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emories of Mt. Whitney
지난해 9월 캘리포니아의 보고(寶庫)요 등줄기인 씨에라 네바다 산맥을 동서로 넘는 High Sierra Trail(114km) 종주를 다녀왔다. 언젠가 한 번쯤은 꼭 가고 싶었지만 언제나 나의 리스트에서 뒤로 밀려 있었던 트레일이었는데 본래 내가 계획한 산행은 아니었으나 따라나선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물론 이번 산행의 퍼밋을 신청한 분이 백팩킹 경험이 많지 않으셔서 나름 경험 많은 나에게 같이 가주면 좋겠다는 부탁이 오기도 했지만 나로서도 안 가본 트레일인 데다가 그 트레일이 마운틴 위트니를 넘어서 끝마치기 때문이었다.
내게는 아무도 내게 하라고 내준 적은 없으나 아직 위트니에서 끝내지 않은 숙제가 남아 있어서 기왕이면 적어도 한 번은 위트니를 더 가야 했다.
이번 HST 백팩킹 플랜을 살펴보니 함께 한 다른 분들에게 큰 폐를 끼치지 않고도 그동안 미뤄 왔던 나의 숙제를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내가 하고 싶다고 마칠 수 있는 숙제는 아니고 하늘이 도와야 하는 것이었지만...
못 마친 숙제의 발단은 7년 전 처음 John Muir Trail(354km)을 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초 2월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홀로 산행이 겨우 초보 수준을 벗어날 무렵 오래 알고 지내던 산행 선배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 동안 연락 안 하고 지내던 때여서 내가 동네 산 위주였지만 등산을 시작했는지도 알지 못하셨을 텐데 그해 7월에 킹스 캐년 국립공원으로 4박 5일로 백팩킹을 가려고 하는데 날보고 같이 가겠냐고 물으신다. 이제 겨우 동네 하이킹 초보를 면한 정도의 나에게 무거운 백팩을 메고 며칠씩 높은 산을 오른다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았지만 노라고 거절하지 못한 것은 이제 조금씩 산에서 느끼기 시작한 뭔가 모를 매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백팩킹 장비가 하나도 없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렇게 높은 산행과 배낭의 무게를 감당할 체력이 될 것인가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그래서 그 후로 주말마다 다니던 산행에서 일부러 작은 백팩에다가도 이것저것 무게가 나가는 것들을 넣고 다니면서 조금씩 준비를 하였다.
Kings Canyon National Park 내의 포장된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된 Rae Lake Loop Trail (67km) 백팩킹 경험은 나에게 데이 하이킹으로는 도무지 맛볼 수 없는 하이 씨에라의 깊은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왔다. 산행 내내 “조으다!, 조으다!” 를 연발하며 나름 잘 따라오는 나를 보시던 선배님께서 마음 속에 고이 간직하고 계시던 보물 보따리를 푸시더니 자기가 다음 달에 John Muir Trail이라는 것의 절반을 가기로 퍼밋을 두장 받아 놓고 누구를 데리고 갈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날 보고 같이 가보겠느냐고 오퍼를 넣으신다.
JMT가 뭔지도 모르는 내게 본인이 2년 전에 먼저 하신 나머지 절반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구구절절 씨에라 산맥에 대한, 미국의 3대 트레일(PCT, CDT, AT)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나의 대답을 기다리신다. 이제 겨우 백팩킹 입문을 한 내게는 너무도 요원한 이야기 같았지만 그래도 고수가 가는 길에 동행이 되어야 더 큰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예스를 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첫 JMT는 본래 절반(요세미티에서 시작해서 뮤어 트레일 렌치까지)의 플랜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계획된 날짜가 다가올수록 "만일”이라는 조건 부사가 내 가슴속에 싹이 트더니 자꾸 머릿속에서 되뇌어지기 시작하였다. 선배님은 이미 나머지 절반을 하셨기에 절반만 하고 하산을 하시지만 “만일” 나에게 JMT의 전 구간 퍼밋이 허가가 된다면 나 혼자서라도 나머지 절반을 다 마치는 것이 기왕 나선 길에 더 좋을 것 같다는 기대가 그것이었다. 결국 내 "만일"의 상상은 실전으로 옮겨져서 레인저 스테이션에서 JMT 전구간 퍼밋을 받았고 그 해에 나는 총 221마일의 JMT를 완주할 수 있었다.
첫 절반을 하는 동안 나무에 매달아 놓은 음식을 곰에게 털리기도 하고, 도무지 더는 갈 수 없을 것 같이 힘들고 탈진되는 날도 있었지만 어느덧 덧짐살이가 익숙해질 무렵 선배님을 떠나보내고 드디어 나머지 JMT 절반을 위한 혼자만의 첫 백팩킹을 나서게 되었다. 무게를 줄인다고 텐트 없이 비박을 할 테니 선배님께 텐트는 가지고 내려 가시라하고 떠난 첫날 엄청나게 쏟아지는 우박을 동반한 비 폭풍을 만나 씨에라의 위엄 앞에 쫄기도 하고 눈앞에 펼쳐진 어마어마한 경치 앞에 탄성을 지르기도 하면서 솔로 백팩킹의 맛을 들여가고 있었다.
비숍 패스 정션을 지나 악명 높은 Mather Pass를 향한 오르막이 시작될 무렵 샌프란시스코 베이 페닌슐러에서 왔다는 독일계 미국 친구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가 멘 배낭이 하도 가벼워 보여 너는 어딜 가는데 그렇게 가볍냐고 했더니 위트니를 간단다. 자기는 이번이 네 번째 JMT인데 몇 번 오다 보니 그동안 와서 안 쓰던 필요 없는 장비나 물건 빼고 또 장비들도 작고 가벼운 것들로 장만하다 보니 이번에 자기는 18파운드로 시작했다면서 내게 자기의 배낭을 들어보라고 한다. 나는 적어도 45파운드를 메고 시작했을 터인데 18파운드라니...
그로부터 장거리 백팩킹 초보가 훈수 좀 듣고는 동료를 기다리는 그와 헤어져 앞서 올라갔었다. 위트니로 향하는 나머지 산행 내내 하루에 한두 번 정도는 마주치는 기회가 있어서 서로 안부도 묻고 했었는데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이른 새벽에 마지막 숙영지였던 Guitar Lake을 출발하여 위트니 정상을 향하여 한참을 올라가던 때였다. 트레일 정션을 지나 마지막 2마일 구간을 힘들게 오르던 그때 정상에서 내려오던 그와 친구를 또 다시 만난 것이다. 날 보더니 “축하한다, 해냈구나”며 반갑게 인사하던 그는 엊저녁에 위트니에 올라 저녁 일몰과 아침 일출을 모두 보고 내려오는 중이라 했다. 너무 좋았다는 말과 함께...
그렇게 나의 감격적인 JMT 백팩킹이 마쳐졌지만 그 후 그의 말이 나의 귀에서 떠나지 않았고 나도 언젠가 다시 위트니에 올 기회가 생기면 그처럼 일몰 전에 위트니에 올라 주변의 모든 산들보다 제일 높은 14,505피트(4421미터)의 정상에서 넘어가는 해를 보고 다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아침에 떠오르는 해의 일출을 보리라 마음먹었었다.
그리고는 일 년 뒤, 나의 두 번째 Solo JMT 플랜이 갑작스럽게 만들어졌고 그 플랜에는 역시나 위트니에서의 일몰과 일출이 계획되었었다. 그러나 마음먹었던 일들이 계획한 대로 다 된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음은 익히 알고 있는터, 위트니 또한 그리 호락호락한 산이 아니었던 것이다!
9박 10일을 목표로 삼고 떠난 두 번째 JMT에서 나는 나의 한계와 싸우고 있었다. 급작스런 출발이었기에 Resupply(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트레일 중간중간에 필요한 음식이나 물건을 보내 놓는 것)를 보낼 시간도 없었기에 처음부터 열흘치 음식을 짊어지고 출발해야 했고 넉넉지 않은 시간을 억지로 만들었기에 하루에 평균 40킬로미터 정도를 주파해야 하는 무리한 일정이었다.
그때만 해도 힘이 좀 있을 때여서 였는지 20 킬로그램이 넘는 배낭을 메고도 할만했고 목표로 한 거리보다 조금씩 더 가서 하루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지도를 펴고 지난해에 갔었던 거리를 복기해 보면서 내게는 또 "만일"이라는 단어가 다시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했다.
하루에 몇 마일씩 더 갈 수 있으면 요세미티에서 출발해서 위트니 정상에 이르는 210 마일의 JMT공식 구간을 8일에 마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한 나의 "만일"은 어느새 지도에서 새로운 구간 계획으로 정리가 끝나버렸다.
결국 8일째 되는 날 새벽 5시 20분에 출발해 13,118피트(3998미터) 높이의 Forester Pass를 넘고 약 28 마일을 걸어 위트니 정상(14505 피트:4421미터)에 도착하여 시계를 보니 자정 1분 전인 11:59분을 가리키고 있었다.이번에도 위트니 정상에서의 일몰은 물건너 갔지만 부상에도 불구하고 8일이라는 목표를 이룬 것에 만족해야 하였다. 물론 다음날 아침 너무도 황홀한 일출을 맞았고 그 감동은 그 어디에서 맞았던 일출과 비교할 수 없었다. 일출의 감동이 커서였을까? 아니면 놓친 고기가 더 크게 느껴져서였을까? 그 이후로도 두고두고 위트니에서의 일몰에 대한 미련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았다.
뜻을 품고 있으면 언젠가 그것을 이룰 수 있다던가? 두 번째 JMT를 마치고 그 이듬해에 다시 위트니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같이 활동하는 산악회 멤버 중에 또 다른 고수 한분이 Horseshoe Meadow에서 출발해 Onion Valley로 나오는 백팩킹을 가는데 중간에 위트니를 들러서 갈 거라면서 퍼밋이 몇 장 남았으니 같이 가겠느냐고 물어 오신 것이다. 아직 위트니에서 완성하지 못한 숙제가 남아 있는 나에게 위트니를 거쳐가는 이 코스는 당연히 가야 할 것이라 생각해서 덥석 물었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씨에라의 산과 호수들은 언제나 찾는 이 들에게 위안을 주기에 충분할 만큼 비경을 선물한다. 그래서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항상 기대와 설렘을 수반하며 한 번도 내가 찾은 자연은 나를 실망시켜준 적 없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하지만 그 여행에서도 내 목적의 절반쯤은 위트니에서의 일몰에 맞추어져 있었다. 드디어 다음날 새벽에 정상에 오르기로 하고 기타 레익에서 캠핑하기로 한 다른 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 서둘러 오후 4시쯤 기타 레익을 떠났다. 그 날이 7월 4일 독립 기념일이었고 해가 긴 때이기에 서둘러 올라가면 정상에서의 일몰은 충분히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캘리포니아의 여름은 비 한 방울 구경하기가 힘들지만 씨에라 산중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워낙 40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구름 한 점 없이 맑다가도 어느새 먹구름이 몰려와 마른 대지 위에 소나기를 퍼붓기도 하고 심심찮게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 우박이 쏟아지기도 한다.
그 날이 그랬다.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하던 구름들이 하늘을 덮으며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마침 위트니에서 내려오는 레인저를 만났다. "내가 지금 위트니를 오르려고 하는데 오늘 날씨를 봐서 네 생각에는 내가 올라가도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일기 예보에서 스톰이 올지도 모른다고 하니 자기가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결정은 너한테 달려있으니 네가 원하면 올라가도 된다고 한다. 썩 기상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으나 오늘 아니면 위트니의 일몰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또 언제 있을지 모를 것이었기에 올라가기로 마음을 굳히고 발걸음을 옮겼다. 먹구름이 금방 몰려왔지만 저것이 또 금방 물러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두 시간여를 올랐다. 하지만 우려는 현실이 되었고 몇 방울씩 떨어지던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는 것이 아닌가. 우비를 꺼내 뒤집어썼지만 이내 몸이 젖어오기 시작하였다. 위트니 산 동쪽의 포털에서 올라오는 길과 서쪽 기타 레익에서 올라오는 길이 만나는 Whitney Junction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빗줄기는 눈발로 바뀌고 있었다.
정상까지는 약 2마일에 1,000피트 정도를 더 올라야 하는데 여기서 더 갈 것이냐 말 것이냐의 기로에 선 것이다. 올랐던 길을 도로 내려가려고 해도 3마일을 가야 하는데 정상에서 일몰을 볼 수 없다손 치더라도 여기 까기 와서 후퇴는 내키지 않는 선택이었다. 아직은 컨디션이 그리 나쁘지 않고 배낭 속에는 침낭도 있고 버너도 있으니 정상까지만 가면 110년 전에 지어졌다는 Summit Shelter(The Smithsonian Institution Shelter)에서 잘 수 있기 때문에 정상 등정을 강행키로 하였다.
한 동안 큰 무리 없이 오를 수 있었으나 간간히 날리던 눈발은 굵어졌고 기온도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속에다 다운 재킷을 꺼내 입고 그 위에 레인 재킷을 입고 배낭을 메고 또 그 위에다 판초우를 덮어 씌운 상태였지만 판초우 위로 내리는 눈이 녹아 흐르며 바지와 등산화 속으로 젖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직도 정상까지는 1마일은 더 남은 것 같은데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내 몸에서 나는 열기 때문에 그리 추위가 심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점점 정상을 향해 오를수록 속도도 나지 않았고 시계는 흐려지기 시작했으며 눈으로 덮인 길도 희미해져 가다 보니 빗물, 아니 눈물에 젖은 발에서부터 다리를 거쳐 한기가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덜 추위를 느낄 수 있기에 서둘러 희미해진 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이 굽이를 돌아서면 정상에 있는 쉘터가 보일까 하고 올라보면 아니고 하기를 몇 번... 몸이 더 이상 오래 버티기는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올 즈음에 조금은 잦아든 눈발 사이로 저 멀리 오늘 밤 나를 살려줄 쉘터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 모를 일이니 그 안에 누가 있기를 바라며 도착한 쉘터에는 찬기운만 감돌뿐 나를 맞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둘러 쉘터 안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 판초를 벗고 배낭을 내려놓고는 젖은 등산화와 바지를 벗었다. 한여름에 온 등산이기에 충분한 여벌 옷이 없어서 겨우 배낭에서 마른 반바지를 꺼내 입었지만 뼛속 깊이에서부터 떨려오는 한기를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이미 시작한 내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온몸 떨림 현상은 침낭을 펴고 그 안에 들어앉아 있어도 멈출 줄 몰랐다. 따듯한 물과 음식을 먹으면 좀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에 서둘러 버너를 꺼내 떨리는 손으로 불을 켜고 물을 끓여 마시고 라면과 누룽지를 끓이는 버너 옆에서 온기를 쬐이며 언 손과 발을 녹이고 따듯한 음식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한은 쉬 수그러들지 않았다. 사람이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들기 시작하니 난생처음 이가 서로 부딪칠 정도로 떨리던 내 입에서는 “하나님 살려주세요”란 기도가 새어 나온다. 온몸만 떨리고 있었던 게 아니라 내 마음마저도 떨고 있었던가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두 번 올라왔던 곳이기에 위트니산을 너무 얕잡아 본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남은 물을 끓여서 Nalgene 물병에 담아 그것을 난로 삼아 손과 발을 녹이고 몸을 따듯하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침낭 속에 물병을 끌어안고 들어가 차갑게 식은 발과 손을 오가며 녹이기 시작하자 조금씩 오한이 풀리기 시작하였다. 파킨슨 병에 걸린 사람처럼 주체할 수 없이 팔을 흔들며 떨려대던 몸이 녹아 오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살짝 잠이 들었다. 한 30분 정도 잤을까? 깨어보니 내 몸의 한기는 줄어들어 거의 정상으로 회복되어 있었다. “Thank God!” 하마터면 저 아래 도시와 마을들에서는 폭죽을 터트리며 축하하고 있을 독립기념일에 미 본토에서 제일 높다는 위트니 산 정상에서 한 동양인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다음날 로컬 신문에 날뻔했는데 그분께서 그런 비극을 모면케 해 주신 것이다. 몸을 추스르고 밖을 내다보니 날은 개었지만 어둠이 깔리고 아주 옅은 노을만이 서쪽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 쓰라렸던 위트니에서의 아픈 추억 때문이었을까? 정상에서의 일몰이고 뭐고 위트니는 한 동안 내 관심에서 지워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나 보다. 이 글의 서두에 이야기 한대로 올봄에 프레스노 근처에 사시는 분이 High Sirra Trail을 하고 싶으셔서 퍼밋을 다섯 장 받아 놓았는데 본인은 백팩킹 경험이 전무하니 날보고 같이 가주었으면 좋겠다고 연락이 오셨다. 스멀스멀 위트니에서 못다 한 숙제가 꿈틀대기 시작했고 결국 함께 가기로 마음먹고 4년 만인 지난 9월 노동절(Labor Day) 연휴에 맞추어 다녀오게 된 것이다. HST는 Sequoia Nation Park에서 출발하여 마운틴 위트니를 거쳐 위트니 포털에서 마쳐지는 약 72마일짜리 트레일이다. 역시나 5박 6일 일정의 전체 스케줄은 기타 레익에서 마지막 캠핑을 한 후 마지막 날 새벽에 정상 등정을 마치고 하산하는 것이었지만 나는 미리부터 선언을 한 터였기에 마지막 날에는 일행에서 이탈하여 위트니에서의 일몰을 보러 올라갈 것이었다.
씨애라 산맥을 서쪽에서 출발해 동쪽으로 넘게 되는 HST는 북쪽에서 출발해 남쪽으로 내려오는 JMT와는 조금 다른 아름다운 비경들을 걷는 내내 하나씩 하나씩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Hamilton Lake으로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Great Western Divide의 산과 계곡들과 바위와 호수와 폭포들은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위용을 뽐내며 우리를 맞았다. 나의 페친인 전설적인 하이커 브라이언 로빈슨이 작년 9월에 그곳을 갔다 왔다며 올린 사진을 보고 홀딱 반해 나도 여기는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던 Precipice Lake 또한 그 명성에 걸맞은 자태로 나의 발길을 한 동안 멈추게 사로잡았으며 Kern River를 따라 올라가는 길에 있는 Kern Hot Spring에서의 온천욕과 캠핑은 오랜 장거리 산행에서 지친 하이커의 피로를 씻겨주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가져다 주었음은 물론이거니와 곳곳마다 새로운 얼굴로 맞아주는 인심 좋은 씨에라의 넉넉함 때문에 행복하였음은 더할 나위 없었다.
드디어 HST와 JMT가 만나는 Wallce Creek에서 캠핑을 하고 모두가 초행인 일행들은 드디어 자신들의 일생에 마운틴 위트니를 품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마지막 캠핑지인 기타 레익을 향해 힘차게 출발하였다. Crabtree Meadow로 향하는 중간쯤에 만난 젊은 백인 일행 중 예쁜 아가씨가 친절하게도 자기 아버지가 실시간으로 보내주는 일기예보 Text Message에 의하면 오늘 오후 4시쯤에 기타 레익 인근에 스톰이 온다고 알려준다. 물론 아직은 날씨가 좋았지만 왠지 4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싹트기 시작하였다. 앞서간 그녀 일행을 다시 만난 것은 크랩트리 메도우로 갈라지는 길 앞에서였다. 이미 하늘은 뭉게구름으로 조금씩 덮여오고 있었고 그녀 일행은 번개를 피할 곳이 없는 기타 레익으로 지금 올라가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으니 이곳에서 스톰이 지나고 난 다음에 기타 레익으로 올라가 캠핑을 할 것이라 한다. 나의 다른 일행들도 그녀의 말에 동의해 남기로 했고 역시나 나는 나만의 숙제를 마치기 위해 홀로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Timberline Lake에 이르러 적당하게 하늘에 떠 있는 아름다운 뭉게구름들과 푸르른 메도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난 후 기타 레익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우려하던 빗방울이 하나둘 모자를 두드리고 있었다. 늦은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식사를 해결하고 충분한 양의 물을 정수하여 보충한 다음 정상까지 마지막 5마일, 3천 피트가 넘는 높이를 오르기 위해 굵어진 빗줄기를 뚫고 출발하였다. 제발 이번만은 도중에 제발 날이 개어 주기만을 고대하며 오르는 내게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위트니 정션에 올라서 대부분의 하이커들이 그러는 것처럼 어차피 다시 내려올 길이니 정상에서 꼭 필요하지 않은 무거운 곰 통(Bear Canister)을 내려놓고 가려고 배낭을 잠시 내려놓은 사이 세찬 바람과 함께 억수 같은 우박이 쏟아지는 게 아닌가! 4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기어이 위트니는 나에게 일몰의 감동을 주지 않으려는 것인가! 더구나 지금은 9월이고 해도 많이 짧아졌으며 4년 전 7월보다 정상의 기온이 더 추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지만 지난번 보다는 옷이나 장비가 더 잘 준비되어 있고 지금 이곳은 먹구름으로 덮여있지만 건너편으로 바라다보이는 서쪽 하늘은 열려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으며 고민은 잠시, 결정은 신속히 하여 어느덧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다행인 것은 한 30분가량 모자를 쓴 머리 위로 쏟아지는 우박이 상당히 아프게 느껴질 만큼 강렬했던 비 폭풍이 나를 위협했었지만 조금씩 빗방울은 가늘어지고 구름도 옅어지며 하늘이 걷혀가기 시작하였다. 우려가 변하여 어쩌면 이번에는 그렇게 벼르고 별렀던 감동적인 일몰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를 한껏 높여 주었다. 그랬다. 네 번째 찾은 위트니는 내게 그동안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크게, 어쩌면 5년 전 위트니에서 처음 맞았던 첫 일출의 감동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격동적인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름의 변화를 주목하며 오르다 보니 비만 개인 것이 아니라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취고 적당한 바람까지 불어 어느새 젖었던 옷까지도 싹 다 말려주어서 등반의 최적 조건을 만들어 준 것은 서막에 불과하였다. 오르는 길 간간히 오른쪽으로 나타나는 깎아지른 바위와 바위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허공에 떠있는 옅은 구름은 나의 등허리까지 낮게 내려와 비춰주는 햇빛을 받아 그 하얀 도화지 같은 옅은 구름 위에 나의 그림자를 만들어 주었고 내 그림자 주위로는 흔히 공중 재림을 상상하여 화가들이 그린 무지갯빛 구름에 둘러싸인 예수님과 같은 형상이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브로켄의 무지개로도 알려진 이 신비로운 자연현상을 위트니를 오르는 내가 난생처음 마주한 순간의 감동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수시로 뒤바뀌는 정상의 기후는 오르는 1마일 남짓한 구간 내내 몇 차례에 걸쳐 나에게 이 신비로운 장면을 보여주었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며 선사해 주었던 것이다.
“장소는 쉽게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다”던 어느 작가의 글이 생각났다. 그는 대자연을 예찬하며 문명사회를 향해 진정한 인생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설파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150년도 전에 매사추세츠의 어느 시골 마을의 월든이라는 호숫가에 들어가 통나무 집을 짓고 2년 동안 자급자족하며 살았던 이야기를 기록한 월든이라는 책의 무대였던 월든 폰드를 찾았을 때의 실망을 기록하였었다. 너무도 큰 기대 때문이었는지 한겨울에 찾아간 호수에는 겨울 낚시를 준비하던 낚시꾼들이 얼음에 구멍을 뚫으려고 돌리던 전기톱의 날카로운 굉음만이 그 적막한 강산을 뒤 흔들고 있을 뿐 소로우의 흔적을 찾기란 힘들었단다. 그 작가는 그 후로도 열 번 가까이 그 월든을 찾아 호수 주위를 돌기도 하고 가만히 호숫가에 앉아있다 오기도 하면서 비로소 자기의 월든을 찾았다고 했다.
눈보라가 몰아쳐도, 우박을 동반한 폭풍우가 몰아쳐도 굴하지 않고 또 찾아 오르는 내게 하늘이 감동한 것일까? 그날의 감동은 단순히 사진에 담아낸 몇 장의 신비한 현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비로소 나도 나의 위트니를 조금 찾은 것이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소득이었다. 인간이 자연의 원소에서 지음을 받아서 그런 것일까? 자연이 보여주는 교훈은 인간 삶과 너무도 닮은 것 같다. 자연을 가까이하는 사람들만이 터득하는 것이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종 너무 성급한 판단과 결정을 하려는 우를 범하곤 한다. 겨우 어떤 사람의 한 두 가지 행동이나 태도를 보면서 그 사람 전부를 아는 것처럼 그를 재단하고 자르면서 평가하는 것이 그것이다. 분명히 내가 그에 대하여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많을 텐데도 내가 겪은 그에 대한 단편적인 경험이나 심지어는 직접 겪어보지도 않는 몇 소문만으로 그를 내 마음속에 담기도 하고 내뱉기도 하니 말이다. 위트니나 월든 같은 어떤 장소라도 쉽사리 그 속살을 아무에게나 드러내지 않는 법인데 어찌 감정의 동물인 사람의 깊이를 한 두 마디 말을 섞어보거나 하루 이틀 함께 지내본다고 해서 다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렇듯 위트니는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나더러 더 가까이 오라 하며 자신의 깊은 속을 조금씩 풀어서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고마운 일이다. 내가 그의 말을 조금 알아듣는 것 같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