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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Mar 07. 2024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1)

사랑이란 마음이 아니라 '행동'이다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우수지는 회사 남직원들이 자신이 노브라인지 아닌지 내기를 했다며 남자친구에게 불쾌감을 토로한다. 남자친구 마상구는 어떤 여자가 직장에 노브라로 다니냐며 성희롱을 일삼은 무례한 남직원들을 지극히 상식선에서 같이 욕하고 여자친구의 편을 든다. 그런데 우수지는 이 상식선을 깬 여자 회사원이었다. 외근할 때 차 안에서 잠시나마 브래지어를 벗었다가 회사에서 다시 착용을 하고는 했는데, 가끔은 깜빡할 때가 있었기에 남직원들의 의심이 사실무근은 아니었다. 사건의 놀라운 전말을 알게 된 마상구는 우수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며 길길이 날 뛴다. ‘여자친구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진실된 마음’이라는 마상구의 말을 우수지는 ‘소유욕을 좋은 말로 포장한 자기 합리화’라며 되받아치고, 둘 사이는 냉랭해진다.


며칠 뒤 마상구는 손에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나타난다. 쇼핑백에는 브래지어가 한가득 담겨 있다. 아무리 실수였더라도 상식에 어긋난 행동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여자친구는 싫지만, 밖에서도 종종 브래지어를 벗는다는 행위를 여전히 납득할 수는 없지만, 마상구는 우수지가 사회적 관습을 알면서도 벗어날 정도로 브래지어를 불편해한다는 점을 이해한 것이다.


“속옷 브랜드 중에 제일 편하다는 거로 다 샀어. 그러니까 한번 입어 보라고. 그래도 불편하면 내가 어떻게든 구해볼게. 너한테 편한 거로.”


오로지 사회적 시선과 도덕적 관념에 사로잡혀 표피적으로 옳고, 그름의 잣대로만 엄격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한 발짝 물러서서 ‘대체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한 걸까?’ 곱씹으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행동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마침내 이해를 한다. 답을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갈등의 근원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행동으로 실천한다. ‘노브라’라는 현상 이면의 ‘불편한 마음’이라는 본질(핵심)을 이해하고 편한다는 브래지어만 잔뜩 골라온 남자, 이런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어떻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가상의 인물이지만 지금껏 살면서 결혼해도 괜찮겠다 싶은 유일한 남자였다.




지난 생일, 친구가 예약한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토마토, 아보카도, 양상추 등 알록달록 신선한 채소가 가득 담긴 콥 샐러드, 절묘한 소스가 풍미를 더한 잘 구운 양갈비 스테이크, 귀한 성게알이 들어간 우니 파스타까지 친구가 작정하고 대접하는 만찬이었다.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대화에 포만감까지 찾아오자 마음은 느긋해졌다. 친구도 분명히 배가 잔뜩 부른 상태일 텐데, 식사를 마치자마자 황급히 디저트도 먹자고 재촉했다. 달콤한 캐러멜이 글레이즈드 된 바나나 크렘 브륄레를 고르자, 한 사람당 하나씩 먹자며 키 라임 파이를 하나 더 주문한다. 평소 검소한 모습과 달리 오늘따라 친구가 과하다 싶었지만, 생일이니 특별히 이것저것 잘 먹이고 싶은 친구의 마음인가 보다 생각했다.


곧이어 나온 키 라임 파이에는 초가 하나 꽂혀 있었다.

“여긴 디저트에 초를 켜주네? 특이하네?”

아무런 의심도, 편견도, 심지어 눈치도 없이 순수하게 묻자 친구는

“내가 미리 얘기해 놓았지. 그냥 켜주는 거 아니야.”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친구는 이날 생일 촛불을 켜서 나의 탄생을 축복하고, ‘너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은 거였다.


간단한 문자로 생일 축하를 주고받는 예년과 다르게 이번에는 생일 몇 주 전에 약속을 잡자고 연락이 왔다. 회사 선배 덕분에 알게 된 식당이라며, 평소 자주 가지도 않는 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한다고 했다. 친구는 연구와 강의, 육아로 바쁜 시간을 쪼개서 내가 쓴 200쪽이 넘는 유쾌하지도 않은 책을 꼼꼼하게 읽은 거였다.




믿었던 가족에게 배신당하고 행복해야 할 생일이 상처와 아픔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처음 겪는 이혼으로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는 나에게 위로는 못해줄 망정, 엄마의 생일을 축하하러 찾아간 집에서 끝없는 자기 연민에 사로잡힌 아버지는 여전히 자신의 술주정을 받아주기를 바랐다. 결국 또 울분을 쏟아낸 나에게 어머니는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에게 그러면 안 된다며 또 나를 탓하고 힐난했다. 아버지의 술주정 때문에 무기력하고 고통스러운 나, 그런 아버지를 ‘아버지니까’ 이해해야 한다며 오로지 남편 편에 서는 엄마, 우리집은 불안감과 외로움에 고통스럽게 몸서리치던 20년 전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힘든 순간 잠시나마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부모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저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달라고, 상처받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져 달라고 힘겹게 내민 손을 매정하게 뿌리쳤다. 나를 낳은 부모조차 나의 고통과 외로움을 외면했다. 가족이 가족이 아니었다. 이제 나에게는 남편도, 엄마도, 아빠도 아무도 없었다. 이 세상에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았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을까. 그렇다면 죽어서 사라져야 하는 걸까. 믿었던 부모조차 외면한 무가치한 나, 그런 내가 태어난 날이 생일이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인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두려운 고통의 데드라인 같은 날이었다. 생일은 더 이상 축복받는 날이 아니라, 제발 오지 않기를 바라는 버리고 싶은 짐 같았다.




친구는 내가 쓴 내밀하고 어두운 지난한 이야기 속에서 나의 외로움과 슬픔, 아픔과 상처, 그럼에도 살고 싶은 의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읽어낸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생일을 다시 축복받고 사랑받는 즐거운 날로 기억하도록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날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친구의 온기 덕분인지 ‘제발 내 생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절망적인 마음이 더는 들지 않는다. 아무도 내 생일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건 또 약간은 쓸쓸할 거 같지만, 이제는 특별한 이벤트 없이 혼자 보내는 생일도 괜찮을 것 같다.





우리는 사랑을 어떤 특별한 ‘감정’이라고 믿는다. 이성적으로 끌리는 사람에게 빠져들어서 설레고 좋아하고 계속 생각나고 두근거리고, 온 마음을 다해서 애정을 쏟아붓는 상태를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수지와 마상구의 갈등과 봉합, 생일을 축하하고자 고급 식당을 예약한 친구의 이야기에게서 드러나듯이 ‘진정한 사랑’이란 마음이 아니라 ‘행동’이다. 어떤 사람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라 평소 실천하는 행동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원칙은 사랑하는 사이에서도 당연히 적용된다. 감정에 휩쓸려 이성적인 판단이 둔해지는 연인 사이도 크게는 인간관계 가운데 하나이다. 어느 인간관계보다 중요한 만큼 관대하게 무조건 이해하기보다 엄밀하게는 행동에서 드러나는 마음 씀씀이를 예리하게 관찰하고 엄격하게 살펴봐야 한다.


말로는 감정 표현을 잘 못하고 표정이 퉁명스럽고 무뚝뚝하지만 실제로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을 츤데레라고 한다. 이를 오용해서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사랑의 감정을 행동으로 전혀 표현을 하지 않거나, 표현이 서툰 것을 넘어서 억압, 간섭, 통제하려는 무례한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는 사람을 츤데레라며 좋게 포장하려 하는데, 이는 진짜 츤데레를 모욕하는 언사다. 진짜 츤데레는 ‘사랑해’라고 낯간지러운 표현을 말로 전달하는 데는 다소 서툴지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해서 명확하게 보여준다. 진짜 츤데레는 말로는 드러나지 않는 상대의 감정을 세심하고 예민하게 살피는 따뜻한 마음이 상대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섬세하고 제대로 소통할 줄 아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다.


당연히 ‘사랑한다’라고 말하면서 유대감과 친밀감을 느끼는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학대하는 것,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절대 사랑이 아니다. 우리는 사랑을 애매모호하고 정의할 수 없는 주관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랑도 결국은 지행일치(知行一致)해야 비로소 사랑이라고 당당하게 승인될 수 있다.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꽃에 물을 주는 것을 잊는 사람을 본다면, 우리는 그가 꽃을 ‘사랑한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 관심이다.” 이러한 적극적 관심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

_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황문수 옮김, 문예출판사, 2006.10(4판)> 45쪽 중에서



<사랑이 아니다> 시리즈는 총 3개의 브런치북으로 구성했습니다.


1.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에서는 왜 불행하고 불안정한 사랑을 반복하는지, 애착 유형과 반복 강박, 자존감 낮은 연애와 불안형-회피형 연애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사랑도 학습’이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합니다.

**키워드: #애착유형 #애착관계 #집착형 #회피형 #반복강박 #자존감낮은연애 #불안정한사랑 #의존하는사랑


2. <결혼과 연애는 사랑이 아니다>에서는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 5가지로 정의하고, 평생의 동반자를 얻는 결혼은 언제 어떤 사람과 해야 하는지, 섹스와 사랑의 연관성 나아가 동성애에 대한 생각을 담았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존중과 자아실현, 정서적 독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키워드: #진정한사랑 #자기이해 #Loveyourself #결혼에대한이해 #섹스 #동성애 #폴리아모리 #진솔한사랑 #독립


3. <반비례 관계는 사랑이 아니다>에서는 실제 현실에서 왜 매번 연애를 실패하는지,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왜 이혼하는지, 외도(불륜)에 대한 생각, 마마보이/마마걸 구별법, 나르시시스트의 사랑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랑에 관한 착각과 오해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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