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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로운 식탁 Nov 15. 2019

취업청탁

취업 청탁 

♧. 취업청탁  



 도덕? 양심? 미덕? 배려? 웃기지 말라고 해.  

성공한 사람들은 훌륭한 기술보다 음침한 책략을 선호한다고. 알아듣겠나? 


    

서둘러 집을 나섰다. 며칠 전부터 만나자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지인으로부터 윤재를 소개받았다고 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만남을 차일피일 미루던 차에 취업문제로 꼭 만났으면 좋겠다고 연락을 해온 것이다. 

눈이 번쩍 뜨였다. 지인의 소개라면 분명 일자리 때문이라고, 기대가 차올라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는 구미 인동에서 오리구이 식당을 운영하는 하 사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하 사장은 지인을 만나 아들 취업 걱정을 하자, L그룹 부장으로 근무하는 윤재를 소개해주면서 아들 취업 자리를 부탁해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윤재는 2년 전, 퇴직한 사실과 새 직장을 찾아다니는 이야기, 아직 백수라는 사실까지 소상히 말했다. 취업을 시켜줄 자신이 없거니와 그에 대해 많은 부분 부풀려져서 하 사장이 현실을 직시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하 사장은 그동안의 사연을 모두 듣고도 간곡히 청했다. 

그의 아들은 대학성적이 우수하고 언어연수까지 다녀와서 영어 실력이 아주 좋다고 했다. 그런데도 시험만 치르면 낙방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처럼 돈은 있으나 배경이 서민이면 돈을 써서 사회에 진출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윤재는 기업들의 투명한 채용과정을 충분히 설명하고 봉투를 돌려주었다.      


하 사장은 막무가내였다. 

전 현직 사원들이 채용에 관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한사코 돈 봉투를 건네며 간곡하게 청했다. 

“지인 말로는 대기업 부장급이면 인맥이 상당하다고 하던데… 혹시 선생님이 근무하신 L 기업 인사부에서 근무했던 A 씨를 알고 계십니까?”      

 A와는 부서가 달라서 돈독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직장 동료로서 나쁜 관계는 아니었다. A가 이직한 후에도 두어 번 술자리를 한 적이 있을 정도의 사이였다.      

“인사부 A와 서로 하대하며 지낸 사이입니다만, 지금은 H 사로 이직을 했지요.”     

“그렇군요. A 씨에게 부탁하면 잘 해결될 거라는 지인의 추천이 있어서… 선생님과 하대할 사이라니까, 잘 부탁합니다.”     

돈 봉투를 받은 것이 양심에 찔리긴 했지만, 하 사장의 지인이 언급했다던 A에게 부탁이나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L 사 근무 당시, 정부 고위층과 친밀한 라인이어서 경영진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설이 돌 정도로 A는 대담한 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하 사장과 헤어지고 A와 만나기로 했다. 

약속 시각보다 일찍 도착한 A는 버선발로 달려 나오는 애인처럼 살갑게 굴었다.      


A는 취업이 100% 가능하다고, 하 사장이 건넌 돈봉투를 받았다. 그리고 봉투 안의 돈 일부를 윤재에게 건넸다. 거절의 뜻을 비쳤으나 한사코 넣어두라며 강제로 떠맡겼다. 돈이 절실한 터라 잠시 갈등했지만, 머뭇머뭇 돈을 받아 챙겼다.      


 A는 의외라는 듯 빈정거리며 말했다.      

“김 부장, 자네도 돈 앞에서는 흔들리는군. 충고 한마디 하겠는데, 도덕? 양심? 미덕? 배려? 웃기지 말라고 해. 요즘 사람들은 도덕군자보다 나쁜 리더라도 자신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자를 존경하거든. 

성공한 사람들은 훌륭한 기술보다 음침한 책략을 선호한다고. 알아듣겠나? 자네, 회사에서 떠도는 가십거리 들어봤지? 그 대상이 누구던가? 힘없고, 돈 없고, 배경 없지만 성실하고 일 열심히 하는 상사들이 대부분이지? 돈 있고, 배경 좋은 상사들은 질이 좀 나쁘더라도 존경의 대상이지. 자네는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라. 그러니 자네가 더 버티지 못한 거야, 이 사람아.”      


그러면서 A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자네, 나하고 가끔 차나 한잔하면서 용돈이나 벌어 쓰겠나?”

“그런 자리가 있다면야 환영이지.”

“소개해 줄 사람이 있으니 내일 이곳으로 나오게. 잘하면 직장인 부럽지 않을 걸세. 그리고… 자네 아들, 아직 취업 못 했다고 했나? 일만 잘 풀리면 내가 한자리 마련해 보겠네.” 

아들의 자리를 마련해 보겠다는 A가 은인으로 느껴져서 무조건 소개해주는 사람을 만나겠다고 약속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어쩌면 아내에게 돈 봉투깨나 쥐여 주게 될지 모른다는 기대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매번 집으로 돌아가는 길, 빌라로 들어서는 길목에 서늘하게 돌았던 긴장감은 사라지고, 시시때때로 어둠의 미로가 펼쳐졌던 눈앞에 비로소 환한 길이 보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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