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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Aug 02. 2022

쓸데없는 죄책감을 원래 마음 주인들에게 돌려주었다

부모와 전 배우자의 정신적 지배(통제 욕구)에서 벗어난 새로운 감정들

이혼을 계기로 받은 심리상담에서 처음 전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점차 부모님, 동생들과의 관계로 이야기가 깊어졌다. 부모님과 형성한 애착관계가 배우자나 연인 등 아주 가까운 관계를 맺을 때 비슷한 형태로 재연돼 영향을 미친다고 알게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에서 연인, 배우자를 거쳐 여전히 부모님까지 거의 평생 동안 이들의 사랑한다는 미명으로 자행된 통제·지배하고 소유하려는 욕구와 의존(집착)하고 회피(방치하고 방임)하려는 성향에 휘둘렸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를 잡고 놓지 않는 물귀신들에게 정신적으로 붙들려서 정서적으로 온전히 독립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식도 없는데 전 배우자와 그의 가족들, 부모님과 내 원가족들과 맺어온 관계를 떠올리면 얼마 전까지 마치 아이 다섯 명은 둔 엄마의 역할, 그 책임과 의무를 부여받았던 기분이 든다.


어쩌면 내가 그들의 기대치나 욕구에 너무 잘 부응해서, 그들이 나에게 의존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끝없이 뻗어 나가 어긋나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향한 그들의 사랑과, 그들을 향한 내 사랑을 감히 의심하지 않았기에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뻔뻔하고 이기적인, 나에게 독이 되는 관계를 제대로 눈치채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형성한 불안정애착과 가스라이팅 비스무리한 관계에 늘 익숙했으니까. 뭔가 이상하고 찜찜한데도 그 원인을 잡을 듯 말 듯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다.


전남편은 자신이 나에게 처음부터 너무 잘해줘서 내가 눈이 높아져서 자신의 고마움을 모른다고 말했지만, 자신에게 많은 부분을 맞추려고 이해하고 참는 내 노력을 가치가 없다고 폄훼하며 배우자에 대한 고마움을 잃은 사람은 정작 본인이었다. 부모님은 성인으로서 독립해서 내 인생을 꾸리려고 발버둥 치는 나에게, 왜 자신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실체도 없는) 왜 자신들이 바라는 대로 살지 않느냐며 나에게 끊임없이 가족을 도외시하고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죄책감을 심었다. 더는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즉, 경제적/직업적/인간관계 등등 신경 쓰이게 하지 않고, 성실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인생을 꾸려가는 자식을 격려하고 칭찬은 못할 망정 물 밖으로 나오려는 자식의 머리를 계속 물속으로 쳐 넣고, 호흡 곤란으로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도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는 형국에 처해있었다.


이 상황에서도 내가 부모들에게 바란 것은 경제적 지원도, 심리적 보상도 아니고 오로지 그들의 온전한 행복이었다. 그들이 아프지 않고 지금껏 자신들의 삶을 알토란 같이 잘 일궈온 만큼 노년에는 하고 싶은 대로 여유롭게 인생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기만을 바랐다. 그게 내가 그들에게 바란 전부였는데, 그들은 다 큰 자식이 자신들 곁에 꼭 붙어서 자신들이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고 살아야지만 비로소 행복하다고 아우성이었다.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제한하는 방향이 아니라 차라리 뭔가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식이면 좀 더 나았으려나. 그건 그거대로 또 골칫거리였을 것 같다.


부모와 전 배우자 모두 자신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자식상, 배우자상이 있었다기보다, 자신들의 감정 상태에 따라서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기준으로 삼았기에 애매모호하기 이를 데 없다. 나아가 타인의 심리에 혼란을 야기하며 끊임없이 자신들의 잘못된 신념을 주입하는 폭력적인 성향을 띠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들이 바라는 자식상과 배우자상은 허상에 불과하며, 그를 충족하려면 내 독립적이고 주도적인 인생을 포기하고 희생하라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말은 참 우습지만 내가 전남편에게도, 부모에게도 모자람 없고 나무처럼 묵묵하게 한결같이 너무 잘해줘서 그들이 내 진정한 가치를 외면하고, 고마운 감정을 애써 부정하며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나 싶다. 한마디로 눈이 너무 높아져서 저 높은 하늘 꼭대기에 달렸던 모양이다. 내가 직업도 없이 부모 곁에 딱 붙어서 보모 등골 빼먹으며 매일 돈돈돈 거렸으면, 자신들에게 연락을 자주 하지 않고 집에 자주 들르지 않는다며 서운해할 겨를이 있었을까. 제발 하루라도 빨리 정신 차리고 독립해서 부모 신경 좀 안 쓰이게 했으면 하고 바랐겠지. 내가 결혼해서 꾸린 가정에 충실하지 않고, 매일 밖으로 나돌면서 집안일이며, 먹거리이며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연락도 잘 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과연 전 배우자가 자신의 부모에게 자주 연락하고 찾아뵈며, 내가 그의 부모에게 잘하기를 바랄 정신이나 있었을까. 제발 자신과 꾸린 가정에서라도 제 역할을 다하기를 바랐겠지. 




평생 나를 옥죈 뿌리를 알 수 없던 죄책감과 불편한 감정의 실체를 알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전남편, 전 시부모, 부모님이 이기적이게 나에게 떠넘긴 온전히 그들이 책임져야 할 마음의 짐과 인생의 짐에서 벗어나서 원래 마음의 주인들에게 죄책감과 책임감을 돌려주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동생들 대신 자처해서 짊어지려 한 동생들 몫의 짐들도 내려놓고, 그들이 선택한 인생은 그 자체로 존중하기로 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동생들이 선택한 인생도, 그에 따른 책임도 오롯이 동생들의 몫이니까. 내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그동안 내 양 어깨와 가슴을 짓누른 과도한 책임감과 죄책감에 명확히 선을 긋고 내려놓자 비로소 온전한 내 몫의 인생이 또렷하게 보였다. 결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불가능한 감정, 절대로 채울 수 없는 정서적 결핍을 나에게서 넘치도록 채우고자 한 사람들에게 벗어나자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나는 내면의 힘과 정신력이 강한 편이지만 한편,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감정 소모가 많은 편이라 어렸을 때부터 쉽게 피로하고 지치고 예민해지는 편이었다. 아주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자야지 그나마 피로가 회복되는데, 요새는 하루 수면이 7시간으로 줄었는데도 끄떡없어졌다. 내가 그동안 온 가족들의 정서적 결핍을 채워 달라는 불가능한 욕심으로 가득 찬 아우성에 사로잡혀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빼앗기고, 애먼 스트레스를 받으며 정서적 피로감을 느껴왔는지 새삼 깨달았다.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독한 마음을 품고 모두를 떨궈내자 내 에너지를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내가 쓰고 싶은 곳에, 쓰고 싶을 때 발현하게 되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가볍고 황홀한 두근두근 설레는 기분이다. 온전히 충만하고 행복한 기분이다. 때때로 지금껏 왜 그리 바보 같이 살았나 싶고, 지금 이 순간이 무척 소중해서 회한이 담긴 기쁨의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법적 가족이야 법원의 판결을 받아서 법적으로 관계를 정리하면 그만이지만, 혈연은 천륜인데 관계를 끊는다고 끊어질 리 만무하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쌓아온 가족과의 관계의 실체를 깨닫고는 충격을 해소하고, 마음이 너무 지쳐서 한걸음 물러나서 내면을 가다듬는 나만의 조금 긴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이 후련하고 자유로운 감정과 여전히 불안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안락하고 편안한 기분을 기록으로 남겨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었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그 어떤 인간관계의 형태이든 간에 마음껏 사랑하되 예전처럼 잠식되는 관계는 부디 다시 맺지 않기를 나에게 바란다. 이제는 더 이상 예전처럼 나를 좀먹는 관계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혼자 있어도, 둘이서 같이 있어도, 여럿이 어울리더라도 온전히 나로서 존재하는 것 같은 상태와 기분을 사랑한다. 이럴 때면 내가 사는 이 세상이 참 아름다워 보인다.



총 2개의 글로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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