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마일펄 May 26. 2022

도대체 ‘진짜 착한 사람'이란 누구인가(3)

3.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

오랫동안 연락이 뜸했던(끊긴 것과 다름없는) 지인이 메신저로 ‘잘 지내?’라고 연락할 때만큼 긴장하는 순간이 있을까. 곧이어 모바일 청첩장 링크를 툭 보내며 ‘나 결혼해’라고 안부를 가장한 결혼식에 오라는 압박을 가하면 ‘대체 어쩌라고! 너는 내 결혼식에 안 왔잖아’, ‘나는 비혼으로 살기로 결정했고, 만에 하나 계획이 틀어져서(?) 결혼하더라도 너를 초대할 생각은 없는데?’ 싶은 마음에 처음에는 당혹스럽다가 대화가 점점 길어지면 내가 대체 왜 이러고 있지? 싶어서 급기야는 화가 치민다.


‘학창 시절에 별로 친하던 친구도 아닌데 뜬금없이 결혼한다는 연락이 왔어요. 초대를 어떻게 무난하게 거절할지 난감했는데 그 친구가 먼저 ‘우리 별로 친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불쑥 연락해서 놀랐지?’라며 말을 꺼냈어요. ‘나도 이런 연락은 난감하고 달갑지 않을 것 같다. 정말 미안한데 자신도 사교성이 없다고 알았지만, 결혼을 앞두고 막상 초대할 친구를 추리는데 생각보다도 결혼식에 참석할 친구가 너무 없다. 염치없지만 문득, 네가 떠올라서 연락을 했다. 당연히 네가 꼭 참석해야 하지는 않지만 만일에 와준다면 평생 은혜를 잊지 않겠다. 불편했다면 미안하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놓더라고요. 그냥 하는 말 같지는 않았고 진심이 느껴져서 저도 기꺼이 결혼식에 참석해서 축하를 건넸고, 이젠 종종 연락하는 친구사이로 지내고 있어요’라는 사연을 읽고, 각자 사정은 다르겠지만 하객이 별로 없어서 자리가 빌까 봐 염려해서 가깝지도 않은 사이에 결혼식을 초대하는 무례한 무리수를 둔다고 뒤늦게 알게 되었다. 자존심을 접고 솔직해지기란 결코 말처럼 쉽지는 않은 일이다. 자신의 약점(콤플렉스, 자격지심)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는 <셀 수 없이 많은 내 열등감과 자격지심>에서 고백했다. (솔직함과 뻔뻔함을 착각해서 간혹 ‘자신의 솔직함을 타인이 전부 이해해야 한다’라고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거나 배째라식으로 나오는 사람이 있는데, 되도록 상종하지 말아야 한다.)




전남편은 명절에 우리집(신혼집)에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 여동생, 작은 아버지와 사촌 동생들을 초대하고 싶어 했다. 10년 가까이 명절에 외식을 했다고 알고 있어서 당시에 나는 당혹스러웠고 이것이 공평하지도 않다고 맞섰다. 전남편은 열 명 가까이 우리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내가 신경 쓸 일은 하나도 없으며, 자신은 이것이 결혼을 했기에 ‘당연히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한다는 이해불가인 논리를 펼쳤다. 도저히 접점을 찾을 길 없이 갈등은 극에 달했는데, 돌이켜보니 전남편은 내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무시할까 봐 늘 전전긍긍하며 아내인 나에게 자격지심을 느꼈던 모양이다. 전남편은 누구보다 신뢰해야 하고, 누구보다 자신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아내에게조차 솔직할 수 없어서 끊임없이 자신을 부풀렸고, 안쓰럽게 보일 만큼 강한 척했고, 급기야는 불행한 결혼 생활의 상당한 책임을 아내인 내 탓으로 돌리기에 이르렀다.


‘부모님께서 이혼하신 뒤 모일 집도 없고 음식 할 사람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명절에 줄곧 외식을 해왔어. 그렇다고 네가 결혼했다는 이유로 음식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결혼도 하고 했으니 ‘나 이렇게 잘 살고 있다’라고 가족들에게 생색 한번 내보고 싶어. 누구보다 아버지에게 ‘나는 당신과 다르다’라고 보여드리고 싶기도 하고. 너는 늘 친척들로 북적인 명절을 보냈겠지만, 나는 오랫동안 그러지 못해서 무엇보다 가족들과 제대로 명절 기분을 내보고 싶기도 하고. 나 좀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을까? 한두 명도 아니고 초대 인원이 많아서 너에게 부담일 거라고 생각해. 이번 한 번만 같이 준비해줄 수 있을까? 앞으로 내가 더 잘할게’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는 없었던 걸까. 그럼, 나는 심적으로 그토록 괴롭거나 힘들어하지 않고 기꺼이 사랑하는 사람이 하자는 대로 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이처럼 말하지 않아도 속마음을 알아서 이해하는 해어화 같은 아내를 바랐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닌 21세기이며, 말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관계에 이르려면 우선 속 깊은 대화를 충분히 나눠야 하지 않을까. 말하지 않아도 항상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서 먼저 알아서 행동하는 사람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전남편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아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불가능한 존재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도재학(정문성 扮) 선생은 김준완(정경호 扮) 교수에게 말하길 퇴근 후 집에서 자신의 아내와 밥 먹으며 수다 떠는 시간이 제일 좋다며, ‘회사 사람 욕도 하고 교수님 욕도 하고 아내와 같이 시가와 처가 가리지 않고 아버지, 어머니, 장인어른, 장모님 흉을 보는데 그렇게 재밌을 수 없다’라고 했는데, 당시 내 배우자와는 불가능한 일이라서 드라마 속 그들 부부가 눈물 날만큼 부러웠다. 전 배우자를 향한 내 태도를 간략하게 털어놓자면 ‘아버지가 학창 시절에 술로 상처를 많이 주셔서(관련 글: 저는 알코올 의존증(중독) 아버지를 둔 딸입니다) 연락하며 지내는 결코 가까운 사이는 아니니, 자기도 연락을 하지 않아도 아예 신경 쓰지 않고 살아도 무방하다. 나도 하지 못하는 일을 당신에게 바라지 않는다. 만났을 때 말씀이 많은데 지루하고 기니까 다 듣지 않아도 되고 힘들면 언제든지 자리를 떠도 되고, 나에게 말해달라’라고 했는데 아마도 그 사람은 가까운 사람에게도 솔직하지 않은 사람이라서, 내 진심을 왜곡해서 ‘그냥 듣기 좋기 좋으라며 으레 하는 말’이라고 치부했던 것 같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경험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거나 솔직하지 않은 사람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고 있다. 독자들께서 사례를 참고해서 주변 사람을 떠올리며 가깝게 지내야 할 ‘진짜 착한 사람(좋은 사람, 선한 사람)’을 판단하시길 바란다. 다음은 거의 매 글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엄마이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노래 가사는 생활고에 짜장면을 먹고 싶은 마음을 애써 부정하며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느껴져서 짠하기 그지없다. 엄마는 이 가사 속 어머니와는 좀 다르게 솔직하지 못한데, 짜장면이 먹고 싶다는 자식에게 ‘짜장면은 맛없는 음식’, ‘짜장면은 해로운 음식’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감추고자 짜장면을 가차 없이 헌담하며 짜장면 탓을 해버린다. 자식 스스로 정당한 욕구를 부정당해서 좌절감을 느끼고, 혼란감에 어찌할 바 몰라서 괴로움에 잠식하도록 방치한다.


주변 사람들은 다 짜장면이 맛있다고 하는데, 나는 짜장면이 무슨 음식인지 맛을 보기도 전에 짜장면은 맛없고 해로운 음식이라는 부정적인 틀에 사로잡히고 만다. 심지어 한 번도 맛보지 않은 짜장면을 먹고 싶은 욕구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사람들은 다 짜장면이 맛있다고 하니까 혼란스럽다. 이런 마음속 응어리는 ‘엄마는 솔직하지 못하며 따라서 엄마가 하는 말은 신뢰할 수 없다’라고 확실히 자각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자식에게 엄마가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얼마나 뿌리 깊게 박히는지 자각을 한 뒤에도 이 영향력에서 벗어나기가 절대 쉽지 않다.


짜장면에 비유해서 말했지만 엄마는 늘, 특히 내가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려고 할 때마다(정신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자립하고자 할 때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이유를 들어서 제동을 걸고 좌절시키곤 했다. 지금 생각하니 경제적으로 완벽한 부모로 보이고 싶은 마음에 내가 집안 경제사정을 잘 모르고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극보수적인 엄마의 세계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모든 것들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솔직하지 못한 말을 하셨던 것 같다. 사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에게 저지르고 있는 말과 행동이다. 다른 글에서도 누누이 말하고 있지만 이는 곧 많은 부모가 자식에게 결코 ‘진짜 착한 사람(좋은 사람, 선한 사람)’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자꾸 부모-자식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쉬운데, 적당히 거리를 두며 사는 부모-자식 관계도 얼마든지 존재하기 마련이다.


엄마는 최근에도 한 빌딩에서 층층마다 아버지, 어머니, 딸과 사위, 아들과 며느리가 살며, 엄마에게 응석을 부리고 밥 차려 달라고 하는 지인을 부러워하며, 내가 살고 싶은 데 거주하며 착실하게 내 할 일을 하고 ‘내 식사 따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재산도 물려주지 않아도 되니 무엇보다 엄마 건강 신경 쓰면서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거 하시고 살라’라는 나에게 ‘너는 참 특이하다’라고 말해서 또 혼란스러움을 안겨주었다. 엄마는…… 말로는 자식들이 독립해서 제 몫을 하며 살길 바란다지만 실제로는 자식에게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주는 행동을 하면서 (비록 그것이 선의에서 비롯한 행동이라도) 자기 내면의 공허함을 채우고, 자기 존재의 이유를 찾으며 만족하고, 급기야 자식들의 자립성을 무력화하며, 평생 품 안의 자식으로 두고 싶은, (경험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공감할) 사람 숨 막히고 미치게 하는 어긋난 모성애를 가진 사람이다.



<도대체 ‘진짜 착한 사람'이란 누구인가> 시리즈


1. 자신이 한 선택을 온전히 책임질 줄 아는 사람(제 본분을 다하는 사람)

2. 자신의 인생에서 중심을 잡고 (최소한) 스스로 서려고 노력하는 사람(1)

   자신의 인생에서 중심을 잡고 (최소한) 스스로 서려고 노력하는 사람(2)

3.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약점을 인정하는 사람) - 현재글

4. 말에 일관성이 있는 사람(겉과 속이 일치하는 사람) - 작성 예정

5. 생각을 멈추지 않고 옳다고 믿는 바를 조금씩 실천하는 사람 - 작성 예정



브런치북 <부모님과 관계를 끊기로 했습니다>를

심리에세이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책으로 출간습니다.


현재 온라인 서점(교보문고 온라인,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도서)에서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책은 6월 22일(목) 발송 예정으로 예정일 이후 1~2일 이내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한 책 소개는 각 온라인 서점을 확인해주세요. ^^


이전 23화 도대체 ‘진짜 착한 사람'이란 누구인가(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