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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Aug 09. 2022

불행을 벗어나 나 스스로 행복해지는 '선택'하기

자기혐오감을 벗어나서 나 자신을 수용하기

한편, 철든 어른이라서 다행인 걸까. 위선적인 아버지를 향한 배신감에서 비롯한 자기혐오감에 몸서리친 혼란의 시기는 불과 며칠 만에 끝이 났다. 충격에 휩싸여서 격정적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걸 생각하면 부정적인 감정을 시시하게 너무 빨리 털어냈나 싶기도 한데, 내 입장에서는 다행히 깨달음의 순간이 한달음에 찾아왔다. ‘나와 아버지는 다른 사람이잖아. 얼굴은 좀 비슷할지 몰라도 그 사람과 나는 다르잖아’라는 이 단순한 생각이 나를 단숨에 자기혐오감과 자기부정에서 구출해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우선, 나는 아버지처럼 술에 절어 살지 않는다. 주량이 약할뿐더러 절주나 단주를 할 수 있다. 그 사람과 달리 나는 제대로 된 고등 교육을 받았고, 부모 못지않게 교육이 내 인생에 미친 영향이 크다. 편견에 치우쳐서 정보를 단편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종합적이고 다각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잘 훈련된 사람이라서 얼마든지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할 수 있다. 내 주변에는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서 세상과 사회를 적극적으로 이끌어가는 멋진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실수와 실패, 부족한 점은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하며, 하루하루 더 나은 자신이 되고자 외면과 내면의 성장을 지향한다. 같이 있으면 나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도록 자극을 받는 배울 점이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열등감의 근원은 결국 학력과 직업인데, 나는 내 학력과 직업에서 콤플렉스를 느껴본 적이 없다. 이 묵직한 차이점이 내가 실은 아버지처럼 열등감덩어리는 아닐지 의심하는 불안한 마음을 잠재웠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내 직업과 학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더라도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적 차별이나 무시를 받을 만하지는 않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때로는 타인의 부러움을 살 만한데, 이 말은 앞으로도 내가 사회적 조건에서 열등감을 느낄 가능성은 적다는 의미이다.


사회적 인정을 떠나서 우선 나부터가 내 직업과 학교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졸업한 지극히 평범한 일반계 공립고등학교에도 자부심을 느끼는데, 이 마음은 아버지와 달리 아파트도 강남도 아닌 경기도 어느 평범한 주택의 우리집에 만족하며 살아온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나도 인간이니 사회적 시선에 아예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지만, 아버지의 위선적인 모습을 깨닫지 못한 채 착각하고 살았든 어떻든 간에 나는 내가 가진 것을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고 하루하루 감사하며 사는 사람에 가까운 것 같아서, 내 인생을 좀먹는 열등감덩어리가 아닐까 깊은 자기 의심에서는 더욱 마음이 놓인다. 




매년 생일을 함께하던 연인과 가족이 빠져버린 고독한 어른이 맞이하는 생일은 어떤 모습일지 당사자인 나도 잘 짐작이 가질 않는다. 손에서 하나를 놓으면 결국은 또 다른 무언가로 채워지고, 인간관계도 누군가를 떠나보내면 결국은 또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하듯이, 이번 생일은 이제까지 익숙하던 사람과 방식으로 보내지는 않으리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부모에게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다는 사실을 직시한 뒤 생일을 맞이하는 심경은 참 복잡하다. ‘생일이 이렇게 골칫거리였나’ 싶으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무한한 사랑이라고 믿었는데 알고 보니 조건부 사랑이었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한 사람들이라니, 이 세상에 태어난 나라는 존재가 부정당한 씁쓸한 기분은 어찌할 수가 없다. 나를 세상에 존재하게 한 이들에게 내 탄생을 축하받고 싶지 않은 복잡한 심정. 불편한 마음에서 비롯한 일말의 죄책감 때문에 내 탄생을 마음 놓고 마냥 기뻐할 수 없는 내 신세가 참 처량하다.


그래도 최소한 ‘나는 대체 왜 그들에게 태어났지”와 같은 내 존재 전체를 부정하는 단계는 지나갔다. 그건 내 선택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에 ‘왜’라는 질문에 사로잡혀서 고통받고 방황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그냥 그들이 낳았으니까 태어난 거지. 이제는 이 질문을 ‘그럼, 나는 대체 왜 태어났지?’, 그러니까 ‘나는 어떤 역할을 하라고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거지’와 같은 나의 존재론과 역할론으로 바꿔보려고 한다. 탄생과 죽음 사이의 인생이라고 부르는 여정이 한 편의 단막극이거나 아름다운 소풍이라면, 이 단막극에서 내 역할은 무엇이고, 소풍을 정말로 아름다운 소풍으로 간직하려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집중하려고 한다.


새롭게 맞이하는 올해 생일이 여느 때보다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나름의 방식으로 즐겁게 보내 보려고 한다. 불행에 발목 잡히기보다 나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선택’을 하려고 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데, 올해 생일은 희한하게 뭔지는 모를 기대감이 자꾸 스멀스멀 올라온다. 혹시 모르지, 의외의 인물이 나에게 축하를 보내올지도. 정말로 예상하지 않은 무언가 즐거운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멋지고 긍정적으로 바라본 부모의 위선적인 면모를 자각한 뒤, 자기혐오와 자기부정의 과정을 거쳐서 자기수용의 단계에 이른 구체적인 심리 변화를 기록했습니다.

사춘기 등 이미 이 과정을 거치신 분들은 과거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실 수 있고, 어른이지만 여전히 부모와의 애착관계에 매여있는 분들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듯합니다.


글은 총 3개로 구성했습니다.


엄마가 25년 산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 그리고는 뜻밖의 상황이 펼쳐졌다

https://brunch.co.kr/@smilepearlll/250


굳게 믿었던 아버지에게 배신감을 느끼다

 : 처음으로 자기혐오감과 자기부정에 시달리다

https://brunch.co.kr/@smilepearlll/251


불행을 벗어나 나 스스로 행복해지는 '선택'하기 (현재 글)

 : 자기혐오감을 벗어나서 나 자신을 수용하기

https://brunch.co.kr/@smilepearlll/252



브런치북 <부모님과 관계를 끊기로 했습니다>를

심리에세이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책으로 출간습니다.


현재 온라인 서점(교보문고 온라인,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도서)에서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책은 6월 22일(목) 발송 예정으로 예정일 이후 1~2일 이내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한 책 소개는 각 온라인 서점을 확인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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