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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Aug 09. 2022

엄마가 25년 산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그리고는 뜻밖의 상황이 펼쳐졌다

얼마 뒤면 생일이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매년 맞이하는 생일인데 뭐 남사스럽게 생일을 기념하나 싶었다. 그건 매년 진심으로 축하받고 싶은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기꺼이 내 생일을 축하하리라고 알고 있었기에 할 수 있던 사치스러운 생각이었다. 7년을 함께한 연인은 사라지고, 나를 낳아준 부모의 축하가 달갑지만은 않은 상황에 직면하자 올해는 전에 없던 생일에 대한 강렬한 집착이 생겨났다. 여기에는 작년 생일에 전남편이 남긴 상처가 결핍으로 작용한 이유도 있다. 작년 생일, 전남편은 친구 집에서 하룻밤 자고 점심 즈음 꽃과 조각 케이크를 사 들고 무성의하게 귀가했다. 혼자 미역국을 끓여서 점심을 먹는 나를 뒤로하고 자신은 점심을 먹었다며 바로 컴퓨터 게임에 몰두해서 서럽고 더러운 감정이 뒤엉켰었다.


나에게 부모가 꼭 필요한 순간에 몇 번이나 버림받은 상처를 안고 보내는 생일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를 꼭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슬프고 아프고 괴롭고 좀 외롭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태어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이제 나는 ‘진짜 어른’이니까 ‘대체 나는 왜 태어나서 생일마저 이런 번민과 갈등을 느껴야 하나’라는 억울한 마음은 놓아두려고 한다.


단출하고 조용하게 생일을 보내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여러 친구들과 왁자지껄하게 떠들썩한 생일을 보내고 싶다. 생일 단 하루라도 충만한 사랑을 보내는 따뜻한 사람들 틈 속에서 부모와 전 배우자처럼 아주 친밀한 관계에서 때때로 지독하게 부정당한 온당한 감정을 즐거운 추억으로 새롭게 뒤덮고 싶다. 내가 태어난 날에 다시금 환대와 축복을 받으며,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태어난 자체로 나는 소중한 사람이라고 가슴 가득히 느끼고 싶다. 지난해 생일에 새롭게 생겨난 결핍을 채우고자 올해 생일을 행복하게 보낼 몇 가지 계획을 세우긴 했는데, 뜻대로 될지는 지나 봐야 알 것 같다.




엄마가 현재 사는 집을 부동산에 내놨다고 했다. 이 집에 이사 오고 우환이 끊이질 않아서 집을 팔고 아버지의 고향인 춘천으로 가서 노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엄마가 말한 우환에는 내 이혼도 포함돼 있었는데, 집 탓을 하기에는 이미 그 집에 너무 오래 살았다. 모든 불운을 웃는 날도, 우는 날도 있었던 25년 산 집 탓으로 돌리고 싶을 만큼 엄마는 지쳐 있었다.


이유야 무엇이든 떠나는 건 자유인데, 뜻밖에 아버지는 이사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나이 들고도 계속 수도권에 머물며 여러 인프라를 누리고 문화생활을 즐기고 싶어 한 사람은 오히려 엄마였다. 아버지는 엄마와 달리 시골로 돌아가서 어릴 때처럼 자연을 벗 삼아 이제는 소소하게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어 했고, 심지어 완고한 엄마를 꾸준히 설득해왔다. 다른 곳도 아니고 자기 고향인 춘천으로 가서 살자고 하니 모처럼 결심한 엄마의 의사를 두 손 들고 환영할 줄 알았는데, 아버지의 영 마뜩잖은 태도는 도저히 이해불가였다.




며칠 뒤, ‘몇 미터 떨어져 있지도 않은데 우리집이랑 건너편 □□ 아파트랑 평당 단가 차이가 얼마인 줄 아냐’라는 아버지의 뜻밖의 질문에 당황스러웠다. ‘둘 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아무래도 아파트가 좀 더 비싸겠지’라고 대답했다. ‘대지는 우리집도 결코 작은 편이 아닌데, 평당 몇 백만 원에서 천만 원까지도 차이가 난다고.’ 아…… 아빠는 우리집이 주택이라서 상대적으로 가격을 덜 쳐주는 게 싫구나. 막상 집을 팔 생각을 하니까 이 가격에는 배가 아파서 팔고 싶지 않구나. 12살 때 이 집으로 이사할 때 생활의 편리성 때문에 아파트를 가고 싶다던 엄마의 요구를 묵살하고, 아파트는 죽어도 싫다며 주택에 살겠다고 고집을 부린 사람은 아버지였다. 결국, 아버지의 고집을 꺽지 못하고 주택에 살면서 낡은 집을 보수하느라 전전긍긍하고, 세입자 관리에 신경 쓰느라 즉, 25년 동안 스트레스를 감당하며 이 집의 실질적인 유지를 담당한 사람은 엄마였다. 다른 가족의 말은 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고, 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는 이제 와서 억울하다며 집값에 강렬히 집착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까지 해온 말과 현재의 행동이 앞뒤가 전혀 맞지 않아서 위선적으로 느껴졌다.


이어서 대뜸 ‘강남에 가면 테헤란로가 있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땅일 걸. 거긴 평당 얼마인 줄 아냐’라고 묻는데,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버지 입에서 강남 테헤란로와 서울 인근 경기도 우리집의 부동산 가격을 비교하는 말이 튀어나올 줄이야. 차라리 아버지가 평소에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며 돈돈돈 거리는 사람이었으면 듣기는 싫어도 ‘또 시작이구나’ 싶었을 텐데. 내가 알던 아버지는 자족하며 살기에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고, 자연을 좋아하며 정성껏 예쁜 화분을 가꾸는 소소한 즐거움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의외의 한마디는 꽤 충격으로 다가왔다.


더군다나 테헤란로는 상업 지구가 밀집해 있는 반면, 우리집은 주택으로써 가족들의 추억이 켜켜이 쌓인 공간인데, 과연 이런 비교가 합당한 지 아버지의 이 한마디에 가슴이 아려왔다. 나는 12살에 이 집으로 이사했을 때 참 좋았다. 예전 집은 1층이었는데 새로 온 집은 2층이었고, 처음으로 내 방이 생겼다. 방도 3개에서 4개로, 화장실도 1개에서 2개로 늘었고, 거실도 넓어서 쾌적하고 주택가가 밀집해서 조용했다. 근처에는 가벼운 운동을 할 만한 작은 공원이 있고, 집에서 5분 거리인 나지막한 산이 방에서 바라보였다. 마음껏 책을 볼 수 있는 동네 도서관도 가까웠다. 나는 그저 우리집이 좋아서 한 번도 아파트에 살고 싶다거나, 강남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어서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강남 언급은 너무 뜻밖이었다.



멋지고 긍정적으로 바라본 부모의 위선적인 면모를 자각한 뒤, 자기혐오와 자기부정의 과정을 거쳐서 자기수용의 단계에 이른 구체적인 심리 변화를 기록했습니다.

사춘기 등 이미 이 과정을 거치신 분들은 과거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실 수 있고, 어른이지만 여전히 부모와의 애착관계에 매여있는 분들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듯합니다.


글은 총 3개로 구성했습니다.


엄마가 25년 산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현재 글)

 : 그리고는 뜻밖의 상황이 펼쳐졌다

https://brunch.co.kr/@smilepearlll/250


굳게 믿었던 아버지에게 배신감을 느끼다

 : 처음으로 자기혐오감과 자기부정에 시달리다

https://brunch.co.kr/@smilepearlll/251


불행을 벗어나 나 스스로 행복해지는 '선택'하기

 : 자기혐오감을 벗어나서 나 자신을 수용하기

https://brunch.co.kr/@smilepearlll/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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