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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로운 식탁 Nov 15. 2019

남편이 변했다

남편이 변했다

♧. 남편이 변했다. 


 

내 복은 여기까지다, 더 욕심부리지 말자, 스스로 위로했던 날들이 진주의 화려한 반격에 허를 찔려 속수무책 구멍을 드러냈다.



 잠결에 들려오는 흐느낌 소리에 언뜻 눈을 떴다. 

뜻밖의 광경을 목격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남편이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있었다. 


혼미한 의식을 가다듬고 일어나려는 순간, 목걸이가 뜯어져 진주알이 짜르르 쏟아져 내렸다. 진주 목걸이는 그녀에게 유일하게 남은 재산이자, 남편이 결혼예물로 해준 보석이다.      

사기를 당하고, 아파트를 팔고, 사소한 가전제품까지 팔아 생활비에 보탰어도 악착같이 챙긴 진주 목걸이. 그 목걸이가 맥없이 뜯어진 것이다. 


대충 진주알을 밀쳐내고 남편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보, 무슨 일 있어요?”     

“우리… 이혼하자.” 

남편 입에서 이혼이라는 단어가 툭 튀어나왔다. 

남편을 외면하고 흩어진 진주를 줍기 시작했다. 진주알이 무릎에 박혀 넘어지고, 목이 늘어난 티셔츠가 한쪽 어깨를 자꾸만 드러냈다.      

남편이 울부짖었다. 

“우리 이혼하자고!” 

거의 다 주워 담은 진주를 다시 엎질렀다. 차르르.      

진주는 남편의 발과 무릎을 치고 튀어나와 어디론가 달아나려 했다. 악착같이 지켜온 그녀의 마지막 재산, 진주. 그 재산이 그녀에게서 달아나고 있었다.      


허겁지겁 바구니를 찾아 진주를 담았다. 한 알도 놓치지 않겠다고 하나하나 주워 담으며 ‘우리 이혼하자’라는 글자들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담았다. 

‘이혼… 이혼은 무엇을 뜻하는가. 단지, 남편과 떨어져 사는 것, 그뿐일까.     


은행 대출금이 5백만 원 남았고, 딸이 대학을 졸업하려면 1년이 더 남았는데… 등록금은 어떡하지? 민훈이는 아직 취직도 못 했는데? 머릿속을 헤집는 많은 생각이 비현실 속의 꿈처럼 느껴졌다. 


제발 이혼해 달라고, 남편은 재차 간청했다. 남편을 달래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이혼을 거론한 만큼, 나쁜 사이는 아니잖아요? 그러니 여보….” 

“그만! 더는 당신과 살고 싶지 않아!” 


남편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가로채 고함을 내질렀다.           

그를 찬찬히 훑어봤다. 머리칼은 무스를 발라 잔뜩 치켜세우고, 유명 브랜드 로고가 찍힌 옷을 입고 있었다. 윤기가 흐르는 피부와 살이 오른 모습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남편은 L 기업 부장으로 근무했을 때처럼, 잘 나가던 당시의 능력 있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다. 



잠시 혼란스러워서 가녀린 목에 버겁게 걸려 있던 진주 목걸이를 습관처럼 만지려고 했다. 그러나 진주 목걸이 대신 공허한 가난만 한 움큼 잡혔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좀이 슨 바지를 땀 한 땀 기우면서 내 복은 여기까지다, 더 욕심부리지 말자, 목구멍에 풀칠하는 것이 어디냐, 스스로 위로했던 날들이 진주의 화려한 반격에 허를 찔려 속수무책 구멍을 드러냈다.

진주를 남김없이 검은 봉지에 집어넣었다. 남편의 화려함을 구겨 넣듯이. 남편은 앵무새처럼 지껄였다. 이혼해 달라고, 대답해 달라고.      

그녀는 침묵을 고수했다. 왜, 무엇 때문에 이혼을 강행하려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다만 혼돈된 뇌리엔 가난을 첩첩이 걸친 비루한 삶이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미래가 내다보였고, 남편이 내미는 돈 봉투가 헤아려졌다.      

설령 남편에게 애인이 생겼다 할지라도, 바람기 따위는 하찮게 여기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다달이 가져다주는 돈 봉투만 축내지 않는다면, 남편의 갈급한 사랑놀이 따위야 얼마든지 봐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침착하고 차분한 어조로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싫어서 떠나겠다면 그렇게 해. 당신을 잡고 싶은 생각은 없어. 월급봉투만 착실히 가져다준다면, 아무래도 좋아.”      

“당신은 내가 왜 헤어지자고 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당신도 짐작하겠지만 나는….” 

“유치한 변명 그만해! 듣고 싶지 않아!”      

눈앞이 아찔하도록 두려워서 남편의 입을 강제로 막았다.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진실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두려운 것은 현실이었다. 

죽을힘을 다해 지켜온,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무너져 내리는 현실.    

  

남편은 끊임없이 이혼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녀의 일상은 흔들리지 않았다.

남편은 날이 밝으면 집을 나갔고, 자정이 가까워지면 노골적으로 여자의 향기를 몰고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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