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이별)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
이혼이란 겉으로는 성격 차이, 금전적인 문제, 외도 등이 원인인 것 같지만, 결혼을 하기로 결정하고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남들은 결코 알지 못하는 내밀함을 속속들이 공유하며 살을 부대끼고 살아간 사이에서 (불륜은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하지만) 고작 돈 문제나 성격 차이로 이혼을 결심하지는 않는다.
비슷해 보여도 세밀히 들여다보면 사람은 전부 다른 성격과 개성을 띠고 있다. 유사한 성격의 범주에 속할지라도 매 순간 서로 간에 존중과 배려를 하지 않는다면 사이는 결국 틀어질 수밖에 없다. 성격 차이란 말하기 곤란한 세세한 이혼 속사정을 애매하게 둘러대는 적당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남편이 사업이 망해서 빚더미에 올라앉고, 무리한 주식/코인 투자로 금전적 손해를 보고, 부모님이나 친척, 지인에게 돌려받지 못할 거금을 몇 번 빌려줬다고 이혼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언질이라도 주면 좋을 텐데…… 인생은 예고 없는 불행이 불쑥 고개를 내밀고는 한다. 하지만 빚더미에 올라앉아도 성실하고 근면하고 정직한 배우자를 ‘믿고’ 같이 노력해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남들 눈에는 비록 내가 불행하고 구차해 보일 지라도 망한 배우자를 떠나진 않는다(물론, 물질적 풍요가 전부인 예외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배우자가 능력도 없이 인생 한 방, 일확천금을 노리며 경제적으로 곤란해지는 같은 상황을 반복하고 멈출 생각이 없을 때, 가족과 가정에 충실하기보다 타인에게 과시하고 잘 보이고 싶은 인정 욕구 때문에 돈을 퍼주는 호구짓을 반복하고 개선될 여지가 없다고 판단될 때, 한마디로 상대와의 관계에서 더는 희망이 없다고 판단할 때 배우자(연인)를 떠나게 된다.
불륜의 경우에도 상대방이 다른 사람과 같이 자고 밥 먹고 데이트하며 시시덕거렸다는 외도 사실 자체보다 상대방에게 나 외의 다른 애인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상대방에게 계속 관심을 기울이고 잘해주고 신경 썼다는 회의감과 허망감, ‘나는 대체 그동안 뭘 한 거지?’ 싶은 자책감, ‘그동안 내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을까?’, ‘내가 그렇게 만만했던 걸까?’ 싶은 바보가 된 것 같은 분노감 등 자기 파괴적인 감정과 더는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믿을 수 없다는 ‘불신감’ 때문에 헤어지기로 한다.
결국, 이별이란 상대와의 관계에서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상황이 개선의 여지없이 반복될 것이란 판단이 들어서 더는 희망이 없고, 상대방을 신뢰할 수 없을 때, 상대방을 향한 자신의 사랑하는 능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인내심과 참을성, 내외적인 에너지가 고갈되었을 때 선택하게 된다. 이별의 계기는 상대가 제공했을지라도 이별이란 결국,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과정이다. ‘당신을 더는 믿지 못하겠어’라는 불신감과 절망감의 끝에 선택하는 이별은 비단 연인관계뿐만 아니라 부모, 형제/자매, 친구, 동업관계 등 모든 인간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다.
결국 이혼으로 종지부를 지은 사이라도 처음에는 분명히 서로 사랑한다고 믿은 관계였을 텐데, 두 사람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함께라면 더 행복하리라고 믿고 선택한 결혼일 텐데, 어쩌다가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다가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돼 버렸을까.
이혼이란 견딜 수 없는 실내 흡연 같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옛날에는 아무 데서나 흡연을 할 수 있었고, 심지어 집안에는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가 사용하는 재떨이가 구비돼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공공장소에서 흡연 구역이 별도로 지정돼 있고, 가정 내에서의 자유로운 흡연이 옛날처럼 당연하지는 않다.
이때, 남편과 아내 둘 다 실내 흡연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가정에서 이 문제로는 별다른 갈등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결혼을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는 혼자 살 때는 자유롭게 실내 흡연을 했더라도 같이 사는 비흡연자 룸메이트가 생겼다면 밖에 나가서 흡연을 하겠지 예상하지 않을까? 내 기준에서는 이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자신은 원래도 실내에서 흡연을 했으며, 이것은 자신의 삶의 기쁨이므로 결혼을 한 뒤에도 실내에서 자유롭게 담배를 피우는 자신의 기쁨을 빼앗지 말고 존중해 달라고 요구한다면? (간접흡연에서 벗어나 나 자신의 건강을 보호할 권리에 대한 존중은?) 실내 흡연을 수용하는 것이 자신을 향한 사랑이라고 주장한다면? (매일 같이 담배 연기를 들이마셔서 언젠가 같이 폐병 걸려서 같이 죽는 게 사랑이냐? 철저히 너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심 아니고?)
이때 비흡연자 입장에서도 몇 가지 선택지는 있다.
첫째, 자신은 계속 금연을 유지하되 상대방이 내뿜는 담배 연기를 감내한다.
→ 갈등의 회피. 언쟁은 피할 수 있지만 결혼의 대가로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
둘째, 비흡연자인 자신을 배려해 밖에서 담배를 피울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관철시킨다.
→ 실내 흡연을 고집하는 상대방의 반발과 저항, 극심한 갈등이 야기될 수 있다.
셋째, 상대방이 금연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하고, 방안(금연 패치, 금연 프로그램 등)을 강구해 실천하도록 지속적으로 독려한다.
→ 상대방이 금연 의지가 있어야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며, 실내 흡연을 고집할 정도의 흡연에 중독된 애연가에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적은 방안이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사람은 세상에 드물게 나타난다. 이상적인 결혼과 사랑의 모습이지만 누구나 가능한 방식은 아니다.
넷째, 이참에 나도 흡연자가 돼 실내에서 같이 맞담배를 피운다.
→ 갈등은 없겠지만 최악의 선택지이다. 상대방을 만나서 더 안 좋은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다섯째, 따로 살기로 한다.
→ 별거 또는 이혼하는 방안이다.
사실 비흡연자 입장에서는 애초에 같은 비흡연자와 결혼을 했으면 최소한 흡연 문제 갈등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흡연자와 결혼을 했더라도 세상의 변화한 가치관과 상식에 부합하게 집 밖에서 담배를 피우면 (비흡연자 입장에서는)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이다.
혼자 살면 모를까. 그런데 같이 살기로 결정하고선 혼자 살 때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을 고수하겠다며 요지부동인 사람들이 있다. 변화할 생각도, 타협할 마음도 없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도 없이 오로지 자기 뜻대로만 하겠다는 사람들이다. 자기 뜻이라는 것이 이치에 부합하면 모를까. 비흡연자와 살기로 하고선 실내 흡연을 고집하는 것처럼 상식적이지 않은 주장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랑과 가족애를 들먹거리고,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느니, 너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소리까지 들으면 어영부영 헷갈리다가 속수무책으로 꾐에 넘어가고 만다. 처음에는 실내 흡연에 반발하고 실외 흡연을 요구하며 갈등을 빚다가, 요지부동인 상대방이 실내에서 내뿜는 담배 연기를 감내하다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집안에서 같이 맞담배를 태우는 최악의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문득,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나는 원래 담배 연기만 맡아도 컥컥거리던 사람이었잖아? 건강을 위해서 금연을 고수하던 사람이었잖아? 언제 이렇게 나쁘게 변해버린 거지?’ 자각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상대방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같이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변해보자’고 절박하게 제안하고 매달린다. 하지만 사랑이라고 믿었던 상대방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요지부동이었고, 결혼한 순간부터 애초에 변하거나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원래 변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것이 그의 능력이자 한계였다.
이처럼 사랑하는 감정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상대방의 실체가 보이고, 내가 속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맞닥뜨리고 수용하기로 했을 때, 비로소 이혼(이별)을 결심하게 된다. 드디어 나 자신을 해치던 담배 연기의 속박에서 벗어나 쾌적한 환경에서 자유롭게, 다시 상식의 원리가 작동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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