로 인지하기도 어렵고,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평생 잠식돼 살아온 혼란스러운 감정에서 벗어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자칫, 자신이 잘못하지 않은 일과 상황에 과도한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껴서 평생 누군가의 감정 노예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온전치 못한 사랑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며 거리를 두거나 벗어나야 할 가까운 사람과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 십상이다.
성인이 되었는데도 부모의 교묘한 정신적 학대가 익숙해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소중한 인생을 희생하는 줄도 모르고 여전히 부모를 위해서, 부모를 만족시키고자 살거나, 나처럼 독립했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허구의 독립에 불과해서 반 효자/효녀의 삶을 사는 줄도 모르고, 내 인생과 부모 인생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찜찜하고 불편한 혼란스러운 감정에서 살다가 뒤늦게 자신이 부모의 강한 통제 욕구와 지배욕 때문에 쓸데없는 에너지를 허비하고 시간을 낭비했다고 깨닫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부모와 자녀의 적나라한 관계를 보여주는 <금쪽같은 내 새끼>나 <금쪽 상담소> 같은 프로그램에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바라볼 때 윗세대에서 근면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아버지는 흔한 편이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자식이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아버지는 드물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달리 가부장적이고 엇나간 책임감으로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며, 자식에게 자신의 고생을 온전히 이해받으며 인정 욕구와 자신의 부모에게 받지 못한 애정 결핍을 채우려는 아버지는 흔하다. 여기에 심지어 아내에게도, 누구에게도 채우지 못한 정신적 공허함을 달래고자 술로 도피해서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아버지들은 너무 많다.
이런 아버지를 둔 수많은 자식들이 자기객관화가 덜 된 채로 즉, 미성숙한 상태로 딸은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고, 아들은 막상 결혼한 뒤에는 자신의 가정에서 보고 배운 대로 아버지처럼 불쑥 말과 행동이 튀어나온다. 아들은 어머니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했듯이 아내가 자신을 높여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심지어 안쓰러운 인생을 살아온 자신의 엄마를 이제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관계인 아내가 챙겨주길 바라는 경우도 있다. 성별에 상관없이 동등한 관계가 당연하다고 교육받고 결혼 전까지 그렇게 살아온 딸은 자신도 모르게 엄마가 아빠에게 했듯이 불합리한 상황을 감내하며 혼란스러워한다. 새로운 시대에서 새로운 가치관으로 무장한 2030 젊은이들이 결혼 뒤에는 희한하게 구닥다리 가치관을 좇으며 불행했던 부모의 결혼생활을 비슷하게 반복한다. 나는 이 사실을 이제야 자각했는데 나보다 인생 경험이 넓고 깊은, 일찍이 부모에게 완전히 독립한 현명한 사람들은 이를 너무 잘 알아서 결혼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멋지게 잘 살아가고 있었던지도 모르겠다. 부디, 이 글이 자신과 부모의 애착관계를 돌아보고, 현재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점검하며, 앞으로 서로 존중하고 진심으로 아끼는 좋은 인간관계를 넓혀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전체 글>
● 딸은 왜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가 (1)
: 부모에서 자식으로 대물림하는 애정결핍
● 딸은 왜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가 (2)
: 불안정애착이 자식에게 미치는 악영향(feat. 가스라이팅에 취약)
● 딸은 왜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가 (3)
: 엄마의 불행한 결혼을 재연하는 딸의 심리작용(낮은 자존감과 순응 성향)
● 딸은 왜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가 (4)
: 딸이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하는 구체적인 심리 과정
브런치북 <부모님과 관계를 끊기로 했습니다>를
심리에세이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현재 온라인 서점(교보문고 온라인,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도서)에서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책은 6월 22일(목) 발송 예정으로 예정일 이후 1~2일 이내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한 책 소개는 각 온라인 서점을 확인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