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으로 전락하다
♧. 사기꾼으로 전락하다
A가 소개해준 여사장은 인력센터를 운영했다.
여사장은 지역신문에 광고를 내고, 광고를 보고 찾아오는 젊은이들을 윤재에게 보냈다. 대기업 근무 경력만으로 윤재는 그들에게 신뢰를 얻었다.
청탁 비용은 건당, 5백만 원으로 정해졌고, 윤재는 한 건당, 10%의 수수료를 받았다. 그렇게 취업청탁 일에 발을 들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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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는 A의 전화를 받고 하얗게 질려갔다. H 사가 취업청탁 명목으로 돈을 받고, 직원을 채용했다는 익명의 투서로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윤재를 협박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고위공무원 채용 비리가 수사에 들어가자 혹시나 불똥이 튈까 봐, A는 이미 서류심사에 합격한 두 청년을 면접에서 불합격시켰다고 했다.
청년들은 윤재를 사기 혐의로 고발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청년들은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설득해도 막무가내였다.
혼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겠다고 진정시키고, A한테 연락을 취했다.
A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여사장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튿날, 그 이튿날도 A는 윤재를 만나주지 않았다.
청탁금을 돌려받지 못한 청년들은 고소당하지 않으려면 합의금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청년들에게 받은 돈은 건당 5백만 원씩이다. 그 두 배인 1천만 원씩을 내놓으라는 황당한 요구를 했다.
비가 내리는 거리를 헤맸다. 이제 겨우 목구멍에 풀칠하게 됐다며 기뻐하던 아내를 볼 낯이 없었다. 비에 흠뻑 젖었는데도, 온몸을 태워 버릴 것 같은 뜨거운 화 때문에 몸이 불덩이 같았다.
그를 배신한 친구가, 그에게 사기를 친 오징어 쥐포 구이 사장이, 여사장이, A가, 그를 둘러싸고 깔깔거리고 비웃었다. 병신, 머저리라고 손가락질하며.
여러 날 벼르다가 차라리 함께 벌을 받자며, 경찰서에 자수하러 가는 중이라고 위협해서 A와 여사장을 불러냈다.
그들은 윤재 때문에 이 일에 발을 들였으니 오히려 피해자라고 하소연했다.
“여사장이나 나나, 김 부장 때문에 이일에 발을 들였고, 취업시켜 준 죄밖에 더 있나? 금전 관리는 자네가 담당했는데 자네가 알아서 해야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청탁금은 윤재가 관리한 것이 맞다. 그의 명의로 개설한 통장으로 입금받거나 현금으로 받아서 A에게 전해주면 A는 윤재와 여사장에게 각 10%씩을 떼주고, 나머지 40%는 윗선에, 그 나머지 40%는 각 기업의 인사부에 건넨다고 했다.
A는 개인적으로 단돈 10원 먹지 않았다고 발뺌했다. 단 한 푼도 눈독 들이지 않고 취업청탁에 관여하게 된 것은 순수하게 구제받지 못한 지역의 젊은이들을 구제하기 위해서지 결코,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변명했다.
여사장 역시, 일부 받은 금액은 지역신문 광고비로 나갔기 때문에 합의금을 낼 것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청탁 비리가 터지기 전날도 그들 셋은 외식을 하며 더 많은 젊은이에게 좋은 직장을 제공해 주자고 약속했었다. 표면적으로 아까운 인재들을 구제하는 거지만, 셋 모두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속내였다. 그랬던 그들이 마치 직장 잃은 윤재를 돕기 위해 희생했다는 투로 변명하기에만 급급했다.
그제야 윤재는 A와 여사장은 애초부터 윤재를 끌어들이기로 작정하고 하 사장을 자신에게 보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이제야 이 일의 경위가 이해가 되네. 당신과 여사장은 오래전부터 취업청탁에 관여해 왔던 거야. 그러다 일이 여의치 않으니까, 나를 끌어들인 거고. 돈 심부름할 사람이 필요했나?”
A는 웃었다. 카페가 쩡쩡 울리도록.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먹고 살길 없다고 징징대던 자네가 지난 6개월간 배불리 먹은 게 누구 덕이지?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왜 건졌냐고 살인할 판이네. 자네, 도덕군자인 척하는 그 어리석음 때문에 빌어먹을 걸세, 두고 보라지.”
“내가 증거를 다 가지고 있으니 고소하면 어찌 될까, 생각은 해봤나?”
“후후, 어리석기는. 우리가 고소당하면 자네는 무사할 것 같나? 게임 세상에서는 이길 수 있는 패를 잡고도 게임에서 패할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지. 현실에서도 상대를 이겨야 하는 싸움은 게임과 다를 바 없어. 나를 이기겠다고? 한번 해볼 텐가?”
A는 어깨를 한껏 치켜세우고,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이 껄껄거리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