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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Apr 23. 2024

‘첫눈에 반했다’는 솔직한 고백이 난감한 이유

고백 상대의 ‘부담스럽다’는 표현의 속뜻

물론, 나도 평소에 호감이 있고 좀 더 알고 싶던 사람이 먼저 ‘같이 식사 한번 하실래요? 뭐 좋아하세요? 제가 식당도 예약해 둘게요’라고 하면 단번에 신이 나서 ‘좋아요’라고 답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을 기다릴 것이다. 만일 일이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당장 시간을 내기 어렵다면 ‘저도 정말 같이 식사하고 싶은데, 요새 이런저런 구체적인 사정 때문에 시간을 낼 수가 없다. 괜찮으시면 이러저러한 일들을 정리하고 연락드려도 될지, 아니면 아쉬운 대로 간단하게 차라도 한잔해도 될지’ 물으며 강렬한 서운한 마음이 상대방에게 와닿도록 적극적인 의사 전달을 할 것이다. 뭉뚱그려서 애매모호하게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는다’, ‘요새 피곤하고 몸이 좋지 않다’, ‘마음이 빠듯해서 여력이 없다’, ‘이성에게는 관심이 없고 당분간 연애할 생각이 없다’라는 말로 우회적으로 거절 의사를 표시하고, 다음 약속을 기약하지 않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짝사랑 전문가로서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감정을 드러냈다가 이처럼 우회적인 방식으로 거절을 받기도 하고, 또 때때로 거절을 하기도 했는데, 넌지시 건넨 거절 의사를 눈치채고 내 의사를 [존중]해 부담스럽게 더 가깝게 다가오지 않고 기존의 거리감을 유지하며, 그럼에도 계속 좋은 관계를 이어오도록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이 참 고맙다. 타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성숙한 인간관계를 맺을 줄 아는 이들은 대부분 금세 좋은 사람을 만나서 알콩달콩 사랑을 잘 키워가는 듯했다.


이때 이성 관계로의 진전을 넌지시 거절한 이들은 전부 평소에 꽤 잘 알고 지내며, 이해관계가 맞을 때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도 하고, 성격과 가정환경, 성장배경, 장단점, 주변 사람들 등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일정 정도 친밀감을 형성하고 있는 관계에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선을 긋고 거절을 하는데, 하물며 외모와 직업 정도밖에 모르고 자기 공개가 거의 돼 있지 않은 사람이 ‘나는 당신에게 첫눈에 반했고, 당신이 마음에 들고, 우리는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는 어감을 풍기며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자고 데이트 신청을 하면 경계하고 부담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지극히 당연한 심리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과 감정에 서툰 낭만적 사랑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을 때는 경우에 따라서 (잘생긴 남자가) 이처럼 유혹을 하면 ‘내게도 이런 영화 같은 일이?!’라며 감동하고,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상대방의 마음이 예쁘고 정성이 갸륵해서 미안한 마음에 불편한 감정을 뒤로하고 요청에 응해서 즐거운 척 자기기만을 했을 것도 같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고백을 받으면 ‘대체 왜? 나를 얼마나 안다고? 외모가 자기 스타일인가? 내 능력이 탐나는 건가?’ 싶고, ‘외로운 사람인가’ 싶다. 말로는 나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돌봄과 애정을 받고 싶고, 외로워서 비싼 밥을 사겠다는 핑계로 자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줄 사람을 찾고 있구나 싶어서 짠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사랑에 미숙하고 애정 결핍인 나 자신을 직면하지 못하고 무한정 의존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강렬했던, 사랑과 집착의 경계가 모호한 불안정했던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십 대나 이십 대 때처럼 야멸차게 거절하지는 못하고, 최대한 완곡하게 상대방의 마음을 다독이며 거절할 때가 있는데, 잘 거절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고 오히려 수락보다 더 에너지와 정성을 많이 쏟아야 하는 일이기에 하고 나면 녹초가 될 때도 있다.




연애 관계뿐만 아니라 어느 인간관계라도 담백하지 않고 한쪽에서 부담감을 느끼면 그 관계는 유지되기 쉽지 않다. 서로 알던 사이에서도 관계의 균형추가 무너져 한 사람이 부담을 느낄 때 다시 관계의 균형을 맞추려면 잠시 서로 거리를 두거나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등 두 사람 모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하물며 잘 알지도 못하는 남남인 사이에서 한 사람이 부담감과 압박감을 느낀다면 그 관계는 실패할 확률이 99.99999%라고 생각한다. 연애하고 싶은 호감 가는 상대가 부담감을 느끼는 순간, 이미 그 관계는 게임 끝이라고 할 수 있다.


연애란 남남인 두 사람이 관심 있는 상대의 반응과 마음을 살피며, 서로를 이해하는 친밀감을 쌓아가도록 [원만히 소통]하며 기민하게 [관계의 거리]를 잘 조절하는 것이 관계 형성과 유지의 관건인데, 상대방이 부담감을 느낀다는 의미는 이미 관계의 초반부터 친밀감이라는 거리 조절에 처참히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부담스럽다’는 표현의 속뜻은 상대방이 [현재 상태]에서 편안하게 느끼는 관계의 거리를 섣불리 침범해 호감을 표시하는 자신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고, 두꺼운 방어막을 쳤다는 의미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지금은, 그리고 당신의 태도와 행동이 내 의사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변하지 않고 일방통행을 하는 한 앞으로도) 당신과 함께 있는 시간이 불편하고 피곤하고 전혀 즐겁지 않고 지루하며 힘이 든다’는 의미이다. 더 간단하게 한마디로 ‘나는 당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고, 만나고 싶지 않으니 연락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서로 호감이 있는 상태에서도 안정적인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인데, 이미 부담감을 느껴 높게 벽을 세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여서 호감을 얻고 대화를 이끌어 내 연인 관계를 형성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관계의 영역을 침범하는 사례는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으므로, 이런 불편한 감정은 연애 상대뿐만 아니라 가족(부모님/자식, 형제/자매, 기혼자라면 특히 시부모님과 요새는 장인, 장모님까지), 직장 상사와 동료, 친구, 선후배 등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인간관계를 자기중심적으로 왜곡해서 받아들이는데 능숙한 이들은 부담스럽고 불편하다며 거리를 두려는 제스처를 상대방이 ‘쑥스러움(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라서 그렇다’, ‘사람 사이에 철저하게 선을 긋는 너무 깔끔(?)하고 칼 같은 성격이다’, ‘독특하고 특이한 성격이다’, ‘유별나고 예민하다’, 심지어 ‘자기 세계에 갇혀 사는 외로운 사람이다’, ‘피해의식이 있어서 회피하는 가여운 사람이다’라고 완전히 잘못 해석해 오히려 더 가까워지려는 무리수를 둬 관계가 파국에 이르는 대참사를 벌이기도 한다.


이 모든 말들은 자신이 단점이라고 믿는 수용하기 어려운 부정적인 감정을, 자신의 통제와 소유 범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 들지 않는 불편한 상대방에게 투사해 상대를 탓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피해의식도, 회피하는 성향도, 외로운 감정도, 자신을 가엾게 여기는 연민도, 예민한 성향도,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도 전부 자기 자신의 모습인 경우가 많다. 결국은 타인에 빗대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호감 가는 상대는 자주 볼수록 호감도가 높아지지만, 안타깝게도 한번 비호감이라는 인식이 형성된 사람은 호감으로 바뀌기 어렵고, 자주 접촉할수록 오히려 비호감도가 더 높아진다는 것은 심리학의 실험 결과로도 증명된 객관적인 과학적 사실이다. 호감 가는 상대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하면 상대의 의사를 존중해서 수용하고, 자기만의 매력을 높이는데 집중해야 다음 기회를 기약할 수 있다. 분명한 거절의사를 무시하고 일방향 소통을 고집하는 순간, 그나마 자신을 좋아하는 감정에 감사함을 느끼던 상대방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버리고, 그/그녀의 마음속에서 당신은 순식간에 비호감으로 전락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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