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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Mar 31. 2024

부모님은 (그들의 주장대로) 정말 나를 위해 희생했을까

'나는 부모님이 희생한 결과물'이라는 무서운 세뇌의 후폭풍

“부모님과 관계는 어떠세요?”

“음… 오히려 아빠와 관계가 좋은 것 같아요. 연락을 하거나 그런 관계는 아니지만, 오히려 연결 지점이 없고 저를 그냥 내버려 두시고 아빠는 또 아빠 인생을 잘 살아가시고. 돌이켜보면 그러면서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결국은 다 아빠가 아낌없이 금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지원을 해주셨더라고요. 그야말로 희생이죠. 저도 제가 아빠의 희생으로 이만큼 살고 있다고 잘 알고 있어요.”

“아빠를 향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군요.”




첫 심리상담에서 ‘나는 아버지가 희생한 결과물이다. 아버지의 희생으로 이만큼 살고 있기 때문에 감사하다고 느끼고, 누구에게도 무시받지 말고 당당하게 잘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했다. 무엇보다 ‘희생’이라는 단어를 해맑은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는 데 놀라고 소름 돋았다.


대체 나는 왜 부모님이 나를 위해 희생했다고 서른 중반이 되도록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굳게 믿었을까. 알코올 의존증 아버지가 오랜 세월 집안에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정서적 학대를 자행했는데도, 어떻게 이를 새카맣게 잊고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을까. 두려운 공포의 대상에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거리감이 아닌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다니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우선, 부모님이 나를 위해서 희생했다는 오랜 생각은 부모님을 향한 내 끝없는 죄책감의 근원이었다. 이는 내가 부모와의 감정적 탯줄을 끊지 못하고, 진정한 독립을 하지 못한 채 허구의 독립에 머무른 근본 원인이었다. 30대 이후로 아버지와 관계가 좋다고 착각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1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아버지가 가장으로서 경제적 책임 하나만큼은 제대로 해내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일찍이 자신의 경제 활동을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고 규정지었다. 대가족의 생계가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아버지에게 달렸기에 어머니는 아버지가 짠 프레임에 동조했다. 10대 때 엄마가 폭력 성향이 짙은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 논리도 결국은 아버지가 최소한 경제적 책임을 다했다는 이유였다.


엄마는 늘 ‘아버지가 힘들게 일을 하시고,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이자 낙은 술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힘들게 일하는 만큼 즉,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만큼 자신이 주정하는 모습을 가족들이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다. 엄마는 어쩔 도리가 없고(엄마도 아빠를 바꿀 수는 없고), 그러니 우리가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라는 식이었다.




미성숙한 부모가 잘못 주입한 ‘자녀양육 희생론’, ‘부모 희생론’에 매몰돼 ‘우리 부모님은 나를 위해서 한평생 희생하셨으니까 이제는 내가 보답하고 잘해드려야지’라는 죄책감을 안고 사는 자식이 비단 나 혼자는 아닐 것이다. 부모로부터 경제적, 물리적 독립은 마쳤지만, 정신과 영혼은 여전히 묶여 있는 자식이 얼마나 많을까. 성인 부모-성인 자식이 서로에게 얼마나 유해한 지나친 정서적 의존관계를 형성하고 있을까.


그럼, 나는 정말 아버지가 희생한 결과물일까? 아버지는 정말 나를 위해서 희생했을까? 희생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봤다.


희생: 다른 사람이나 어떤 목적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 재산, 명예, 이익 따위를 바치거나 버림. 또는 그것을 빼앗김.


아버지는 가족을 위한 생계 활동을 희생이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목숨, 재산, 명예, 이익을 빼앗은 적이 없다. 아버지도 자식을 위해서 목숨, 재산, 명예, 이익을 버리는 희생을 감수한 적이 없다. 오히려 다른 가정과 달리 우리 삼 남매가 벗어날 수도 없는 가정환경에서 아버지의 주사를 견디느라 정신적 고통을 겪었으니, 굳이 따지자면 희생은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삼 남매가 했다고 봐야 한다.


아버지는 희생이 아니라 부모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부모이자 어른으로서 자식을 낳은 자신의 선택을 책임졌을 뿐이다. 그렇다고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키우신 것에 감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부모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희생이라고 치부하며 폭력적이고 고압적인 잘못된 방식으로 보상을 받으려고 하면 곤란하다.



심리에세이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책을 구매하시면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알코올 중독 아버지와 가스라이팅 어머니로부터의 해방일지'입니다. 

억압하고 지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부모에게서 정서적으로 독립한 과정을 그린 개인적인 경험담입니다.

부모에게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온전한 사랑을 제대로 주고받는다는 의미와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깨달은 과정을 쓴 책으로, 착취하는 관계에서 나 자신을 보호하는 법도 담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한 책 소개는 각 온라인서점을 확인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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