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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로운 식탁 Nov 15. 2019

미행

미행 

♧. 미행    


 남편이 보고 싶었다. 거짓말처럼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그녀가 그리워하는 이는 남편이어야 했다. 


  

 비가 내리는 날, 남편을 미행했다. 

남편은 무거운 짐을 짊어진 사람처럼 느린 걸음을 옮기다가 빗물에 젖은 바지 단을 둘둘 말아 올리며 더딘 걸음을 옮겼다. 


세 번째 버스정류장을 지나친 남편은 슈퍼마켓으로 들어가 정육 코너에서 소고기를 사고, 채소와 대파, 과일을 샀다. 

남편은 구매한 물건을 쇼핑 봉지에 담으며 계산서를 꼼꼼히 대조하고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보여주는, 애정이 담뿍 담긴 웃음이었다. 30년을 함께 부대껴 왔지만, 그가 장을 보는 광경은 낯선 모습이었다.      

남편은 원룸 밀집 지역에 도착해서 오랫동안 살았던 집처럼 어느 원룸 현관문을 가볍게 열고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동시에 허둥지둥 그곳을 빠져나와 남편이 거쳐 간 길을 차분히 걸어 슈퍼에 들렀고, 남편이 산 것과 같은 고기와 채소, 과일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귀가 시간이 지나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성을 다해 끓여 놓은 육개장이 식어가고 있었다. 


남편이 장을 본 것과 같은 재료로 육개장을 끓였다. 육개장은 많은 고민을 거듭한 결과 요리되었다. 

그 여자는 남편이 사간 재료로 어떤 음식을 만들었을까? 육개장? 시원한 무 소고깃국?      

 비가 오는 날, 잘 어울리는 음식은 육개장이라는 결론을 내렸으면서 혹시, 하는 의혹 속에 파를 다듬고, 마늘을 찧고, 고기를 볶았다. 


펄펄 끓는 육개장 간을 맞추면서 그 여자 입맛은 싱거울까? 짤까? 여자의 입맛을 염두에 두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심정이었다.   남편에게 먹일 음식인데, 외간 여자의 입맛과 무슨 상관이랴.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오후가 되자, 더욱 거세졌다. 천둥과 번개까지 동반한 폭우를 퍼부었다.    

  

 그녀는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다가 무작정 폭풍을 뚫고 원룸을 향해 달렸다. 

남편이 그곳에 있는지, 그 여자가 갑자기 나타난 그녀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당장 그곳으로 달려가 남편을 봐야겠다는 애절한 심정으로 달음박질쳤다. 

번갯불이 섬뜩하게 내리치는 거리를 달리면서 남편이 보고 싶었다. 거짓말처럼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그녀가 그리워하는 이는 남편이어야 했다. 

폭풍을 뚫고 남편을 만나러 달려가는 길은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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