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마일펄 Jun 25. 2024

첫눈에 반한 사랑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영화 <500일의 썸머> 톰과 썸머의 관계에 대해서 ①

이번 매거진 <어바웃 러브>를 처음부터 여기까지 읽고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 연애와 결혼, 이별(이혼)이 무엇인지, 사랑으로 둔갑한 병적인 자기애와 통제/의존 욕구, 존중하지 않는 반쪽짜리 가짜 사랑을 이해했다면 ‘첫눈에 반한 (대부분의) 사랑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짐작할 것이다.


상대방에 대해서 잘 모른 채로 외모나 분위기, 짧은 대화만으로 자신이 만든 환상을 투영해 상대방을 지나치게 멋지고 좋은 사람으로 성급하게 이상화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단점이나 약점은 전혀 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바라거나 좋다고 생각하는 단면만을 부각해서 보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이 아니라 ‘내가’ ‘믿고 싶은 대로’, ‘갖고 싶은 대로’ 믿어버리기 때문이다. 자기의 필요(결핍)에 따라서 한마디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다.


마크 웹 감독의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 톰(조셉 고든 레빗 扮)은 썸머(주이 디샤넬 扮)를 ‘사랑에 빠졌어. 아름다운 미소, 긴 머리칼, 귀여운 무릎, 목에 있는 하트 모양 점, 섹시하게 입술을 핥는 모습까지, 귀여운 웃음소리, 침대에 잠든 모습도 사랑스러워’라고 묘사했다가 ‘그녀를 증오해. 울퉁불퉁한 치아, 촌스러운 머리, 튀어나온 무릎, 징그러운 바퀴벌레 같은 점, 더럽게 입술을 핥아대고 천박한 웃음도 싫어’라고 태도를 완전히 바꾼다. 썸머라는 동일한 인물이 톰의 감정 상태에 따라서 세상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었다가 세상 촌스럽고 천박한 사람이 돼 버린다.



‘빠가 까가 되면 훨씬 무섭다’는 말이 있듯이 지나치게 이상화한 상대방을 향한 환상이 깨지는 순간, 견딜 수 없는 실망감에 휩싸인다. 이때 이상과 현실의 거대한 간극을 좁히지 못하면, 이번에는 반대로 상대방을 평가절하하는 방식으로 깎아내린다. 자신의 심적 갈등을 감당할 수 없어 현재의 상황과 문제의 원인을 전부 상대방의 책임이라며 탓하기에 이른다.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여전히 환상 속에 갇혀서 상대방을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대로 바꾸고 통제하려고 한다. 다툼은 잦아지고 갈등의 골은 깊어지다 결국 한 사람이 먼저 결단을 내리면, 그때가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이별의 순간이다.




<500일의 썸머>에서 톰은 썸머가 처음 사귄 애인은 아니지만 첫사랑에 실패하는 전형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500일의 썸머>는 현실 연애와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의 대명사로 손꼽히며 이미 다양한 해석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지금까지 말한 논리를 예시를 들어 설명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영화는 없다고 생각해 이 글에서도 짚어보려고 한다. 톰과 썸머가 맺은 관계를 이해하며 이번 매거진 <어바웃 러브>의 전체적인 주제인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 총체적으로 정리하고, ‘사랑이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의미도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톰 한센은 축하카드를 제작하는 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있다. 진정한 사랑을 찾기 전까지 행복할 수 없다고 믿는 톰은 인생을 바꿔줄 운명의 사랑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장의 비서로 첫 출근한 썸머를 부는 순간, 그는 자신의 반쪽이 나타났다고 직감한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톰은 썸머에게 한눈에 반한 것이다.


사랑은 환상이라고 생각하는 썸머 핀은 사랑을 믿지 않고, 열에 아홉은 자신의 부모님처럼 이혼한다고 말한다. 연애는 해봤지만 사랑은 못 해봤다며, 누군가에게 구속되고 싶지 않고, 상처를 주고받고 싶지도 않다며 연애에 회피적인 태도를 보인다. 톰은 진지한 만남은 싫고 가벼운 만남이 좋다는 썸머의 요구를 수용해 실질적인 연인관계가 된다.


썸머는 정말 톰의 마음을 이용해 톰을 갖고 논 ‘나쁜 Ⅹ(bitch)’ 이었을까. 썸머와 헤어진 뒤 친구가 주선한 소개팅에서 톰은 ‘그녀를 정말 좋아했고 사랑했는데, 내 얼굴에 똥칠하고 떠나갔다. 그런데도 괴로운 이유는 그녀만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자 소개팅 상대는 톰에게 ‘그녀가 바람피운 적 있는지, 당신을 이용한 적 있는지, 대놓고 애인은 필요 없다고 했는지’ 되묻는다.


왜 썸머는 톰과의 관계를 연인으로 규정하지 않고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였을까. 사랑을 믿지 않고 애인도 싫다더니 왜 어느 날 갑자기 결혼을 해 유부녀가 되었을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톰의 말에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너와 만날 때 몰랐던 걸 깨달았다’는 썸머는 대체 무엇을 깨달았을까. 톰은 모르지만 소개팅 상대는 진작 깨달았고, 이제는 썸머도 알게 된 것이 무엇일까.




이 영화가 톰의 시선에서 전개된다고 감안하더라도 썸머에 대한 피상적인 정보는 있지만 구체적인 정보는 거의 없다. 썸머는 미시간에서 자랐고, 부모님이 이혼했고, 외모가 매력적이고, 스미스 노래를 좋아하고, 정리하기를 좋아해서 학창 시절 별명은 미친 결벽녀였고, 바나나 피쉬를 좋아하고, 사는 게 지루해서 새로운 시도로 이 회사에 취직했고, 화가를 좋아하고, 링고 스타를 좋아하고, 발목에 나비 문신을 하고 싶어 하고, 지금까지 세 명의 애인을 사귀었다.


하지만 썸머가 ‘왜’ 사는 게 지루했는지, ‘어떤’ 화가를 좋아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왜’ 하필 발목에 나비 문신을 하고 싶은지는 알 수 없다. 그나마 이만큼도 톰이 묻기 전, 대체로 썸머가 먼저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놔 얻은 정보이다. 톰은 오히려 인기가 없어서 링고 스타를 좋아하는 썸머의 취향을 무시하고, 나비 문신을 하고 싶다는 말에 단번에 안 된다고 반대(통제)한다. 심지어 썸머가 지금껏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몽상가 같은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도 썸머가 하는 말의 내용이 아니라 자기 말고 또 누구에게 이 말을 했는지에만 온통 관심이 가 있다.


반면, 썸머가 알고 있는 톰의 정보는 스미스와 바나나 피쉬를 좋아하고, 카드 문구를 쓰는 재주가 있지만 현재 회사생활에 불만족하며, 원래는 건축가가 꿈이고, 친구들에게 짝사랑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이고, 1911년에 지은 현대미술관 건물과 1904년에 지은 LA의 첫 번째 고층 빌딩 컨티넨탈이 보이는 언덕 위 벤치에서 도시를 내려다보기를 좋아하고, 만약 톰이 이 도시를 디자인한다면 다양한 시도를 해 멋진 건물이 좀 더 눈에 띄게 만들고 싶어 하고, 썸머 자신을 좋아하지만 규정되지 않은 관계에 불안해하고, (다른 남자들처럼) 자신을 속박하고 통제하려고 하며,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을 존중하지 않고, 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을 좋아한다 등으로 톰의 외적인 면모보다 적성과 꿈, 능력과 생각, 감정에 관심이 크다.



처음에도 톰은 예쁜 외모 때문에 썸머에게 관심을 갖지만, 연애와 사랑에 문외한인 동료 맥켄지에게서 썸머가 콧대 높은 싸가지라는 말을 전해 듣고는 그와 말 한마디 나눠본 적도 없으면서 ‘왜 예쁜 여자들은 사람들을 무시하지? 나도 신경 끌래. 멋대로 살라고 해’라며 제멋대로 생각하고, 혼자 썸머의 첫인상이 나쁘다고 평가한다. 반면, 썸머는 톰의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스미스 노래에 관심을 갖고 비슷한 취향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호감을 드러낸다.



다음 글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을 생각한다면 꼭 물어야 할 ‘질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