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안 가도 된다는 달콤한 속삭임에 휩쓸리고 있는 건 아닐까?
‘대학을 안 가도 실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는 시대’
‘이제는 학벌과 스펙 따위는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 시대’
‘미래는 학벌의 중요성과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드는 세상이 될 것’
‘세상이 변해서 돈 버는 데 대학 졸업장은 필요가 없다’
‘학벌 타령은 시대 흐름을 못 읽는 고리타분한 생각’
정말 그럴까? 엄연히 존재하는 학벌의 특권이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을 자극하는 달콤한 속삭임은 아닐까? 이 말들을 이렇게 반박한다면?
- 출중한 실력과 능력을 갖춘 사람은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언제나 사람들 눈에 띄었다.
- 이제는 학벌과 스펙은 기본이고, 전문성과 개성, 매력까지 갖춰야 하는 시대 아닐까?
- 미래는 ‘현재보다’ 학벌의 중요성이 줄어들지만, 그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
- 4년제 대학 학위가 없으면 근무 여건이 좋은 회사에 지원조차 못하는 현실
- 서울대학교의 원하는 과에 합격했고, 등록금 걱정도 없는 상황이다. 서울대 입학을 포기하고 혼자서 실력과 능력을 쌓아갈 것인가?
학력과 학벌, 교육과 대학만큼 우리나라에서 생각이 다양하고 의견이 분분하며 논쟁적이고 헷갈리는 영역이 있을까. 의견이 많아서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는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원하는 대학의 원하는 학과에 합격했고, 등록금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묻는다면? 이 상황에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 않을까. 나는 이것이 모든 논리적인 사고, 이상적인 생각, 도덕적인 원론, 소망을 담은 마음 등을 배제한 사람들 마음속 깊이 자리잡은 대학의 적나라한 가치이자 현주소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명품에 대해서 ‘사람이 명품이면 되지. 명품이 무슨 소용이야’라는 일견 타당해 보이는 믿음은 과연 사실일까. 명품을 소유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는 섣부른 자기합리화와 자기 위안이자 자기기만은 아닐까. 세상에는 명품을 소유하지 않은 명품인 사람도 있지만, 명품을 착용한 명품인 사람도 얼마든지 존재하지 않는가. 진심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시기, 질투일 수도 있는 말만 듣고 ‘맞아, 인간 됨됨이가 중요하지. 명품은 가치가 없어’라고 생각한다면 과연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명품을 한 번도 구매해 본 적이 없어서 그 세계에 문외한이지만, 경제적 능력만 된다면 혁신의 상징이자 트렌드를 이끄는 명품을 시즌마다 장만해서 선보이고 싶다. 물론, 지금도 경제적 능력 내에서 나에게 어울리는 의복과 가방, 신발 등을 즐거운 마음으로 장만해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과시의 수단이자 지나친 사치라며 명품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도 불구하고 명품의 사회적 가치를 알기에 능력만 된다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실력만 있으면 돼. 대학은 의미 없는 시대야’라는 일견 타당해 보이는 말은 명품의 가치를 완전히 배제한 ‘사람이 명품이면 돼. 명품이 무슨 소용이야’처럼, 엄연히 존재하는 대학의 가치를 모조리 무시하고, 현실을 외면 또는 왜곡하고 있지는 않은가. 세상에는 대학을 안 나온 실력자도 있지만, 대학을 졸업한 실력자도 존재하지 않는가. 대학의 분명한 가치와 의미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대학은 의미 없고 가치 없다’는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며 합리화하고 있지는 않은 지 자기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요즈음은 대학을 안 가도 괜찮은 시대가 아니라, 명문대의 특권과 이점은 줄어들되 대학 교육은 오히려 필수인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2022년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 학생 2만2,7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희망직업을 살펴보면, 대부분 대학 교육 또는 그에 상응하는 전문 교육을 거쳐야 얻을 수 있는 직업이다. 누구나 희망직업 대로 살 지는 않겠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원하는 직업을 얻고 경쟁력을 갖추려면 고등학교 교육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초중고등학생 희망직업 상위 10개의 면면을 살펴보면,
(겹치는 직업은 한 번만 표기)
- 교사, 간호사: 대학을 반드시 졸업해야 한다.
- 의사: 의과 대학 졸업 후 일반의가 되거나, 인턴/레지던트 수련 뒤 전문의가 될 수 있다.
- 컴퓨터공학자, 생명과학자, 법률전문가: 대학원이 필수이다.
- 군인/경찰관: 사관학교/경찰학교 등을 졸업해야 관리직 역할을 할 수 있다.
- 경영자/CEO: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서 배운 노하우로 창업을 하고, 이후 MBA 등을 취득해 전문성을 강화하는 경우도 많다.
- 소프트웨어개발자: 대학 전공자의 경쟁력은 말할 필요 없고, 관련 사설 교육기관의 교육을 바탕으로 독학해서 IT 기업에 취업해 괜찮은 대우를 받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 시각디자이너: 대졸자가 아닌 경우도 많지만, 경험상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디자이너가 실력이 보장되는 경우가 많았다.
- 운동선수: 선수생활 이후 코치, 지도자가 되려면 대학 교육 또는 전문 교육은 필수이다.
- 가수: 무엇보다 재능이 가장 중요한 직업이지만, 실용음악과 등에서 전문 교육을 받고 관련 분야에 종사할 수 있다.
- 성악가: 음악대학/대학원 수료는 필수이고, 해외에서 교육을 받는 경우도 많다.
- 배우/모델: 학력에 제한은 없지만 모델의 경우는 최근에는 대학의 모델학과에서도 모델을 양성하고 있고, 배우도 관련 전공자 가운데 배우가 되는 경우가 늘고 있으며, 어린 시절부터 배우 활동을 한 사람 가운데는 대학교의 인문계열이나 사회계열로 진학해 인문적인 소양을 쌓는 경우도 있다.
- 만화가/웹툰작가: 예전에는 도제식이었지만, 관련 학과나 전문 교육기관을 통한 사회 진출이 늘고 있다.
- 뷰티디자이너: 학력과 크게 관련은 없지만 이 직업도 해외에서 전문 교육을 받아서 경쟁력을 강화하는 사례도 보았다.
- 요리사: 조리와 관련된 학과 또는 교육기관에서 이론과 실무지식을 쌓는 편이 좋다.
- 크리에이터: 학력 상관없이 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콘텐츠 창작자는 전문 지식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 공무원: 학력 상관없이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학력보다 재능이나 실력, 운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드는 사업가(CEO), 배우/웹툰작가/운동선수 등의 예술 계통도 관련 대학이나 교육기관에서 전문성을 쌓고, 그 안에서 얻는 정보와 인맥으로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으며, 크리에이터 등의 콘텐츠 창작자의 전문성도 대학 교육이나 해외 유학 등에서 얻은 전문 지식에서 기반한 경우가 많고, 요리 관련 직업이나 뷰티디자이너 등도 해외의 전문 교육기관에서 전문성을 강화해 국내에서 인정받고 주목받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인정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가 높아져 오늘날 많은 이들이 선망하고 도전하는, 타고난 재능이 가장 중요한 직업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학력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지만, 실력을 인정받아 사회적 성공에 이르는 이들은 시대에 상관없이 소수에 불과하다.
이제는 농업조차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IT 기술을 접목해 이뤄지고 있다. 지식과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에서 대학으로 대표되는 고등 교육이 필수인 시대로 나아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4차 산업혁명에서도 정보화시대는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고도의 전문 지식 또는 기술을 터득하는 고등 교육의 영향력은 ‘앞으로 대학은 의미와 가치가 없다’라는 믿음과 달리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대학의 영향력이 줄어들지, 명문대도 의미가 없을지, 학벌주의가 강화될지 사실 이 모든 논쟁은 사실 개인에게 무의미하다. 개인에게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역량을 갖추기 위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가장 좋은 교육을 제공하는 곳을 찾아서 배우고, 재능에 접목하고 자신만의 개성을 발휘해 외부의 요구에 맞춰 일을 하다가, 다시 내면을 채우고 갈고닦아야 하는 시점이 오면 다시 학습하고 배워서 실력을 갈고닦는 이런 과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학 교육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대학을 가고, 그 교육기관이 해외에 있으면 해외로 가서 배우는 것이다. 대학 또는 전문기관 등에서 제공하는 교육이 자신에게 필요한지 판단하려면 실제로 해당 교육기관에서 어떤 교육과정(커리큘럼)을 제공하고, 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만족도는 어떤 지 파악해야 한다. 혹여나 ‘이제는 대학을 안 가도 되는 시대’라는 피상적인 말에 휩쓸려 구체적인 정보를 탐색하는 과정 없이 맹목적으로 자신의 인생 선택지에서 대학을 배제하고 있지는 않은 지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