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마일펄 May 22. 2022

도대체 ‘진짜 착한 사람'이란 누구인가(2)

2. 자신의 인생에서 중심을 잡고 (최소한) 스스로 서려고 노력하는 사람

2. 자신의 인생에서 중심을 잡고 (최소한) 스스로 서려고 노력하는 사람


‘자신의 인생의 중심을 잡는다’, ‘나 스스로 일어서려고 한다’ – 달리 말하면 ‘나 답게 산다’라는 의미인데, 매 순간 이렇게 살기는 결코 쉽다. 세상은 혼자서 살거나 나를 이해하는 친밀한 관계인 사람과만 살아갈 수 없기에,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회적 자아를 꺼낸다. 괜찮지 않은 데 괜찮은 척하고 거짓 미소를 짓고, 실제로는 마음에 안 드는데도 별로 개의치 않는 듯 쿨한 사람인 척한다. 물론, 이런 모습도 결국은 내 모습의 일부이지만 ‘나 다운 것’과 ‘사회적 자아’ 사이의 간격(gap)을 줄일수록 나 답게 사는 삶에 가까워지고, 단단한 사람으로 거듭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3.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과도 연결이 되는데, ‘괜찮지 않은 데 괜찮은 척하고 거짓 미소를 짓고, 실제로는 마음에 안 드는데도 별로 개의치 않는 듯 쿨한 사람인 척’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나를 중심으로 놓고 생각했을 때 나와 가까운 사람인가, 먼 사람인가. 가까이해야 할 사람인가, 멀리 해야 할 사람인가. 속을 알 수 없고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기에 멀리해야 할 사람이다. 멀리하지는 않더라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 충분하지, 최소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할 사람은 아니다.


오랜 친구들을 한 명씩 떠올려보니 쿨하고 밝고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유난히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 친구들이 몇몇 있다. 원만한 관계이지만 뭐라고 뚜렷하게 말할 수는 없는데, 뭔가 어느 선 이상은 다가가기 힘든 사람들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도 잘하고, 가족(또는 가정)에게도 충실하고(충실해 보이고), 또 누군가 힘든 일이 생기면 나서서 잘 도와주기도 한다. 멋진 사람이고 곁에 두면 언젠가 한번 즈음 도움을 받을 일도 있을 듯하다. 괜스레 의지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금껏 이들과 가까운 관계라고 믿었는데 실제로 우리는 피상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깨달았다. 그 친구가 절대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생각하고 바라는 만큼 가깝고 친밀한 관계로 지내기는 어렵다고, 예전보다 거리를 두고 적당히 예의를 차리는 관계로 지내야 할 사람이라고 자각했다. 내 마음속 거리를 조정해야 비로소 우리 관계에 대한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니까. 그것이 현재 시점에서 우리 관계의 최대치이자 한계라고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스무 살 이후로 늘 내 인생의 중심을 잘 잡으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측면에서는 그렇기도 하고, 또 다른 측면에서도 아니기도 한데, 나름 업무 관계나 친구/동료 관계에서는 내 중심이 잘 서있는 편이고(협상에서도 내가 바라는 조건에 근접할 때까지 절대 쉽게 물러나지 않고, 철저하게 이해타산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편이다), 가족이나 연인 등 그보다 더 친밀해야 할 관계에서는 그 중심이 무너져 있었다. 평생을 무너진 채 살고 있어서 가족이나 연인 관계에서 ‘나’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데도, 어긋난 상태가 익숙하고 당연해서 원가족이나 내가 선택해서 결혼한 가족 사이에서 내 중심이 무너져 있다고는 자각하지 못했다.


앞에서 ‘괜찮지 않은 데 괜찮은 척하고 거짓 미소를 짓고, 실제로는 마음에 안 드는데도 별로 개의치 않는 듯 쿨한 사람인 척’ 하는 사람은 최소한 멀리하지는 않더라도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면 충분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할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불행히도 나와 아주 친밀해야 할 원가족인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과 남동생, 결혼해서 꾸렸던 가족인 전남편, 전 시어머니, 전 시아버지 모두가 이처럼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가족처럼 친밀한 관계에서도 자신은 완벽하게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고, 상대방(글쓴이인 나를 의미함)의 마음에 안 드는 점을 지적하면 자신이 나쁜 사람처럼 보일까 봐 말은 하지 않으면서 항상 괜찮은 척, 쿨한 척한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 속내는 절대로 괜찮지 않다는 데 있다. 표정에서도 싫은 내색은 찾아보기 힘들고, 말로도 ‘괜찮다’라고 하고서는 괜찮기는커녕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서운함을 쌓고 더 나아가서는 상대방(글쓴이인 나)이 자신을 무시한다고까지 생각하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이들은 자칫 착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기 쉬운데, 갈등을 극도로 두려워하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상대방에게 맞추려고 하고 겉으로 보이기에 온순하고 실제로도 선량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복잡한 내면 즉, 모든 것을 제멋대로 하고자 하고, 조금이라도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거나 싫어한다며 잘 못 견디고(자신도 이런 생각이 틀리고 불가능하다고 알기에 괴로워하면서도 결국은 이렇게 귀결되어서 다시 또 괴로워한다), 급기야는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주체하지 못해서 아주 가까운 대상(실제로는 누구보다 아끼고 자신의 곁에 머무르길 바라는 대상)에게 말로써 공격을 하거나 분풀이를 하는 등 상대에게 상처와 혼란을 주며 피를 말리고, 심각한 경우에는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그럼 이들(아버지/어머니/전남편/전 시아버지/전 시어머니 등)은 왜 자신이 바라는 점을 말로써 직접 요구하지 못했을까. 이들은 누구보다 자신이 나에게 바라는 요구가 지나치다고, 정당하지 않다고 잘 알고 있다. 나에게 요구를 하는 순간, 나쁜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을 넘어서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된다고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요구 사항은 욕심이며 내가 받아들이기에 어렵다고 (마음속 깊이에서) 이미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요구가 결코 떳떳하지 않다고 잘 알고 있다. 이처럼 겉과 속의 괴리가 클수록 상대방인 나에게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도 커져서 속마음은 더욱 꽁꽁 감춘 채 오히려 겉으로는 더 잘 대해주거나, 반대로 내 가치를 지나치게 깎아내리고 더욱 제멋대로 하려고 한다. 사실 우리나라 수많은 가정에서 흔히 겪는 상황인데, 이는 가족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삶의 중심이 제대로 서있지 않기 때문에 즉, 최소한 가족 내에서 나 답게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이들은 세상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한다(사랑한다고 착각한다). 그런데 가족을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생각하면서 모순적이게 누구보다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다. 특히, 배우자가 신경 쓰거나 힘들어할까 봐 정작 중요한 일(건강 관련 또는 경제적인 문제)을 공유하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다 가래로 막을 일을 호미로 막을 만큼 문제를 더 키운다. 결국 극심한 갈등을 초래해서 서로의 마음은 상처 입는데도 이런 신뢰를 갉아먹는 행동을 반복한다.


배우자나 자식에게 흠결 없는 완벽한 슈퍼맨 또는 슈퍼우먼이 되고 싶다고 자기 자신을 기만한다. 배우자나 자식을 완전한 자신의 통제 아래 두고자 하며, 점점 상대방을 무기력한 상태에 놓이도록 잠식해 간다. 배우자나 자식을 타인이라고 인정하기를 거부하며, 자신과 완전히 일체형인 결코 분리되지 않는 타인이기를 바라기에 자신도 모르게 은연중에 이를 드러내는 소름 끼치는 말과 행동을 한다.


전남편의 경우 언젠가 ‘자신은 가족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해서 의아했다. (가족에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한편으로 혼자 힘들어하다가 내가 나중에 알게 되면 ‘내가 그렇게 신뢰할 수 없고 나약한 사람으로 비쳤나’ 싶어서, 배우자로서 회의가 들고 가슴이 아플 것 같다고 대답했었다.) 엄마의 경우 항상 ‘자신은 엄마니까 괜찮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이 말은 달리 생각하면 ‘엄마니까 이래야 해’, ‘아빠니까 이래야 해’, ‘자식이니까 이래야 해’라는 지나친 도덕적인 고정관념에 사로잡혔다는 의미이다. 이를 깨달은 뒤에는 엄마의 이 말이 사랑이 아니라 집착으로 느껴져서 마음이 무겁고, 엄마가 무섭기도 하고, 참 안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족에게 이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거나 내가 가족에게 이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있다면, 가족 내에서 내 중심이 잡혀 있지 않고 무너진 상태이다. ‘가족인데 어떻게 매정하게 그럴 수 있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이런 가족이라면 배우자/부모/형제자매 상관없이 가까운 관계를 유지할 사람은 아니다. 최소한 멀리하지는 않더라도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면 충분한 사이이다. 이들이 타인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결코 좋은 사람(착한 사람, 선한 사람)이 아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어쨌든 내가 이들에게 언덕이 되어 주거나 그럴 여지를 주었기 때문에 계속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관계가 성립해서 이어져왔다. 내가 말과 행동을 아주 조금 바꾸니까 신기하게도 이들도 더는 예전처럼 함부로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또 다른 의존할 대상을 찾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니, 나는 내 인생의 중심을 잘 잡도록 노력하는 데 매진하려고 한다.



<도대체 ‘진짜 착한 사람'이란 누구인가> 시리즈


1. 자신이 한 선택을 온전히 책임질 줄 아는 사람(제 본분을 다하는 사람)

2. 자신의 인생에서 중심을 잡고 (최소한) 스스로 서려고 노력하는 사람 - 현재글

   자신의 인생에서 중심을 잡고 (최소한) 스스로 서려고 노력하는 사람(2)

3.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약점을 인정하는 사람)

4. 말에 일관성이 있는 사람(겉과 속이 일치하는 사람) - 작성 예정

5. 생각을 멈추지 않고 옳다고 믿는 바를 조금씩 실천하는 사람 - 작성 예정



브런치북 <부모님과 관계를 끊기로 했습니다>를

심리에세이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책으로 출간습니다.


현재 온라인 서점(교보문고 온라인,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도서)에서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책은 6월 22일(목) 발송 예정으로 예정일 이후 1~2일 이내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한 책 소개는 각 온라인 서점을 확인해주세요. ^^


이전 21화 도대체 ‘진짜 착한 사람'이란 누구인가(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