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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n 15. 2023

거리를 둬야 할 해로운 관계에 집착하는 이유

대물림되는 애정결핍과 불안정애착

대물림되는 애정결핍과 불안정애착

대물림되는 애정결핍과 불안정애착대물림되는 애정결핍과 불안정애착

대물림되는 애정결핍과 불안정애착


영화 「사도」에서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명한다. 영조 대신 정사를 맡은 사도세자가 대신들과 논의해 자율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면 영조는 “네가 뭘 알아서 마음대로 결정을 하느냐”라며 질책한다. 반면, 사도세자가 영조에게 어떻게 결정할지를 물으면 이번에는 “그만한 일도 혼자 결단하지 못하느냐”라며 다그친다. 사도세자가 자의로 결정해도, 타의로 물어봐도 영조의 눈에는 전부 못마땅하다. 어떤 말을 하고 행동을 하더라도 아버지의 야단과 비난이 쏟아지는 암울한 결말은 정해져 있다. 아들인 사도세자는 대리청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아버지 영조의 만만한 화풀이 대상처럼 보인다. 정신적인 괴롭힘을 일삼는 절대 권력자인 아버지 바로 앞에 앉아서 좌불안석 어쩔 줄 몰라 하며 눈치를 보는 사도세자가 얼마나 안쓰럽던지. 이처럼 변덕이 심한 콤플렉스 덩어리인 아버지 영조와 마음이 여리고 효심이 깊은 아들 세도세자는 내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나는 솔직하고 수다스러운 아이였다. 어렸을 때 식구가 다 같이 저녁을 먹을 때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는 했다. 신이 나서 한참 얘기하고 있으면 무표정한 아버지는 얼굴이 더욱 굳어지더니


“밥 먹는데 계집애가 왜 이렇게 시끄럽게 떠드는 거야. 그만 좀 쫑알쫑알 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식사 분위기는 일순간 초상집처럼 숙연해졌다. 엄마와 할머니가 계셨지만, 어린 나를 대신해서 아버지에게 맞서 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사람들은 아이들을 향한 아버지의 괴롭힘을 늘 방관하고 방치하고 회피를 일삼았다. 그 사람들이 아버지의 막무가내식 거친 태도를 문제 삼고 제대로 지적했다면, 아버지의 일관적이지 않은 행동에 이처럼 깊은 혼란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 다음날 샐쭉해서 말없이 조용히 밥을 먹으면 아버지는 이번에는 헤실거리며 제멋대로 농담을 던지곤 했다.


“이거 완전 땡삐네, 땡삐. 입이 쭉 나와가지고.”


하지 말라고 불쾌하다는 의사표시를 해도 자신이 기분 좋은 날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어린 자식들의 감정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고, 기분이 좋은 날과 나쁜 날 제멋대로 표현하는 감정의 온도 차는 너무 컸다. 전날 자신이 버럭 화를 낸 말과 행동은 안중에도 없이 자식들이 왜 다른 가족처럼 살갑거나 다정하지 않은지 제멋대로 불만을 표시했다. 성격이 모나고 유난스럽다며 전부 자식들을 탓했다. 엄마도 종종 내 예민함과 까다로움을 지적하며 자신의 우울함과 힘겨움을 내 탓을 하고는 했다. 집에서 내가 기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아버지와는 말하지 않고 피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 상황에서 왠지 모를 불편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이처럼 부모의 일관적이지 않은 양육 태도 속에서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불안정애착을 형성한다. 자신을 절대적으로 사랑한다고 믿는 부모에게 때때로 사랑한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이나 행동을 경험하면서 혼란을 겪는다. 내면의 성장을 저해하는 거리를 둬야 할 미성숙한 부모에게 오히려 인정받고 온전히 사랑받고자 집착한다.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 당연한 본능인데,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부모와는 거리를 두면 오히려 불안하고, 심지어 죄책감이 든다.


어린 자식에게 부모는 세상의 전부이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부모가 정신적으로 공격하거나 상처 주거나 보호해야 할 때 방치하더라도,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무한히 사랑한다는 믿음을 쉽게 저버리지 않는다.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양육자인 엄마(또는 아빠)가 힘들어 보이면 위기 경보가 발동한다. 자신이 짐이 되지 않도록 부모의 기분을 살피고 자신의 욕구를 희생해서라도 부모의 기대를 맞추려고 한다. 부모에게 안정적인 사랑을 느끼지 못하니 부모가 자신을 떠날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이 불안감이 클수록 자신의 욕구는 감추고 더욱 순응하는 착한 아이가 돼 부모의 인정을 받고 기대를 충족하는 사람이 되는 데 집착한다.


만취한 사람은 상식적으로 피해야 하는데, 불안정애착을 형성한 자식은 술 취한 부모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거듭 이해하려 한다. 애당초 이해 불가인 영역인데,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고 부모를 향한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이런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거의 항상 불안하고 긴장한 채로 살아간다. 타인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이해하고 기대에 부응하고자 과도한 에너지를 쏟기도 한다. 이는 전부 벗어날 수 없는 무력한 상황에서 자신의 통제력을 상실하고 싶지 않은 처절한 몸부림이다.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무서운 점은 어렸을 때 한 번 고착된 애착관계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부모와 유사한 유형의 사람과 관계를 형성해 비슷한 감정 상태에 처했을 때,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부모에게 대처하던 습관 방식 그대로 행동을 재연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서서히 내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더 이상 배려하지 않고 심지어 무시하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데도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해서 외면하고 방치한다. ‘아닐 거야. 분명히 나를 사랑한다고 했잖아. 무슨 사정이 있을 거야.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라며 괴롭히고 하대하는 상대방을 지나치게 이해하고 맞추려고 한다. 상처 주는, 왠지 모를 불편하거나 혼란을 주는 관계는 의심하고 멀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자꾸만 다가가려는 희한한 심리가 작동한다. 부모와 비슷한 사람과 친밀한 관계로 엮였을 때 자존감 낮은 관계를 형성하는 행동 패턴은 자신이 부모와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형성했다는 현실을 직시하기 전까지 계속 반복된다.



심리에세이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중 '대물림되는 애정결핍과 불안정애착'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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