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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n 14. 2023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누구도 너를 탓할 순 없어"

(알코올) 중독/정서적 괴롭힘 부모에게서 자란 자식의 복잡한 내면

어렸을 때 정서적 학대를 당했다고?


십 대 시절 아빠는 술주정이 심했다. 그때보다는 덜하지만, 현재도 여전하다. 할머니가 늘 하던 말씀처럼 아빠는 성품이 너그럽고 근면 성실한 사람이라 온 가족을 상처 입히는 술주정, 딱 이 점 하나를 제외하면 썩 괜찮은 사람이었다. 온 가족을 고통 속에 몰아넣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괜찮은 사람이라…. 이런 안이한 생각이 가정 폭력을 폭력이 아닌 일상 행위로 만든다. 이런 말을 반복적으로 듣고 성장한 사람은 어른이 되어도 학대와 공격, 정상의 경계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부모의 정서적/물리적 괴롭힘을 견디는 데 익숙해서 타인의 공격에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개념 없이 무방비 상태로 살아간다.


“성장과정에서 정서적 학대에 시달리셨군요.”


상담 선생님이 이처럼 정의하기 전에는 우리 삼 남매가 부모로부터 정서적 학대를 받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엄마와 딸은 친구 같다는데 왜 이렇게 엄마가 불편할까?’

‘나는 왜 계속 부모님을 벗어나고 싶을까?’ (이를 알면서도 왜 선뜻 못 벗어나고 있을까?)

‘어렸을 때부터 자란 이 집을 왜 이렇게 떠나고 싶을까?’

‘나는 정이 없는 사람일까?’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마음은 드는데, 왜 그분들을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을까?’

‘아빠 말처럼 나는 싸가지가 없고,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인가?’

‘나는 왜 아빠의 기대처럼 살갑지도 않고 애교가 없을까?’

‘나는 왜 항상 부모님께 부족하고,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을까?’


이런 불편한 감정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았지만, 오랫동안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았다. 부모와 맺어온 관계와 그들의 양육 태도에서 감정의 근원을 짚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빠가 자신이 우리 삼 남매에게 자행한 끔찍한 행동들을 돌아본다면 최소한 ‘애가 싸가지가 없다’는 망발 따위는 감히 입 밖에 낼 수 없을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뇌를 꺼내서 그 악몽들을 모조리 칼로 도려내고 싶다. 이제는 기억이 또렷해지지는 않지만 깊이 각인되었는지 지워지지도 않는다.




아빠가 평소보다 귀가가 늦어지면 슬슬 불안했다. 자정 즈음 밖에서 누군가 쿵쿵 계단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면 부리나케 달려가 방의 형광등을 껐다. 내 방은 현관 옆이라 식구들이 귀가할 때 내가 자는지 아닌지 알 수 있었다. 방문이 잘 닫혔는지 확인하고 이불 속으로 재빨리 들어가 자는 척했다. 갑자기 불을 끈 것을 아빠가 눈치챘을까 봐 초조하고 두려웠다. 온몸의 신경은 곤두서고 잔뜩 예민해졌다. 제발 그가 투게더, 셀렉션, 엑설런트 등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며 깨우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이대로 곧장 깊은 잠에 빠져들어서 만에 하나 그가 깨워도 일어날 수 없기를, 거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들을 수 없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기도가 무색하게 정신은 말짱해서 하이드처럼 변한 아빠가 거실에서 한 마리의 짐승처럼 울부짖는 소리가 귓가에 꽂혀왔다.


갑자기 오줌이 마려우면 그렇게 난감할 수 없었다. 방에서 화장 실까지 고작 몇 발자국인데, 그가 거실에서 버티는 한 결코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집에서 생리현상조차 자유롭게 해결할 수 없는 서러움에 감정이 북받쳐 묵음으로 눈물을 왈칵 쏟았다. 방광이 더는 버틸 수 없을 때까지 오줌을 참다가 거실에서 다투는 소리가 잦아들고, 방문 틈으로 가늘게 비치던 거실 불빛이 사라지면 그때가 기회였다. 그러나 거실 복판에서 널브러져 곯아떨어진 그가 혹시라도 깰까 봐 여전히 두려웠다.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화장실로 건너가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 소리를 죽이고 찔끔찔끔 조심스레 볼일을 봤다.


그가 만취 상태로 집에 돌아오는 건 시험 기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졸음을 쫓으며 교과서에 집중하고 싶은데, 밖에서는 여지없이 술에 취한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부모는 자식이 공부를 안 해서 걱정인데, 아빠라는 사람이 자식 교육이나 미래에 관심 없는 내 신세가 처량했다. 끄억끄억 삼킨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책과 노트를 적시고, 까만 잉크가 여기저기 번져서 간신히 글씨를 알아볼 수 있었다. 저런 사람 때문에 시험을 망칠 수는 없다는 심정으로 눈물범벅이 된 채로 다음날 시험 과목을 외우고 또 외웠으니 나도 참 독한 년이다.




한 번은 무슨 이유였는지 홀로 거실로 불려 나갔다. 그는 냉장고 문을 열더니 생뚱맞게 냉장고 청소를 하라고 지시했다. 집에 엄마와 할머니가 있었는데, 두 어른 모두 나를 보호하거나 지켜주지 않았다. 그들은 만취해 또 난동을 부리는 아빠가 꼴도 보기 싫다며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야속하게 그들의 방문은 굳게 닫혔고, 거실에는 아빠와 나, 둘만 남았다. 문이 오랫동안 열려서 띵, 띵 소리 나는 냉장고 앞에서 무릎 꿇고 고개를 떨구고 닭똥 같은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냈다. 그는 울분을 삭이지 못하고 고작 열여섯 살인 딸에게 “나를 무시하냐?”면서 고성을 질러냈다. 그의 입에서는 아이씨, 아이씨, 상스러운 추임새가 연거푸 흘러나왔다. 나는 두려움에 몸을 떨며 마비된 사람처럼 무기력하게 가만히 앉아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극도의 긴장감이 사라지자 오히려 노곤해졌다. 이제 될 대로 돼라, 같은 자포자기의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옥 같은 시간이 되도록 빨리 마무리되길, 그가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다 쏟아내고 곯아떨어지기를 무릎 위에 양손을 깍지 끼고 간절히 기도했다.


열아홉 살이 되던 해, 거짓말처럼 만우절에 그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수술과 치료를 위해 몇 년간 집을 비웠을 때, 비로소 이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벗어나 온전한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비록 임시적이었고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지만, 이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평온한 시기였다.




두렵고 놀라운 사실은 나는 지금껏 폭력 상황에서 아이를 보호하지 않은 두 어른인 엄마와 할머니를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아이를 폭력 속에 방치한 그분들의 태도가 잘못되었다고 전혀 자각하지 못했다. 열여섯 살, 어른들의 방치와 회피에서 정신적 괴롭힘을 홀로 감당해야 했을 때 ‘엄마도, 할머니도 이제는 이 지긋지긋한 상황에 환멸과 염증을 느끼니까. 아빠가 손찌검을 하거나 물건을 깨부수지는 않으니까. 두세 시간 혼자 난리법석을 떨며 괴성을 지르다가 힘이 빠지면 그러다가 마니까. 오늘은 나 혼자 몇 시간 견디면 돼. 그럼, 다른 분들은 오늘은 좀 편하잖아’라고 생각했다.


중학생의 나는 두려움 속에서 왜 나를 보호하지 않은 어른들을 원망조차 하지 않았을까. 대체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 폭력 상황이 얼마나 일상적이었을까. 아마도 이때 이미 엄마와 할머니 두 어른에게 어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나 책임에 대한 기대감을 완전히 버렸던 것 같다. 나이는 나보다 훨씬 위이지만 무의식에서는 돌봐야 할 아이처럼 치부해서 기대감이 전혀 없으니, 이들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실망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고 너무 잘 알기에 폭력 상황에 버려졌다는 절망감을 견딜 수 없어서 ‘나 혼자 몇 시간 버티면 다른 분들은 오늘은 편하잖아’라는 자기합리화로 자존심을 지켰던 것 같다. 벗어날 수 없는 반복되는 공포 상황에 무력감을 느껴 폭력을 내재화했던 모양이다.


부모의 이혼, 가정의 해체라는 이런 엄청난 위기상황에서 아이가 간절히 찾는 건 ‘조난당한 나를 구해줄’ 믿음직스럽고 품이 커다란 엄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엄마! 엄마! 소리치는 아이에게 ‘왜 나한테 그러냐, 내 잘못이 아니다, 제일 힘든 사람은 나다, 지금 내가 너까지 어떻게 해줄 여력이 없다, 그러니 지금은 나 힘들게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엄마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혹은 (더 기가 막히게도) ‘니가 나를 좀 구해줘’ 하는 식으로 아이 붙들고 울고 하소연하면서 불쌍한 사람이 돼버리면 아이는 더 이상 엄마를 어른으로 여길 수가 없다. 그냥 저나 별반 다를 게 없는 어린애로 보이고, 그러니 애가 옆의 애한테 하듯 그렇게 대하게 된다. 아이 눈에 이미 이렇게 된 상태에서 버릇이 없다느니, 혼이 나야겠다느니 하면 할수록 아이의 분노는 점점 더 거칠고 과감해진다. 

-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야(김경림, 마리네삼층집, 2015)』 59쪽




심리상담 중 냉장고 앞에서 두려움에 떨다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열여섯 살의 나를 직면했다. 어른이 돼 마주한 그 시절의 내가 안 되고 가여워서 다시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대체 엄마와 할머니는 무슨 짓을 한 거지? 아무리 자신들이 힘들어도 성인 남성에게 험한 꼴을 당하고 있는 아이만 어떻게 거실에 남겨두고 각자 자기들 방으로 잠적할 수 있지? 홀로 공포를 맞서고 있는 어린 나의 지독한 외로움에 마음이 시렸다. 덜덜 떨고 있는 아이를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꼭 안아주고 지켜주고 싶었다.


만일 내가 어린 나의 엄마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당연히 거실로 달려 나와서 우선 아이를 안심시키고 제 방으로 들여보낸 뒤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당신 지금 애한테 뭐 하는 짓이에요. 제정신이에요? 애먼 사람 그만 괴롭히고 술 취했으면 얼른 주무세요.’ 그리고 다음 날 아이에게 간밤에 괜찮았는지, 무섭지는 않았는지 꼭 물어보고, 엄마가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었을 것이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제삼자의 시각으로 나와 같은 성장과정을 겪은 타인의 사연을 들었다면 난 분명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행동은 명백한 폭력이야.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어. 그런 힘든 상황과 고통을 견디고 바르고 멋지게 성장했다니 대단하다. 나였다면 견디기 어려웠을 거야. 아빠에게서 벗어나고 싶을 만하네. 너를 지켜주지 못한 엄마가 밉고 불편할 만하고. 이제는 너도 어른이니까 미숙한 부모님과 굳이 얽히지 않아도 돼. 네 마음 편한 대로 자유롭게 살면 돼. 네가 하고 싶은 일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면서 살아도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어. 부모님을 만나거나 연락하지 않더라도 네가 이기적이라고, 잘못하고 있다고 탓할 순 없어. 만일 누군가 어쭙잖은 충고를 지껄인다면 당당히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고 꺼지라고 말해줘. 누구도, 누굴 함부로 할 순 없어. 그럴 권리는 아무도 없다고. 그건 죄야.’


나는 그때도, 지금도 괜찮은 줄 알았는데 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이 책에서 부모의 방치와 방관, 정서적 괴롭힘에서 괜찮은 줄 알았지만, 사실상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혀 괜찮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려고 한다.



심리에세이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중 '어렸을 때 정서적 학대를 당했다고?' 전문입니다.

같은 전체 내용은 온라인서점 미리보기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알라딘 미리보기가 책 형태와 가장 비슷해 링크로 남깁니다.

https://www.aladin.co.kr/shop/book/wletslookViewer.aspx?ItemId=318682444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온라인서점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교보문고 온라인,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도서에서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책은 6월 22일(목) 발송 예정으로 예정일 이후 1~2일 이내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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