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 ‘선하다’도 함께 살펴봄
<'사람은 참 착해’라는 말의 함정>에서 ‘착한 사람’이란 내 마음에 들도록 순종하는 사람을 표현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했다. 갈등을 피하고자 회피하거나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도 이에 해당한다. 타인이 보기에 예의가 바르고 매너가 좋은 사람,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나에게 잘 맞춰주어서 말이 통한다고 믿는 사람도 착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착한 사람’, ‘좋은 사람’, ‘선한 사람’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뭔가 다르게 느껴진다. 내 경우, 착한 사람은 말수가 적고 자신의 의견을 잘 내세우지 않으며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타인이 하자는 대로 곧잘 따르는 개성 없는 사람(일종의 호구)이 떠오른다. 좋은 사람은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일부러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면서 더 난처한 타인을 배려하는 대인배인 훌륭한 사람이 연상된다. 선한 사람은 법 없이도 살 것처럼 선량하고 인상이 좋고(착해 보이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기부나 봉사를 하는 사람이 생각난다.
과연 ‘정말로 착한 사람(좋은 사람 또는 선한 사람)은 누구인지’ 과거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새롭게 세운 기준은 무엇인지 쓰기 전에 이번에는 같은 듯 다른 ‘착하다’ ‘좋다’ ‘선하다’ 각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며, 각 정의를 어떤 식으로도 다르게 바라볼 수도 있는지 생각을 하나씩 정리했다.
1. 착하다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
→ 그럼, 상냥하지 않으면 착하지 않은 건가. 무뚝뚝하거나 표정의 변화가 많지 않은 사람이라도 착한 사람은 많다.
(1) 바르다
1. 겉으로 보기에 비뚤어지거나 굽은 데가 없다.
2. 말이나 행동 따위가 사회적인 규범이나 사리에 어긋나지 아니하고 들어맞다.
→ ‘겉으로 보기에’라면 속은 시커멓더라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바른 것인가. 시커먼 속내를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평생 그럴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바르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 사회적인 규범만을 따르고 살기에 세상은 복잡다단하고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존재한다. 상황에 따라 사회적 잣대를 유연하게 적용하고 대처해야 지 사회적인 규범만을 좇는다면 자칫 융통성 없는 원칙주의자, 현실성이 부족한 사람이 될 수 있다.
(2) 상냥하다
성질이 싹싹하고 부드럽다.
→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인데 나는 상냥한 사람이 불편하다. 짧게 만나는 사이이거나 서비스를 제공받을 때 심리적으로 편하다고도 느끼지만(이것을 바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직업적 가면을 쓴 사람의 가식이라고도 잘 알고 있다. 굳이 갑을로 나누고 싶지는 않지만 ‘상냥하다’나 ‘싹싹하다’는 갑의 언어라기보다는 권력을 쥔 갑에게 잘 보여야 하는 을의 언어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너는 왜 이리 애가 상냥하지 않니’, ‘왜 이리 싹싹하지도 않고 애교도 없니’라는 부정적인 언어 공격을 숱하게 받아서인지 ‘상냥하다’ ‘싹싹하다’라는 말 자체를 싫어한다.
다음은 ‘착하다’의 반대말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쁘다’의 사전적 정의이다.
2. 나쁘다
1. 좋지 아니하다.
2. 옳지 아니하다.
다음으로 ‘좋다’와 ‘옳다’의 정의를 살펴본다.
(1) 좋다
1. 성품이나 인격 따위가 원만하거나 선하다.
2. 말씨나 태도 따위가 상대의 기분을 언짢게 하지 아니할 만큼 부드럽다.
→ 오랜 수양과 고뇌, 갈등을 거친 끝에 성격이 원만한 단계에 이른 건지, 갈등을 회피하는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성격이거나 타인에게 예쁨 받고 잘 보이고 싶어 해서 원만한 건지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악역을 자처해야 할 순간에 이를 회피하고 머뭇거리면 애먼 가까운 타인이 그 역할을 짊어지는 무책임한 불상사가 벌어질 수 있다. 원만해야 할 지근거리 사람에게는 가시 돋치게 행동하고 차가워도 될 먼 상대에게는 원만하게 대하는 어긋난 행동으로 가까운 이들이 고통 속에서 살며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는 경우를 숱하게 보고, 가정과 회사 등에서 경험했다. 이런 유형은 감히 말하건대 원만한 사람이 아니라 내 인생에 보탬은커녕 해를 입히는 저 멀리 거리를 둬야 할 나쁘고 비겁한 인간이다. 모순적이게도 멀리 둬야 비로소 원만한 관계가 이뤄지는 사람이니까.
→ 그러고 싶지 않지만 상대의 기분을 언짢게 해야 할 때는 언짢게 해야 한다. 사전적 의미의 ‘좋다’를 실천하려면 나에게 어떤 상황이 닥치든 고요하게 미소를 짓고 있어야 할 듯하다. 해탈한 수행자만이 ‘좋은 사람’이라면 세상에 좋은 사람은 드물다고 봐야 하는 걸까.
(2) 옳다
1. 사리에 맞고 바르다.
2. 격식에 맞아 탓하거나 흠잡을 데가 없다.
3. 차라리 더 낫다.
→ 위의 ‘바르다’에서 설명했다.
‘착하다’와 비슷한 의미인 ‘선하다’의 뜻이다.
3. 선하다
올바르고 착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는 데가 있다.
‘선하다’ 또는 ‘착하다’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하는 ‘악하다’의 의미이다.
4. 악하다
인간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 나쁘다.
사전적 정의에서 놀란 점은 부드럽거나 상냥한 성질을 ‘착하다’ ‘좋다’ ‘선하다’ 요소로 꼽는다는 사실이다.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부드럽거나 상냥하지 않아도 착하고 좋고 선한 사람은 많다. 심지어 ‘상대의 기분을 언짢게 하지 않는’이라는 지극히 타인의 입장을 기준으로 한 의미를 포함하기도 한다.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정의는 일종의 사회화가 잘 이루어진(사회에 순응하고 규칙을 잘 따르는) 사람을 착하고 좋고 선하다고 바라본다고 할 수 있는데,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적 기준이 늘 옳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여기에 문제를 느끼고 의문을 제기하고 개선하려는 사람이야말로 착하고 좋고 선한 경우가 숱하다. 오늘날에는 이런 유형의 사람을 창의적이고 도전적이며 열린 사고를 가졌다며 그 가치를 높게 인정하고 선망하기도 한다. ‘격식에 맞아서 탓하거나 흠잡을 데가 없다’라는 의미는 예의를 갖춘 사람을 뜻하고, 무엇보다도 사전적으로 착하고 좋고 선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바로 ‘원만함’이다. 다 좋은 말인데 개인의 감정과 생각을 존중하는 개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나에게는 타인 위주의 시각에서 ‘올바름’과 원망한’을 강조하는 이 모든 말들이 구시대적으로 느껴진다. 내가 너무 삐딱하게만 바라보고 있나.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나는 착하고 좋고 선한 사람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원래도 삐딱했는데 뭐, 좀 더 삐딱해진다고 큰일이야 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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