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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n 08. 2022

자식이 부모와 인연을 끊는 구체적인 심리 과정

알코올 의존중(중독) 가정 자녀, 허구의 독립을 넘어 진정한 독립으로

나는 여전히 아버지가 어떤 폭력적인 말과 행동을 할지 몰라서 두렵다. 그 예측 불가함이 나를 긴장시키고, 불안하게 하고, 생각만으로도 손이 축축해질 만큼 땀이 차오른다. 순응적인 성향이 강해서 어렸을 때는 대들지 않아서 고함을 치는 데서 그쳤지만, 자식과 의견이 상충했을 때 아버지가 자신의 권위를 향한 도전으로 여기거나 대든다고 받아들이면 폭력적인 성향이 단지 폭언을 하는 데서 그칠까. 지금까지는 단지 더 심한 폭력으로 번질 트리거가 없었던 게 아닐까. 할머니와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 그 누구도 지금껏 단 한 번도 아버지의 잘못된 행동에 정면으로 맞선 적은 없었으니까. 기껏해야 ‘술 마시려면 곱게 마셔라’라거나 ‘건강이 염려되니 적당히 마셔라’라는 염려 섞인 잔소리나 푸념 정도를 늘어놓았을 뿐이다.


우리집에서 제왕적인 권위를 누리는 아버지를 누구도 거스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가족 모두가 아버지에게 생계를 기댔기 때문이지만, 폭력적인 상황이 두렵고 이 사람을 더 자극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본능적인 공포감이 작용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할머니, 어머니를 비롯해서 동생들까지 가족이 모두 유순하고 순응적인 편이라 충동적이나마 감히 아버지에게 맞선 적이 없는, 한 번도 직면한 적 없는 상황이기에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이제 더는 아버지가 자초하는 불미스러운 상황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 예전보다 주량이 줄었다지만 술에 취해서 눈은 퀭한 상태로 상대방의 말은 전혀 듣지 않고, 같은 공간에 있으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맥락 없이 자신의 말만 늘어놓는 알코올 중독자의 주정을 더는 한마디도 듣고 싶지 않다. 견디다 못해서 아버지에게 싫은 내색을 비치면 엄마가 내 눈치를 보는 것도 싫고, 결국 갈등 상황으로 번졌을 때 ‘아버지에게 무슨 말버릇이냐’라며 엄마가 술주정뱅이 편을 들면서 나를 나무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도 않다.


이제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고 일련의 사태가 궁극적으로 내 잘못은 아니라고 알기에 예전만큼 억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엄마가 이렇게 꾸짖듯이 말씀하시면 족을 믿었던 만큼 그 순간에는 가족에게 버려졌다는, 이 험한 세상에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고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는 서글픈 감정과 분노감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다. 진즉, 반복되는 악순환의 구조를 깨닫지 못하고 괜히 술 취한 사람과 부딪혀서 받지 않아도 될 상처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이제 더는 내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잠재적인 폭력 상황을 견디는 데 낭비하고 싶지 않다. 세상에는 즐겁고 행복하고 가치 있는 일이나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식으로서 도리를 하고자, 부모님이 자식을 자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기에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죄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보고 싶은 자식을 만난 기쁨에 더 행복해지고자 반드시 술을 마셔야 하는 아버지와 어렸을 때 알코올 의존증(중독) 아버지가 자행한 정서적 학대 트라우마 때문에 아버지 앞에 놓인 작은 소주잔만 봐도 고통스러운 자식, 나는 이제 이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지난 과정을 돌아보니 나는 자식으로서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든다.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사랑이라는 미명에 더는 속지 말고, 마땅히 해야 한다는 사회적 의무감이나 도리에도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한다. 아버지가 변할 가능성은 희박하니 이 비상식적이고 불편한 감정에서 벗어나서 아버지와 잘 지내려고 노력하지 않는 방향(무의식까지 뿌리뽑아서) 으로 이젠 내가 변하려고 한다.




몇 달 전만 해도 아버지가 최소한 내가 집에 가서 기껏해야 점심 한 끼나 저녁 한 끼를 먹고, 두세 시간 정도 머무는 동안만이라도 금주를 하시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사이 이런저런 사건을 겪고 이렇게 글로 생각을 정리하니 이제는 아버지가 해야 할 일은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서 알코올 의존증을 치료하고, 술을 아예 평생 끊고 다른 건전하고 생산적인 활동으로 내면의 결핍을 채우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가 서쪽에서 뜨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오랫동안 시야를 흐린 뿌연 안개가 걷히고 쾌청한 날씨에 뜬 무지개를 바라보니 평생 발목을 잡고 늘어지던 문제의 본질이 보인다. 처음부터 바른 일을 행하기는 쉬워도 수십 년에 걸친 잘못을 바로잡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깨달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적당히 타협하기를 바라지 않고, 내 평생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해도 상관없으니 문제의 근원을 뿌리 뽑아 원래 있어야 했던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아버지의 알코올 의존증으로 우리 가족은 너무 많은 것들을 잃었고, 특히 나와 비교할 수 만큼 여리고 착한 동생들은 여전히 그 피해 상황에 놓여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근원적인 잘못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아주 작은 시작이고, 그동안 어긋난 것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으려면 십 년이 걸릴지, 이십 년이 걸릴지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다.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희박하다. 전적으로 아버지의 의지에 달렸으며 오로지 그가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다. 나는 내가 꿈꾸던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며, 사회에 속한 성인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꿋꿋이 내 삶의 기반을 다져 나가려고 한다. 사랑이란 상대방이 바라는 것을 해주는 것이라면, 상대방이 바라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것, 이것 또한 상대방이 바라는 일이기에 사랑이다. 나는 이제 아버지를 향한 사랑의 크기를 줄이고, 내가 바라는 대로 아버지가 단주를 하시기를 바라고 있다. 자식을 보고 싶은 마음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데서 그치지 마시고, 자신이 자행한 잘못 때문에 고통받는 자식을 진심으로 위하신다면, 이제는 자식이 싫어하는 행동을 그만하시는 것, 오랫동안 헤매고 온갖 고통을 감내하면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 부모님께서 그토록 말씀하시는 ‘진정한’ 사랑이다.


나는 더는 말로만 하거나 마음뿐인 사랑에 속고 싶지 않다. 이것은 사랑도, 뭣도, 아무것도 아니다. 아님, 말고. 다만, 나는 이제 말뿐이나 마음뿐인 사랑에 만족해서 온전한 내 마음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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