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도 있고, (박)현욱이도 있고"
“이번에 그 친구 연세대 입학했잖아.”
“어느 학교 졸업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연세대학교요.”
“이번에 우리 회사 입사하는 신입이 연세대 졸업했대.”
이런 말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는지? ‘공부 잘했나 보다’, ‘능력 있나 보다’, ‘뛰어난 가 보다’, ‘열심히 살았나 보다’, ‘(최소한) 성실한가 보다’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일부 질투하거나 경계하는 사람도 있지만 연세대를 졸업했다고 하면 대부분 ‘대단하다 싶은 호감의 눈길로 부러운 마음’을 나타내거나 ‘사람이 달리 보인다’는 어감이 은연중에 묻어나고는 한다. 만 18세 후반기에 운 좋게 연세대라는 학력자본을 획득한 뒤로 대체로 사람들의 환대와 기대, 신뢰를 받는 분위기에서 살아온 것 같다. 아마도 자신이 먼저 타인을 무시 또는 경멸하거나 어떤 이유로든 차별하는 등 쓸데없이 잘난 체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에서 연세대라는 브랜드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호감을 얻거나, 여러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데 분명히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100% 대학 간판 때문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연세대라는 브랜드에 일종의 ‘자기충족적 예언’을 나타내는 경향의 선순환 효과를 분명히 누려왔다. 자기충족적 예언이란(self-fulfilling prophecy) 자기 자신에 관한 또는 타인에게서 받는 긍정적/부정적 믿음이 현실에서 이뤄진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잠재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학생에게 교사는 (자신도 모르게) 더 많이 미소 짓고 더 많이 고개를 끄덕이며 더 열성적으로 가르쳐서 실제로 학생의 수행도가 더 높아지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또는 어떤 게임을 할 때 상대방이 비협조적일 것이라고 믿는다면 (자신도 모르게) 그를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쳐서 실제로 상대방은 비협조적인 행동을 나타낼 수도 있다. 이처럼 연세대 브랜드 덕분에 어느 정도는 타인의 환대와 기대, 신뢰를 받는 분위기에서 자신감 있게 더 많은 성취를 이루고, 이는 다시 자신감과 자부심으로 이어져 다시 또 좋은 기회가 주어지는 계기로 연결되곤 했다.
SKY 대학이라는 브랜드는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것 아니냐며 비하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경험에 따르면 전 세계 누구라도 공부 잘한 학생에는 기본적인 호감과 존중을 나타내는 것 같다. 한창 세계 여행의 열망이 강렬했던 20대 초반에 여행에서 만난 미국 MIT 대학교에 다니는 동갑내기 한국계 미국인 친구와도 내가 한국 명문대생이라는 이유 때문에 더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 세계 어느 나라 친구라도 비록 연세대의 이름은 모르더라도 한국에서 세 손가락에 꼽는 명문대에 재학 중이라고 하면 보통은 감탄과 호감, 존중을 보이고는 했다. 나도 마찬가지로 장난이 짓궂은 멕시코 친구가 의과대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사람이 달리 보이며 비로소 진중한 면모도 눈에 들어온 적도 있고, 지금은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동남아시아의 어느 낯선 나라 친구가 그 나라의 최고 대학에 다닌다고 알게 되자 ‘똑똑하고 성실하고 의식 있는 엘리트구나’ 싶어서 나도 모르게 그 친구를 좀 더 존중하며 약간은 달리 대하게 되었다.
브랜드란 신뢰와 믿음, 기대와 만족을 바탕으로 한 무형자산이라면 명문대생이라는 브랜드에는 ‘똑똑함과 성실함이 보장되는 사람이 아닐까. 무슨 일이든 믿고 맡겨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기본적인 기대감과 만족감이 존재하는 것 같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일일이 설명하기 전에 ‘명문대 졸업자’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타인에게 호감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실은 수혜를 넘어서 엄청난 권력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권력이란 자신을 낱낱이 증명하지 않아도 저절로 수용되는 것이라면 약자일수록 수용되려면 수많은 말과 설명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명문대를 졸업했다고 원하는 기업에 입사하거나 돈을 많이 벌거나 바로 사회적인 성공을 이룰 수는 없다. 전 세계 엘리트들이 선망하는 글로벌 기업에서 하버드, 예일, MIT 등이 아닌 한국의 연세대는 채용에서 전혀 메리트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십 대 시절 원하는 대학 입학이라는 목표를 성취한 긍정적인 경험은 또다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노력할 때 ‘할 수 있다’라는 강한 동기부여와 자극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거의 대부분 고등학생이 대학 입시라는 하나의 목표에 매진하고, 입시 결과에 따라 진학 대학의 서열로 개인이 평가받는 현재의 교육 제도는 문제라고 지적하기에도 민망할 만큼 오랜 병폐를 이어오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 볼 때 그저 점수에 맞춰서 대학에 진학한 사람과 각고의 노력 끝에 ‘자신이’ 목표로 한 대학에 진학하는 성취감을 맛본 사람은 이후 삶을 대하는 태도가 결코 같을 수 없다. 물론, 누구나 언젠가는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목표를 한 번씩은 성취하는 경험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지만,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운동선수나 천재적인 예술가(음악가), 극소수의 연예인(아이돌과 배우 등)을 제외하면 원하는 대학교(대체로 명문대) 입학은 십 대 후반이라는 이른 나이에 강렬한 성취감을 경험할 수 있는 희소한 기회이지 않을까 싶다.
나의 경우,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세우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가령, 이 나이에 ‘피겨스케이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겠어’ 같은 아득한 목표를 세울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고민 끝에 ‘이번에 이건 꼭 해내고 말겠어’라고 마음먹은 간절한 일은 거의 다 이뤘는데, 충분한 탐색 과정을 거쳐서 한번 목표를 굳건히 정한 뒤라면 ‘할 수 없다’라는 생각을 하는 일은 극히 드문 것 같다.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처럼 ‘하나씩, 차분히, 꾸준하게’ 해 나가면 (목표에 따라서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고, 또다시 좌절과 위기를 겪겠지만) 부지불식간에 바라던 목표에 도달해 있을 것이며, 만일 위기에 봉착하더라도 간절한 만큼 분명히 해결한 방법을 찾아내고, 도와줄 사람이 나타나리라는 내 인생과 나 자신을 향한 안정적인 믿음을 기본적인 삶의 태도로 형성하고 있다. 세상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될 리는 없고, 목표로 이룬 것이 생각과 달리 늘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나 스스로 결정한 선택에 따른 결과이니 그 부정적인 영향도 고스란히 감내하는 책임감을 가질 수 있었고, 그래도 내 인생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다는 안정감 때문인지 후회도 별로 남지 않는 것 같다.
인생은 예측불가해서 누구에게나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대체로 내 인생의 선장인 내가 생각하거나 의도한 대로 인생이 흘러온 일련의 경험은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근원이기도 하다. 특히, 연세대 재학 시절 여러 번의 노력 끝에 마침내 성적 장학금을 받은 경험은 우리나라에서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서 나 자신의 똑똑함을 입증했다는 자부심으로 이어졌다. 경쟁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이 한 번의 사소한 경험으로 뛰어난 사람들과 불가피하게 경쟁을 해야 할 때, 주눅들지 않고 ‘나도 결코 뒤지지 않는 실력자야’라는 자신감으로 경쟁에 몰입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준호도, 현욱이도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활발하고 활동하고 있지요.”
여기에서 준호는 세계적인 영화감독 반열에 오른 봉준호 감독이고, 현욱이는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를 쓴 박현욱 작가다. 사회학에도 관심이 있어서 사회학과 수업도 여러 과목 수강했는데, ‘창작자로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강조하던 교수님께서 불쑥 내뱉은 말씀이었다. 그때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에 이어 <괴물>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명실상부 최고의 스토리텔러이자 영화감독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박현욱 작가는 그의 원작 소설이 흡입력 있는 연기력으로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인 주인아 역을 사랑스럽게 그린 손예진 배우 주연의 <아내가 결혼했다>로 개봉해 책도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럼, 봉준호 감독도, 박현욱 작가도 소싯적에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단 말이야? 그 유명하고 추앙받는 사람들도 노(老) 교수님의 눈에는 젊디 젊은 준호와 현욱이란 말이야? 그럼, 십 몇 년 전에는 그분들도 이 허름한 강의실 어딘가에서 지금의 나처럼 수많은 학생 가운데 한 사람으로 앉아있었겠지?’
문득, 다른 세계 사람으로만 여기던 사람들이 (그분들은 나를 알지 못하고 앞으로도 알지 못할 테지만) 괜스레 심적으로 가깝게 느껴졌다. 유명한 영화감독이나 소설가를 목표로 하진 않더라도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교육을 받고 있으니, 아직 뭔지는 몰라도 ‘나도 언젠가 그들처럼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자부심과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껏 특별한 존재로 바라본 사람들이 - 물론, 특출하고 특별한 면모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봉준호 감독은 천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 한편으로 또 그렇게 특별하지도 않으며, 그들과 나의 삶이 또 그렇게 대단하게 다르지도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처럼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으로 그들의 성취의 반의 반의 반의 반 정도만 따라가거나 1/10 아니, 1/100 정도만 따라가도 나 또한 꽤 괜찮은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러한 개똥철학이 비웃음을 살 수도 있지만, 내 이런 마음은 이순신 장군이 주인공인 <명량>, <한산> 같은 영화를 보면서 민족적 자긍심을 느끼거나, 해외에서 삼성, LG 제품이나 로고를 마주하거나, 외국인이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재밌게 봤다고 하거나, 외국인이 BTS, 블랙핑크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춤을 추는 모습을 봤을 때 한국인으로서 우리나라를 향해 갖는 자부심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명문대의 이어져오는 전통과 역사의 순기능적인 수혜를 입었다고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대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 선후배들이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성실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 자체가 평생 자극제가 되고 있다. 특히, 방송국이나 언론사 등에서 활약하고 있는 지인들이 많기 때문에 우연히 읽은 기사의 바이라인에서 친구의 이름을 발견하거나, 방송 뉴스 진행이나 방송 기사 리포트에서 선후배의 어딘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올 때면 ‘다들 잘 지내며 여전히 열심히 살고 있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이들은 존재 자체로 나도 계속 성장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주변의 멋진 사람들의 영향으로 안주하지 않고 계속 멋진 사람으로 거듭나고자 한다는 것, 나에게 연세대 졸업장이 갖는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